인간의 창조적 사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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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창조적 사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6.1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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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적 사고의 놀라운 역사: 뗀석기에서 인공지능까지, 인간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어왔는가 | 슈테판 클라인 지음 | 유영미 옮김 | 어크로스 | 284쪽

 

인간의 창조적 사고는 예나 지금이나 커다란 수수께끼다. 처음 도구를 만들던 순간부터 인공지능이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창조적 사고의 비밀을 알아내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창조성을 모차르트, 피카소, 아인슈타인 같은 인류의 위대한 지성들에게만 주어지는 남다른 능력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최신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창조성은 몇몇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재능이 아니다.

저자 슈테판 클라인은 이 책에서 인간의 창조적 사고가 어떻게 발전해왔으며 석기시대부터 인공지능 시대까지 인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흥미롭게 탐구한다. 330만 년 전의 인류가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었음을 증명한 로메크위의 석기 유적지부터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소를 거쳐 에이다 러블레이스와 앨런 튜링, 알파고로 이어지는 새로운 지능의 탄생까지, 경이로운 창조의 궤적을 좇으며 그 기념비적 순간을 만든 우리의 뇌는 어떻게 진화하고 작동했는지도 함께 살펴본다.

이 책에서 그는 뇌과학과 고고학, 인지과학의 최신 연구들을 인용하며 몇몇 천재들의 번득이는 영감이 역사를 바꾸었다는 통념을 뒤집는다. 그리고 창조적 사고는 뇌와 뇌, 사람과 사람, 지식과 지식이 연결될 때 비로소 발현되는 것임을, 교류와 협력이 창조성의 근원이며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동력임을 강조한다.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는 현생인류로부터 모든 것이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의미의 호모사피엔스는 우리로 하여금 호모사피엔스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창조적 사고가 가능했다고 여기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능은 호모사피엔스에 이르러 비로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슈테판 클라인은 고고학자 소니아 아르망과 함께한 탐사를 통해 이러한 편견을 깬다. 2015년 소니아 아르망이 아프리카 투르카나호 인근 로메크위 지역에서 발굴한 뗀석기 유물은 약 330만 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져 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기존의 유물보다 100만 년 가까이 앞서 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유물은 호모사피엔스 훨씬 이전의 인류도 좀 더 나은 도구를 만들기 위해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소니아 아르망의 발굴 전까지 사람들은 창조적 사고를 하려면 커다란 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슈테판 클라인은 독자들에게 ‘커다란 뇌’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촉구한다. 그는 호모사피엔스의 위대한 업적은 협력할 줄 알고, 좋은 아이디어가 공동체에 지속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게 한 것이라고 말하며, 인류의 발전을 이끈 창조적 사고는 ‘커다란 뇌’가 아닌 ‘집단적 뇌’에서 나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집단적 뇌는 우리가 무엇이든 온라인으로 배울 수 있는 시대에도 굳이 대면 수업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시범을 보여줄 모델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제스처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느냐 없는 창조적 사고에 커다란 차이를 가져온다. 서로에게서 배울 줄 알게 된 것, 다른 사람의 발명을 모방할 줄 아는 것이 인간에게 일어난 첫 번째 사고 혁명이라고 슈테판 클라인은 말한다.

또한 슈테판 클라인은 창조적 사고를 할 때 우리 뇌는 어떤 상태인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창조적 사고는 준비-부화-조망-검증의 4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며,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논리와 무의식이 지배하는 단계를 오간다. 흔히 창조성이 직관에서 나온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합리적·논리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 ‘모드 2’ 상태와 꿈을 꾸는 듯한 상상의 상태인 ‘모드 1’ 상태의 협업이 비로소 창조적 과정을 만들어낸다. 결국 창조적 사고란 지식과 지식, 뇌와 뇌가 연결되는 거대한 협력의 네트워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창조적 사고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이다. 인쇄된 서적의 등장은 정보를 수집하고, 수용하고, 전달하고, 저장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변화했다. 정보를 유통시키는 일이 쉬워질수록 새로운 사고가 더 많이 확산되었다. 인간의 지적 가능성도 어마어마하게 확장되었다.

근대 초기가 되자 사람들은 개인이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지식에 노출되기 시작했고, 창조적 사고는 어려움에 처했다. 점점 증가하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점점 많아지는 대안을 모두 검토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런 경우 창조적 사고는 가능성의 범위를 탐색해 아직 아무도 다루지 않은 가설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영역을 발견하는 것을 ‘탐구적 창조성’이라고 한다. 영국의 인지과학자 마거릿 보든은 오늘날 인간이 발휘하는 창조성의 97퍼센트는 이러한 탐구적 창조성이라고 말한다.

탐구적 창조성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전의 컴퓨터 역시 엄청나게 뛰어난 연산 능력으로 인간보다 더 넓은 가능성의 범위를 탐색할 수 있었지만, 인간에게 넘겨받은 선판단을 근거로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게임 규칙을 입력하면 스스로 게임 전략을 개발하며 자기만의 선판단을 획득했다.

기계가 인간보다 빠르게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세상에서, 인간 지성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기나긴 창조적 사고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슈테판 클라인이 궁극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지금껏 창조적 사고를 가능하게 했던 교류와 협력과 더불어, 무엇이든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삶의 자세가 진정한 창조성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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