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싫어하는 책의 탄생”에 대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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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싫어하는 책의 탄생”에 대한 변명
  • 김희교 광운대·중미관계사
  • 승인 2022.06.1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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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짱깨주의의 탄생: 누구나 함부로 말하는 중국, 아무도 말하지 않는 중국』 (김희교 지음, 보리, 676쪽, 2022.04)

 

시사인의 한 기자 분이 나의 책 『짱깨주의의 탄생』에 대해 “모두가 싫어하는 책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단 서평을 썼다. 내 책이 “반중정서가 사상 최악으로 치달은 지금, 모두가 싫어할만한, 그러므로 기억할 만한 책”이라는 것이었다. 병 주고 약 주는 서평이지만, 이 책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서평 중 하나였다.

이 책은 그가 말한 대로 모두가 싫어 할만하다. 지금 전 국민의 70% 정도가 중국이 싫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중국이 그럴만한 이유를 제공했다고 판단하며 ‘중국이 문제다’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한다. 그런데 이 책은 ‘중국이 문제다’라는 프레임은 정작 중국이 문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체제의 위기와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모두가 싫어할 것이다. 지금 20대의 80% 정도가 중국과 적대적 진영을 구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경향이 전후체제 위기에 등장하는 유사인종주의적 혐오주의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런 유사인종주의적 혐오는 안보적 보수주의 진영의 전후체제 위기에 대응책으로 기획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이 미국을 필두로 한미일 삼각동맹체제를 구축하자고 주장하는데 이 책은 그것은 전쟁과 폭력의 시대로 귀환하는 것이니 중국과 함께 다자주의 세계를 열 기회가 왔다고 주장한다. 한국사회에서는 듣기 힘든 뜬금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모두가 싫어 할만하다.

대개 이웃을 강조하거나 적대적 진영을 무너뜨리자고 주장하면 진보주의자들은 박수를 쳐준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럴 가능성도 별로 없다.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보다 더 중국을 싫어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실패한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독려 자체가 과도한 이상주의적 잣대라고 비판하고 있다. 민족주의자들은 부상하는 강대국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만드는 데 몰두한다. 그러나 이 책은 중국은 수직적 동맹체제인 샌프란시스코체제의 대항 체제적 기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최대 과제인 평화체제 구축의 좋은 파트너라고 말하고 있다. 생태주의자들은 지구상 가장 강력한 개발주의 국가인 중국의 개발주의가 지구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이 책은 글로벌 분업체계 속에서 제조업을 담당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으로서의 중국의 운명적 역할을 인정해야 하고, 중국도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어느 국가보다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분리주의자들에게는 거대한 중국 그 자체가 억압이다. 그들은 홍콩사태를 홍콩항쟁이라 부르고, 신장지역의 인권문제를 인권학살이라고 이름 붙인다. 그러나 이 책은 홍콩사태를 보편적 인권문제만 관련된 사안이 아니라 주권의 문제, 국가 간 체제, 글로벌 체제의 문제가 개입된 다면적 민주의 개념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 민주주의자들에게는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한 채 첨단 디지털 기술까지 활용하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은 조지 오웰이 그린 감시국가의 등장일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중국의 당-국가 체제를 반민주적 권위주의 체제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일종의 서구중심주의라고 비판한다. 중국을 디지털 감시국가라고 주장하려면 서구의 그런 양상은 스마트시티라고 예찬하는 이중 잣대를 폐기해야 하고, 헉슬리의 신세계를 지향하는 인류문명 전체를 비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모두가 싫어할 가능성이 높은 책이다. 

이 책의 핵심은 전후체제에 대한 규정에 있다. 이 책은 전후 체제를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키신저 시스템이라는 양 축으로 구축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전후체제가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주축이 되었다는 점에는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모두 동의한다. 보수진영은 미국이 주도한 동맹질서가 지니는 자유주의적 진보성을 강조하고, 진보진영은 동맹질서가 수직적인 불평등 체제와 배타적 국가 간 질서를 강조하는 차이만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전후질서를 샌프란시스코 체제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며 1972년 미중 간에 만들어진 키신저 협약이 기초가 된 키신저 시스템도 전후체제의 주요한 한 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키신저 시스템은 수직적 동맹체제는 그대로 둔 채 배타적 국가 간 질서를 해체하고 글로벌 분업체계를 구축한 경제적 협력 체제이다. 한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 정책은 그런 이중적 성격을 지닌 전후체제의 산물이다. 

미국은 미국의 추락과 중국의 부상으로 만들어진 전후체제의 위기를 중국봉쇄정책을 통해 샌프란시스코 체제로 회귀하며 대응하고자 했다. 한국의 안보적 보수주의 진영은 미국의 노선에 충실했다.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진하고 중국을 배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한국의 언론은 유사인종주의까지 동원하며 안보적 보수주의의 전후체제 위기대응책에 편승했다. 그런 점에서 ‘모두가 싫어하는’ 중국의 탄생은 더 이상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이중적 정책을 지속할 수 없는 한국 보수주의 진영의 기획물이었다. 

이 책은 논쟁을 위해 만들어 진 책이다. 지속된 선거 속에 귀한 몸값을 자랑하며 자신들이 무결점의 정치적 의사주체인양 굴고 있는 반지성주의적 대중, 분과체제에 안주하며 밥그릇만 탐하고 있는 학자, 도대체 왜 그런 기사를 쓰는지 알 수 없는 기사를 양산하고 있는 언론에 대한 도전적 말 걸기를 하고 있다. 그런 모두가 싫어할 일을 벌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역사상 가장 절호의 근대국가를 완성할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국내적으로는 역사상 가장 큰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지만 국가 간 체제의 관점에서 보면 아직 완성된 근대국가조차 만들어 내지 못한 미완의 근대국가이다. 

이 책은 책의 제목부터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혐오의 언어인 짱깨를 전면에 내세웠다. 우리 세계관의 민낯을 드러내고자 했다. 일종의 악을 기념하기 위한 방법이다. 짱깨는 단순한 혐오의 용어가 아니라 식민주의 언어이다. 일본은 중국을 점령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반중감정을 고양시켰다. 우리 안의 식민주의와 반중감정은 그때부터 그렇게 결합되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결국 만보산 사건까지 발생했다. 조선일보의 오보를 계기로 발생한 만보산 사건은 우리 군중들이 화교들에게 몰려가 그들을 무려 200여 명 넘게 때려죽인 사건이다. 문제는 그때 그 잘못이 아니라 그런 식민주의적 유사인종주의를 제대로 청산한 역사가 없었다는 점이다. 네이버에 만보산 사건을 치면 일본의 책임으로 발생했다고 정의되어 있다. 짱깨라는 말은 그런 식민주의적 의식이 키신저 시스템의 구축으로 한중관계가 고도화되자 사라졌다가 미국이 키신저 시스템을 파괴시키려 하자 다시 등장했다.

이 책은 짱깨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사용했다. 차이나포비아(China-phobia)나 차이나배싱(China-bashing)과 같은 서구의 개념을 쓰면 별 시비가 없을 것을 굳이 우리말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사용했다. 우리의 문제는 늘 서구의 그것과는 다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 대신에 분노와 혐오로 중국을 대하는 지금의 행태를 반중감정이나 반중정서와 같은 불투명한 개념이나 차이나 배싱과 같은 서구의 개념으로는 다 담을 수 없다.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며, 일시적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전후체제의 위기에 대응하는 한국 보수진영 전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식의 지정학 문제를 중점적으로 따져 물었다. 중국 담론에 관한 한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의 지식의 지정학이 보수주의자들의 지식의 지정학보다 더 문제가 많다.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중국 담론은 대부분 철저하게 한국사회를 보수적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움직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키신저 시스템을 파괴해 나가기 시작한 이후 한국의 보수주의는 철저하게 그 노선을 따라가기 위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신식민주의적 글쓰기이지만 지식의 지정학이 지금 여기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다르다. 지식의 지정학이 추상적인 공간이거나 중국을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의 출발은 진보적 프레임을 설정하지 못한 데 있다. 여전히 ‘중국도 문제다’라는 도덕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프레임이 흐릿하면 아젠다가 산만하다. 한국 진보주의자들의 중국담론은 어느 나라 국민이 읽고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공자님 말씀이 너무 많다. 그 결과 한국의 대중은 완벽하게 보수주의자들의 중국담론의 포로가 되어 있다.

이 책은 ‘모두가 싫어할 책’ 치고는 과도한 상찬을 받았다. 나오자마자 많은 언론들이 1면으로 다루어주었다. 예상보다 많은 독자들이 책을 사줘서 나온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2쇄에 들어갔다. 대중들이 이 책을 욕을 하더라도 한 번이라도 읽고 나서 욕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중들도 이제 진영논리에서 빠져 나와 냉정하게 국제관계를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바라건대 보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 책의 말 걸기에 답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거침없는 비평이라도 달게 받겠다. 누구나 함부로 말하는 중국이 탄생한 책임은 누구보다도 중국담론을 생산하는 전문가에게 있다. 다시 한 친중주의자의 중국을 위한 변명으로 치부하고 무시하고 넘어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전후체제 위기의 시대이다. 중국은 우리가 어디로 가느냐의 갈림길을 좌우할 핵심 국가이다. 중국을 혐오로 대하는 것만큼 매국은 없다. 혐오는 해야 할 일을 못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지금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매진해야 할 때이다. 분노와 혐오로 국가 간 체제의 문제의 본질을 성찰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힘을 낭비할 겨를이 없다. 


김희교 광운대·중미관계사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푸단대학에서 중미관계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광운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사비평> 편집위원을 지냈고,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다. 중미관계가 동아시아에 미치는 영향과 아시아 민중의 성장이 국제관계에 미치는 연구를 주로 해 왔다. 한국의 중국인식에 대한 비평적인 글과 한국에서 소개되지 않은 중국의 탈식민주의적 역사에 대한 글을 주로 써 왔다. 지금은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에 관심이 많다. 쓴 책으로는 대중서로 《안녕? 중국!》, 《나를 찾는 46가지 질문》이 있고, 여럿이 함께 쓴 《역사 용어 바로 쓰기》가 있다. 중국과 홍콩에서도 함께 쓴 책을 여러 권 냈다. 옮긴 책으로 《현대중국을 찾아서(모두 2권)》와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1: 중국의 세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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