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성(Otherness)을 통해 냉전 시대 한국 영화와 대중의 삶을 성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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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성(Otherness)을 통해 냉전 시대 한국 영화와 대중의 삶을 성찰하기
  • 한영현 세명대 교양대학
  • 승인 2022.06.05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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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냉전의 시대, 유랑하는 타자들: 한국 영화에 나타난 타자성의 문화 정치』 (한영현 지음, 소명출판, 323쪽, 2022.04)

 

냉전의 시대 통치성과 영화

『냉전의 시대, 유랑하는 타자들: 한국 영화 속 타자성의 문화 정치』는 냉전 시대를 규정했던 통치성을 ‘반공 국가주의’와 그것에 연계된 근대화 전략 차원에서 살펴보고 대중문화의 대표적인 문화 매체로 군림했던 ‘한국 영화’가 냉전 시대 통치성을 전유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모색했다. 한국 영화는 냉전 시대의 통치술과 대중과의 권력 관계를 둘러싼 상호작용 및 그로부터 발생하는 주체성과 타자성의 문제들을 드러내는 중요한 문화적 매체였다. 이 책에서는 냉전 시대 통치성의 논리와 그것을 한국 영화가 전유한 방식 및 영화 속에서 재현되는 주체성과 타자성의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궁극적으로 타자성을 통해 냉전 시대 한국 영화의 의미와 특징 나아가 대중의 삶의 편린들을 추적해 보고자 했다. 

이 책에서 주목하고자 한 타자화된 삶의 편린들과 저항의 지점들은 가혹한 냉전 시대를 몸소 체험하고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익명의 타자들을 재현의 장(place)으로 소환함으로써 때로 그들의 삶을 위로하거나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의미와 접속하고 있다. 특별히 냉전 시대 한국 영화는 그 문화적 대표성으로 인해 냉전 시대 국가 권력이 정조준한 표적이 되었던 바, 검열의 날카로운 칼날이 영화 제작·상영의 자율성을 크게 훼손했음에도 불구하고 냉전 시대 대중적 삶의 타자화된 편린들과 저항의 지점을 포착해내는 지속적인 노력을 보여 주었다.


혼돈과 절망, 순응과 모색 등의 다층적 결을 보여 준 한국 영화와 대중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었다. 각 단원은 냉전 시대 정권 및 통치성의 변화를 반영하여 구분했으며 각 시대별 특징을 한국 영화 속 타자성의 의미와 연계하여 제시하였다. 제1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영화 작품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기 전에 냉전과 한국 영화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고찰했다. 한국 영화가 구체적으로 냉전의 논리로서 제시된 반공주의와 근대화 담론을 전유한 방식을 살펴보고, ‘타자성’의 범주와 개념에 대해 언급했다. 

둘째, 제2부에서는 1950년대 한국 영화를 분석하기 위해 이 시대를 ‘혼돈과 균열의 시대’로 규정했다. 이 단원에서는 이승만 정권의 출현과 통치성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한국 영화 속 타자성의 출현 양상을 분석했다. 특별히 주목했던 부분은 도시를 비롯한 공간의 구분과 관련하여 타자성이 형성되는 과정이었다.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 이용민 감독의 <서울의 휴일>, 김소동 감독의 <돈>, 신상옥 감독의 <지옥화> 등에서 재현되는 공간의 구분과 경계의 형성은 당대 계몽 담론이 규정하고자 했던 주체와 타자의 모습을 파악하는 데 효과적인 장치로 작용했다. 자신의 안정된 장소를 갖지 못한 존재들이 전후의 혼란한 삶 속에서 계몽의 타자로 호출되는 상황을 한국 영화 재현 양상 속에서 파악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곧 당대 대중의 삶이 조직되는 방식의 문화적 판본이었다.

셋째, 제3부에서는 1960년대 한국 영화를 분석하기 위해 이 시대를 ‘순응과 갈등의 시대’로 규정했다. 박정희 정권의 출현과 본격적인 경제 개발 프로젝트의 진행에 따라 냉전 시대를 관통했던 통치성의 양상을 밝히고 당대 한국 영화 속에서 타자성이 재현되는 방식을 논의하였다. 1960년대 정권의 통치성이 근대화를 통한 반공 국가주의 추구로 수렴되었던 바, 대중의 삶 또한 이러한 통치성을 내면화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귀결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1960년대 한국 영화 속에서 근대화된 가족 공동체를 재현하는 가운데 주체와 타자를 구분하는 재현 방식으로도 파악해 볼 수 있다. 강대진 감독의 영화 <박서방>, <마부>,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빠빠>와 같은 1960년대 초반 가족 멜로드라마에서 드러나듯이 1960년대 한국 영화는 근대화를 추구하는 건전한 가족 공동체를 호출함으로써 대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규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가족 영화들은 전근대적인 존재들을 타자화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었다. 이러한 체제 순응적인 영화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적 판본은 영화 <팔도강산 시리즈>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못난 자들의 아픔과 눈물을 적극적으로 소환함으로써 조국 근대화에 앞장서는 산업 역군으로서의 주체를 호출함과 동시에 그것에 발맞추지 못하는 자들을 타자화한다. 한편 1960년대 제작·상영된 정소영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 번>,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 등 흥행 영화뿐만 아니라 조긍하 감독의 <육체의 고백> 등 다양한 영화들에서는 타자화된 존재들이 안정된 공동체를 위협하는 방식을 보여 줌으로써 반공 국가주의 통치성이 은폐하고 있었던 시대의 부작용들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 중흥기를 맞이했던 1960년대 한국 영화는 박정희 정권의 영화 정책과 정치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주체성과 타자성이 갈등하는 양상을 은연중 드러냄으로써 당대 대중의 삶에 깃든 애환과 부조리를 전유하고 있었다.

넷째, 제4부에서는 ‘절망과 저항의 시대’로 1970년대를 규정하고 논의를 전개했다. 1970년대는 유신 정권의 출현으로 인해 일상이 온갖 억압과 규제에 노출되어 위협받는 시대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급격한 경제 성장과 도시화는 자유로움과 개방적 사고에 기반한 대중문화를 촉발시켰던 바 냉전의 반공 국가주의가 한국 영화와 대중문화를 압살하는 가운데 이에 저항하는 새로운 시대의 문화적 생산물들이 출현하는 시대가 바로 1970년대였다. 이 단원에서는 김호선 감독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이장호 감독의 영화 <별들의 고향>, 변장호 감독의 영화 <O양의 아파트> 등을 중심으로 급격한 도시화와 근대화를 좇아 무작정 상경한 여성들의 타자성이 어떤 양상이었는지를 분석하면서 시대의 절망을 극복하려는 모색의 편린을 추적해 보았다. 물론, 시대의 절망을 넘어서려는 극복의 방식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1970년대 한국 영화에 재현된 타자들은 죽음을 내면화한 존재들로서 시대가 드리운 억압과 절망의 모습을 반영했다.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 김호선 감독의 영화 <겨울여자>, 이장호 감독의 영화 <어제 내린 비> 등은 모두가 타자화된 삶을 죽음의 재현 양상과 함께 보여 줌으로써 냉전 시대 반공 국가주의가 초래한 암울한 현실을 흡수했다.

 

다섯째, 제5부에서는 1980년대를 ‘비판과 모색의 시대’로 규정했다. 1970년대의 절망과 저항의 양상은 전두환 정권의 출범과 함께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이후에 발생한 본격적인 대중문화의 변화 및 저항과 모색의 신호탄이 되었다. 한국 영화는 본격화된 근대화와 도시화를 좇아 서울로 상경한 수많은 빈민들의 삶을 본격적으로 재현하기 시작했다. 민중 저항의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이장호 감독을 비롯한 젊은 감독들의 야심찬 시도가 대중의 관심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빈민들의 타자화된 삶을 스크린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는 이장호 감독의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과 같은 무작정 상경 남녀들을 다룬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시대의 폭력 문제를 건드린 배창호 감독의 영화 <꼬방 동네 사람들>과 같은 영화 등에서도 드러나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분단의 문제가 비로소 한국 영화 속에서 본격적으로 재현되며 시대의 변화를 알리기도 했다. 임권택 감독의 <짝코>, 배창호 감독의 영화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이두용 감독의 영화 <최후의 증인> 등은 분단 문제를 잊혀지고 타자화된 민족의 문제로 치환함으로써 대중이 냉전 시대를 경유하면서 내면화했던 분단의 아픔과 트라우마 문제와 접속했다.


냉전의 현재성, 한국 영화를 통해 대중의 현재를 성찰하기

분단 70년을 넘어서고 있는 현재에도 한반도 냉전의 장구한 흐름을 언제쯤 끊어낼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다. 탈냉전의 시대로 접어든 1990년대 이후 몇 차례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남겨진 마지막 냉전의 갈등과 분열이 종식되는 듯 했으나, 여전히 남북 통일과 협력의 가능성은 미해결의 상태에 놓여 있다. 

안정과 풍요에의 강박적인 욕망과 ‘빨갱이’에 대한 혐오의식은 지나온 역사적 궤적 속에서 몸에 체화된 채 지속적으로 우리의 현재에 접속하고 있는 중이다. 냉전 시대 한국 영화에 재현되었던 타자들의 모습 또한 탈냉전 시대 이후 ‘자본’이 급속하게 세계를 점령해 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로 출현하기 시작했다. 자본에 잠식된 세계와 그 안에서 주체성을 두고 벌이는 대중의 갈등과 경합의 양상을 떠올려 볼 때, 한국 영화는 과연 이러한 세계의 현실을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가. 풍요와 안정에의 욕망과 그로부터 생산되는 주체성의 문제는 결과적으로 경계를 형성하고 타자들을 양산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포함한다. 이 경계선 주위를 ‘중심(주체)-주변(타자)’의 다양한 운동들이 선회하는 가운데 때로 누군가를 타자로 혹은 적대적 세력으로 호명하는 작용이 재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권력 작용의 생산 운동 과정에 관심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타자들의 출현과 존재 방식에 시선을 두어야 할 것이다. 현 시대 한국 영화는 냉전 시대 반공 국가주의가 생산한 통치성의 자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타자들의 삶과 대중의 삶을 냉전의 담론 속에서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영현 세명대 교양대학

성신여자대학교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한 후 현재 세명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 소설을 전공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평소 관심이 많던 영화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소설과 영화 분야를 아우르는 학제 간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 영화사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면서 주요하게 관심을 가진 분야는 ‘공간’과 ‘냉전’, ‘타자’, ‘가족’ 등이었다. 이 개념들은 한국 영화사를 이해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번에 출간된 단행본 또한 이러한 관심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그동안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소설을 각색한 영화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한국 영화사 연구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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