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액세스 운동을 넘어서는 지식공유운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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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액세스 운동을 넘어서는 지식공유운동 이야기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5.30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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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을 공유하라: 한국 오픈 액세스 운동 | 권범철, 김명환, 박배균, 박서현, 박숙자 외 7명 지음 | 빨간소금 | 2022년 04월 29일

 

1960년대 이후 약 30~40년에 걸쳐 영미권의 학술지 출판이 상업화하면서 학술지 가격은 급등했고, 연구자와 학회는 이를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연구자들은 연구 결과를 더 많은 동료와 공유하고 학문과 사회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상업출판사로부터 독립, 인터넷을 활용한 새로운 지식 교류, 모두가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학술지 출판 등 다양한 시도를 해나갔다. 2000년대 초반 오픈 액세스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지식공유운동은 이러한 시도를 하나로 묶고 그 필요성을 연구자에게 널리 알리면서 도서관과 대학, 학술 연구 지원 기관과 협력해 누구나 자유롭게 인터넷에서 학술 논문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식 공유를 실천해나가자는 운동이다.

최근 들어 지식 공유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연구자의 중요한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지식의 상품화가 급진전해 지식 생산자인 연구자마저도 자기 논문을 돈 주고 내려받아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기인한다. 한국에서는 디비피아로 대표되는 상용 DB 업체들이 학술지 DB의 구독료를 급격히 인상하면서 대학도서관들이 일부 상용 DB의 구독을 원활히 진행하지 못해 학술지 접근이 제약당하는 일이 있었다. 연구자들은 상용 DB 업체의 횡포에 분노하며 지식 공유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9년 8월 학술지의 오픈 액세스(Open Access)를 주장하며 지식공유연대가 발족한 것도 이러한 상황과 관련 있다.

이 책은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학술 단체 및 연구자 연대’(지식공유연대)와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가 기획·출판했다. 지식공유연대는 2019년 8월 27일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학술 단체 및 연구자 연대 선언」을 발표하고 2020년 7월 17일 창립했다. 오픈 액세스(Open Access, OA)의 필요를 제기한 2019년 8월 선언문은 국내 인문사회 분야 학술 생태계의 현실 진단에 근거해 학술 논문과 같은 학술 지식의 OA를 통해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취지를 담고 있었다. 이후 지식공유연대는 오픈 액세스 운동을 꾸준히 전개했으며, 이 책은 그 실천에 관한 중간 보고이다.

하지만 책은 오픈 액세스 운동에 관한 단순 보고에 멈추지 않는다. 이 운동을 더욱 심화·확대하기 위해 지식공유운동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지식공유운동은 국제적인 OA 운동과 관련해 이해할 수 있는 운동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 특히 대학에 일시적으로 소속되거나 아예 소속되지 않은 국내 인문사회 분야 비정규직 연구자 및 독립연구자의 ‘연구의 권리’와 ‘삶의 안전’이라는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제기하는 운동이다. 후자와 관련해 지식공유운동은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화와 함께 1990년대 후반 도입된 ‘학술지 등재 제도’의 영향 아래 성립되어, 2000년대 이후의 학술 생태계를 특징짓는 소위 ‘학진 체제’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그동안 학진 체제, 즉 계량화를 중심으로 하는 평가-지원 체제 아래에서 논문이 양산되어왔다. 하지만 그렇게 생산된 다양한 지식이 과연 ‘공공성’을 가지는지를 되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 나아가 상당수의 연구자가 그들의 삶을 안정적으로 영위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다시금 저 평가-지원 체제 아래서 발버둥 칠 수밖에 상황이 바로 지공연의 탄생 배경이자 지공연이 문제 삼았던 국내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의 환경이다. 이와 같은 환경을 문제시하면서 연구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연구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한 실천을 전개해온, 지식공유 연구자의집 같은 학술 운동 단체가 지공연의 일원이 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공연은 논문에 대한 접근, 학술 지식 공유를 학술 생태계 문제와 관련해 이해하고 지식 공유를 통해 이 문제에 대응하려 한다. 이러한 점에서 지식공유운동은 2000년대 이후 계속해서 심화·확대돼온 학술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국내 비판적 학술 운동의 역사를 이어가는 운동이다.

지식공유운동의 필요와 역사, 현재와 과제를 세밀히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총 4부와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2부가 지식공유운동의 역사를 살피면서 그 필요성을 자세히 다룬다.

「지식공유운동으로서의 오픈 액세스」에서 정경희는 학술지 출판이 상업화되어 학술지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비윤리적인 고가 학술지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무료 온라인 학술지를 출판하며 온라인 논문 아카이브를 만들었던 영미권의 OA 운동을 살펴본다. 「국내 학문 생태계의 현실과 혁신의 방향: 지식의 공공성, 저작권, 오픈 액세스」에서 김명환은 지공연의 현안인 OA 운동을 중심으로 지식의 공공성과 저작권의 쟁점을 살펴보면서 이를 둘러싼 학문 생태계의 현실을 진단한다. 「지식 공유와 한국의 학술 및 교수·연구자 운동」에서 박배균은 지식공유운동이 학술 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느냐는 물음을 제기하면서 지공연과 연구자의집 활동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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