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는 사실상 환원 불가능성과 물러섬의 사상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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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는 사실상 환원 불가능성과 물러섬의 사상가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5.3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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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 들뢰즈의 사변적 실재론 | 아연 클라인헤이런브링크 지음 | 김효진 옮김 | 갈무리 | 512쪽

 

일반적으로 질 들뢰즈는 과정과 연속성의 철학자, 흐름과 생성의 사상가로 알려져 왔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들뢰즈의 존재론은 이산적인 개별자들이 용해되는 전개체적 ‘잠재 영역’을 상정한다고 대체로 가정되었다. 더욱이 들뢰즈는 종종 여타의 비실재론적 포스트모던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의 종언을 당연시하면서 체계적 형이상학을 구축하지 않았다고 여겨졌다.

이 책에서 저자는 들뢰즈 철학에 대한 이런 통상적인 이미지를 단적으로 거부한다. 그의 독법에 따르면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 이후 『의미의 논리』를 기점으로 ‘잠재 영역 존재론’에서 ‘기계 존재론’으로의 철학적 전환을 겪는 것으로 판명된다. 클라인헤이런브링크는 “질 들뢰즈 철학의 뛰는 심장이 개별적이고 환원 불가능한 존재자들과 그런 존재자들 사이의 불연속성을 기반으로 하는 존재론”이라고 대담하게 주장한다. 그는 포스트모던 철학자들과는 달리 들뢰즈가 존재하는 모든 기계의 완전한 존재론적 실재성을 주장하는 ‘실재론적’ 철학자이자 기계의 존재가 모든 존재론적 접근에서 필연적으로 물러서 있다고 주장하는 ‘사변적’ 철학자라고 본다. 나아가서 그는 들뢰즈가 그저 사변적 실재론의 선구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객체지향 사변적 실재론자라는 뜻밖의 들뢰즈상을 최초로 제시한다.

모든 존재자는 서로 환원 불가능한 기계이다. 관계는 그 항들의 외부에 있다. 저자는 들뢰즈에 대한 자신의 독특하고 참신한 시각에 의거하여 들뢰즈의 전작을 꼼꼼히 읽음으로써 들뢰즈의 기계 존재론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려고 시도한다. 그는 “모든 존재자는 서로 환원 불가능한 기계다”라는 기계 테제와 “관계는 그 항들의 외부에 있다”라는 외부성 테제를 씨줄과 날줄로 삼고서, 사중체로서 기계들의 존재론적 구조와 기계들 사이의 관계들을 특징짓는 삼중 종합을 근간으로 하는 들뢰즈의 기계 존재론을 정교하게 직조해낸다. 이렇게 해서 클라인헤이런브링크는 “들뢰즈의 주요 개념들이 모두 존재자들의 본성과 상호작용의 지도를 그리는 어떤 정합적인 체제의 일부”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에 덧붙여 이 책의 저자는 들뢰즈의 기계 존재론을 레비 브라이언트, 마우리치오 페라리스, 마르쿠스 가브리엘, 마누엘 데란다, 그레이엄 하먼, 트리스탕 가르시아, 브뤼노 라투르 등 사변적 실재론, 신실재론 그리고 신유물론으로 대표되는 최근 대륙철학 조류의 주목할 만한 사상가들의 이론들과 비교·검토함으로써 들뢰즈의 기계 존재론의 현대적 의의와 최근 이론들의 강점 및 약점을 평가할 기회도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저자 클라인헤이런브링크는 “현행의 정통적 견해가 시사하는 상황과는 정반대로 들뢰즈가 환원 불가능한 존재자들 사이의 근본적인 불연속성에 의거하여 실재를 이론화하는 철학자들에게 귀중한 통찰의 원천이자 그들의 동행자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저자는 들뢰즈의 전작에 걸쳐서 ‘잠재태’와 ‘현실태’라는 두 가지 별개의 이중체로 분할된 보편적인 존재론적 구조를 탐지해낸다. 잠재태는 “개별적 존재자의 객관적이고 잠재적이며 환원 불가능한” 측면을 가리키고 현실태는 “주관적이고 관계적이며 현실적인” 측면을 가리킨다. 기계를 이루는 각각의 이중 측면은 ‘이것임’으로서의 하나(단일체)와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는 여럿(다양체)으로 이루어져 있다. 들뢰즈가 제시하는 ‘존재의 일의성’ 개념은 바로 모든 기계가 사중체로서의 보편적인 존재론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잠재적 단일체는 ‘신체’(또는 ‘기관 없는 신체’, ‘형상’, ‘문제’)로 일컬어지고 그 다양체는 ‘역능들’(또는 ‘이념’, ‘욕망’, ‘특이성들’, ‘강도적 물질’, ‘코드’)로 일컬어진다. 초험적 단일체로서의 ‘기관 없는 신체’는 기계들의 절대적 ‘물러섬’을 보증하는 한편으로 기계들의 해방적 혹은 유목적 요소를 구성한다. ‘이념’은 비관계적 요소이지만 관계를 통해서 변경 가능한 기계의 본질을 가리킨다.

현실적 단일체는 ‘의미’(또는 ‘의미-사건’, ‘부분적 객체’)로 일컬어지고 그 다양체는 ‘성질들’(또는 ‘흐름’)로 일컬어진다. 의미는 기계들 사이의 어떤 현실적 마주침의 단일성을 이루는 한편으로, 성질들은 경험이 분화된 인접 흐름임을 보증한다. 현실태의 두 요소는 잠재태의 관계를 통한 표현 혹은 효과에 해당한다.

또한 저자는 환원 불가능한 기계들의 간접적 상호작용들을 설명하기 위해 들뢰즈의 세 가지 종합, 즉 연결적 종합, 이접적 종합 그리고 연접적 종합을 재구성한다. 첫 번째 연결적 종합은 기계들의 관계 맺음의 기본적인 사실과 현실적 표현들을 설명한다. 두 번째 이접적 종합은 잠재적 역능들의 변환, 즉 들뢰즈주의적 ‘되기’(생성)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종합은 새로운 기계들이 창출되는 방식을 설명한다. 결국에 어떤 ‘기계들의 기계’도 상정되지 않은 들뢰즈의 기계 존재론의 경우에 모든 기계는 생산된 기계일 따름이다. 이들 종합은 순차적이지 않고 오히려 언제나 중첩되며, 사중체 구조만큼이나 보편적이다.

저자는 이 책이 “들뢰즈의 철학을 그 철학의 핵심적인 통찰의 견지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의 필연적인 결과물”이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서문에서 그는 들뢰즈의 체계적 존재론을 재구성하면서 찾아낸 여덟 가지 핵심 테제들을 제시한다.

(1) 모든 것은 기계, 리좀 혹은 회집체다.
(2) 존재는 일의적이다.
(3) 관계는 그 항들의 외부에 있다.
(4) 신체는 먼저 기관 없는 신체다.
(5) 신체는 그것의 술어들이 아니라 그것의 역능들로 정의된다.
(6) 아무것도 무언가 다른 것의 표상이 아니다.
(7) 차이는 무엇보다도 내부적 차이다.
(8) 기계는 결코 직접 접촉하지 않고 오히려 이른바 부분적 객체와 흐름으로 번역된 대로 타자와 마주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결론: 존재론과 불연속성」에서 저자는 “우리 시대의 사변적 실재론자들과 들뢰즈를 최초로 비교한 나의 작업이 관련 논의의 생산적인 출발점으로서 유용할 것”이라는 기대를 피력하면서 “사변적 실재론에 관한 한 들뢰즈가 객체지향 존재론의 진영에 속함이 분명하다”고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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