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성과 다양성의 어우러짐을 위한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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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성과 다양성의 어우러짐을 위한 모색
  • 박승억 숙명여대·철학
  • 승인 2022.05.0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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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학문이 서로 돕는다는 것 - 현상학적 학문이론과 일반체계이론의 이중주』 (박승억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360쪽, 2022. 03)

 

양자역학에서 표준모형을 고안한 물리학자로 1979년에 노벨상을 받은 스티븐 와인버그(S. Weinberg)는 최종 이론(final theory)의 꿈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자연의 근본 법칙들이 하나의 통일적 원리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표현이었다. 한때는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던 그 꿈은 학문의 역사에서 끝없이 되살아나는 꿈이다. 와인버그가 그런 꿈을 힘주어 말한 까닭은 물리학자로서 형이상학이나 환원주의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20세기 후반부의 포스트모던적 지적 풍토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기도 했다. 

과학에 대한 와인버그의 태도는 인류의 지적 탐구 여정과 관련된 두 가지 현실을 보여준다. 하나는 보편 이론에 대한 멈추지 않는 지적 열망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단절이다. 물론 두 현실은 서로 유리되어 있지 않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탐구 대상도 다르고, 탐구 방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반면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혹은 형이상학이라고 말하든 통일과학이라고 말하든 어느 쪽 진영에서나 세계를 설명하는 보다 근본적인 통일적 원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공유한다. 한편에서는 보편성에 대한 열망이, 다른 한편에서는 탐구 대상과 방법의 차이에 대한 감수성이 공존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통일과학 운동이나 최근의 융합(convergence)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관심과 논쟁은 이렇게 서로 다른 지적 경향성들이 빚어내는 파생효과들이다. 

“학문이 서로 돕는다는 것”, 이 책은 어떤 사잇길, 혹은 우회로에 대한 이야기다. 그 길의 가능성은 학문 간 차이를 보존하면서도 보편 이론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 데 있다. 이 책은 그 길의 아이디어를 후설(E. Husserl)의 현상학과 베르탈란피(L. v. Bertalanffy)의 일반체계이론에서 빌려왔다. 그들의 이론을 교차시키는 접점은 다양한 의미를 가진 현상들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개념 틀이 있다는 것이다. 후설의 경우에는 지향성(intentionality) 개념이, 베르탈란피의 경우에는 체계(system) 개념이 그 역할을 한다. 비록 각각의 개념이 가리키는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그 개념들이 하는 역할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다양한 학문 영역들을 통일적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문장이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각각의 학문 영역은 의미론적으로는 다르지만 구문론적으로는 통일적인 시선에서 고찰할 수 있다. 후설과 베르탈란피가 학문을 바라보는 공통적인 관점이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통일과학 운동이든 전통 철학의 형이상학이든, 세계에 관한 보편 이론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에는 ‘세계는 하나’라는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 강력한 형이상학적 믿음이 작동한다. 이러한 믿음은 세계의 다양한 현상을 궁극적인 실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환원주의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환원주의적 접근은 세계의 풍성한 의미 현상들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 동일한 대상이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대상을 물리적인 관점에서 보느냐,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대상의 의미는 달라진다. 이런 대상적 의미의 차이가 학문 영역의 차이를 낳는다. 후설과 베르탈란피가 꿈꾼 보편적 학문 이론은 각각의 학문이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갖고 있다는 차이를 보존하면서도 ‘하나의’ 세계에 대응하는 보편적 개념 틀이 있다는 전제에 기초해 있다. 그들은 그러한 아이디어를 수학 이론의 발전 과정에서 착안해서 발전시킨다. 

이 책의 1부는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학문사에 대한 고찰을 토대로 후설과 베르탈란피가 어떻게 자신들의 보편적 학문 이론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지를 추적하였다. 이러한 추적과정은 융합(convergence), 혹은 학문 간 협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사적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이론이 하나의 세계가 어떻게 다양한 모습으로 주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론적인 해명이었다는 점에서 학문과 세계 사이의 대응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경직성을 유연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융합이나 학문 간 협력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전문화된 분과 체제의 한계가 노정되고, 학문 간 경계를 넘어선 협력의 새로운 생산성이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분과 체제에 갇혀 있을 경우,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정되기 쉽다. 그 경우 풀리지 않는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으며, 그래서 새로운 것도 별로 없다. 그러나 사물과 대상을 보는 다른 시선에 대한 참조는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다르게 볼 수 있는 힘과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영역을 찾아내는 생산성을 낳는다.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던 인간 정신과 마음의 문제에 대해 뇌과학이나 데이터 과학의 새로운 시선이나 환경 문제처럼 복잡한 현실의 문제를 풀기 위해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나아가 윤리학까지 협력하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  
그러나 학문 간 협력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협력해야 한다는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이 책의 2부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오늘날 요구되는 학문 간 협력의 의미를 학문사적 관점에서 성찰하고, 학문 간 협력의 조건들과 그 양상들, 그리고 어떤 경우에 협력이 용이하게 일어날 수 있는지, 또 무엇이 학문 간 협력을 어렵게 만드는지 등을 해명하였다. 아울러 3부에서는 학문 간 협력을 어렵게 만드는 몇 가지 선입견들, 예를 들면 방법론의 차이와 객관성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보편적 학문 이론의 관점에서 해명하고 그 차이가 어떻게 생산적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협력의 구조적 조건들을 살폈다.  

 

오늘날 학문 간 협력이 중요하다는 말은 많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그런 일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한다. 이는 그들 사이에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자리가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서로 다르다는 차이에 대한 생각이 선입견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협력은, 혹은 융합은 체계적이라기보다는 산발적이고 우연적이다.

사실 19세기와 20세기 초의 통일과학 운동이나 오늘날의 융합 패러다임은 모두 학문의 근본 성격에 대한 물음이다. 만약 어떤 시스템이 자신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되물어야 하는 시기를 위기라고 부른다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학문의 위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근대 이래 자연과학의 발전이 가져 온 파생효과였다. 근대가 시작된 이래 자연에 대한 인류의 지식은 빠르게 성장했다. 자연에 대한 수학적 해석과 설명적 이론에 대한 실험적 검증이라는 과학의 방법론 덕이었다. 이 방법론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탐구 분야들이 이론으로서, 나아가 독립적인 학문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다. 이러한 사정은 거꾸로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과연 세계에 대한 의미 있는 탐구일 수 있는가 하는, 일종의 정체성 위기 물음을 자극했다.

반면 새롭게 등장한 과학 이론들 역시 그 이론적 기초가 무엇인지는 엄밀하게 다루지 못했다. 양자 역학의 발전이 빚어낸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해석 문제, 미시 세계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면서 제기된 생명의 본성에 대한 문제 등은 다양하고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혼란은 마치 데자뷰처럼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언어의 등장과 함께 융합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혼란은 분명 위기의 징표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주 오래된 지혜처럼, 위기의 또 다른 얼굴은 성장을 위한 역동성이다. 그 경우 우리는 그 위기를 한 시스템이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필수적인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 위기는 학문의 전통적인(낡은) 개념에 대한 위기였을 뿐이다. 후설은 철학의 영역에서, 베르탈란피는 생물학의 영역에서 당시의 위기들을 돌파하고자 하였다. 공교롭게도 그들의 노력은 모두 보편적 학문 이론이라는 이념으로 갈무리할 수 있다. 

학문 간 협력은 한 지붕 아래 서로 생활 방식이 다른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것과 같다. 차이에 대한 감수성이 정형화되고 어느 한 쪽의 기준이 규제적으로 작동하면 갈등이 시작된다. 반면 한 지붕 아래 산다는 동질성이 전제될 경우 차이는 다양성으로, 나아가 생산적으로 작동한다.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빠른 변화로 인해 학문 간 협력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후설과 베르탈란피의 보편적 학문 이론은 서로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진 가족들이 한 지붕 아래서 공존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한 탐색이었다. 그들의 노력은 학문 간 협력을 모색하는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역사적 유산이자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일 것이다. 


박승억 숙명여대·철학

성균관대학교 철학과에서 현상학과 학문 이론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트리어대학교 박사후 연구원과 청주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학연구회 논문상’, ‘한국연구재단 창의연구 논문상’ 등을 수상했다. 첨단 기술과 인문학의 관계, 철학이 현실적인 삶의 문제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 중이다. 주요 저서로 『가치전쟁』, 『렌즈와 컴퍼스』, 『학문의 진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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