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국의 유산 … 중국과 한국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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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국의 유산 … 중국과 한국 (6)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2.04.2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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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오스만터키ㆍ무굴제국ㆍ청나라는 공통점이 뚜렷하다. 소수의 외래자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나타나, 넓은 땅 많은 사람을 정복하고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것은 무리한 승리여서 파탄을 키웠다. 자기 나라뿐만 아니라 그 문명권의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를 중세로 역행시켜 역사 발전을 정체시켰다. 그 때문에 멸망을 겪게 된 것도 같다.  

오스만터키를 만든 외래자는 내륙아시아에서 서쪽으로 이주한 무슬림 터키인이다. 그 제국은 균형이 맞지 않은 이중구조를 가졌다. 한편으로 외래 정복자의 수장 술탄이 동방기독교문명권의 중심지를 빼앗아 자기네 수도를 삼고, 발칸반도 일대의 동방기독교 신도들까지 지배해 반발을 샀다. 다른 한편으로 술탄이 곧 이슬람의 종교적 수장 칼리파여서 이슬람문명권의 대부분과 책봉관계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인정되었다. 

무굴제국을 만든 외래자는 북쪽에서 남하한 무슬림 터키인이며, 페르시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했다. 인도아대륙(印度亞大陸)의 힌두교문명권이 침체기에 들어서자 쉽사리 침공해, 불만을 가지고 있던 하층민부터 이슬람으로 개종하도록 했다. 페르시아어를 익혀 통치에 협력하는 이슬람 개종자들을 내부의 주민으로 하고, 힌두교를 계속 신앙하면서 힌디어를 비롯한 여러 토착 언어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외부의 주민으로 하는 이중의 제국을 건설했다.

청나라를 만든 외래자는 만주족이며, 특정 종교는 없었다. 자기 고장에서 나라를 세워 힘을 기르다가 명나라가 무력하게 되어 중국 대륙이 무정부 상태에 빠지자, 명나라 수비장의 안내를 받고 중원에 진출해, 유교를 이념으로 하는 천자의 나라를 재건했다.  만주족이 정치와 군사의 실권을 장악하고, 한족 협력자들의 실무 능력을 이용해 한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을 지배하고, 새로 복속한 민족으로 외곽을 두르는 제국을 만들었다.

만주족은 우월한 위치를 고수했으나 자기 말을 잃고 한족의 말을 받아들여 민족의 주체성을 상실했다. 무인지경으로 비워둔 고국의 땅을 한족이 몰래 들어다 차지해, 돌아갈 곳도 없게 되었다. 명나라는 망하든 말든 내버려두고, 만주의 국토를 지키고 중원으로 내려오지 않았더라면 착실하게 발전했을 민족국가를 허영에 들떠 상실하고 말았다. 승리가 패배임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했다. 이 정도로 어리석이 일이 세계사에 더 있을 것 같지 않다.

한족에게는 패배가 승리였던 것도 아니다. 한족은 과거에 급제해서 관직을 맡아도 정치적 실권은 없는 실무자 노릇을 하는 데 그쳤다. 과거에 급제하지 않으면 상위 신분을 유지하지 못 하도록 한 탓에,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것 이상의 목표를 가질 수 없었다. 배금주의가 한족의 고유한 특징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초야의 선비가 천지만물의 근본 이치를 탐구하고 나라의 잘못을 시비하는 자랑스러운 전통이 깡그리 사라지고, 무식의 평준화가 이루어졌다. 동아시아문명의 이상을 처참하게 훼손했다.

오스만터키ㆍ무굴제국ㆍ청나라는 군사력뿐만 아니라 경제력도 대단했으나, 그 위세가 오래 가지 않았다. 혁신은 하지 않고 인습을 되풀이하고 있는 동안에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를 중세로 역행시켜 모든 역량이 쇠퇴했다. 그 가운데 지적 역량의 쇠퇴가 특히 심각했다. 그러는 동안에 유럽문명권은 여러 나라가 경쟁하면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를 근대로 순행시키는 지적 역량을 축적해 경제적 역량으로 전용해, 산업혁명을 이룩하고 막강한 힘을 가지는 제국주의 침략자가 되었다. 

오스만터키ㆍ무굴제국ㆍ청나라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과오를 저질러, 문명 경쟁의 주도권을 유럽으로 넘겨주었다. 세계사의 심한 불균형을 빚어내 선진과 후진이 모두 불행하게 만들었다. 경쟁자 없이 근대화를 먼저 이룩한 유럽은 자만에 들뜬 제국주의 침략자로 등장하고, 오스만터키ㆍ무굴제국ㆍ청나라는 그 공격을 받고 신음하는 희생자로 전락했다. 수난에 대처한 방법은 각기 달라 비교 고찰이 필요하다.

오스만터키가 식민지가 되는 위기는, 제국을 자진해 해체하고 민족국가를 만드는 결단을 내린 선각자 덕분에 가까스로 모면했다. 주권을 대등하게 가지는 여러 나라가 이슬람문명의 이상을 함께 추구하면서 유럽문명권의 침해에 맞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늘날의 터키는 그 가운데 하나인 것이 당연하다고 하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꿈을 꾸지 않는 것이 중국과 아주 다르다. 

무굴제국의 전 영역은 식민지가 되는 수난을 겪다가 평화적인 투쟁과 교섭으로 독립을 이룩했다. 이슬람국가 파키스탄은 떨어져 나가고, 나머지 거대한 나라 인도는 29개의 주(州, state)로 구성되어 있다. 주가 중심과 주변이 따로 없는 대등한 자격을 가지고 자치권을 행사하며 각자의 언어와 전통문화를 침해받지 않고 이어나간다. 독립 성취에서도, 국가 구성에서도, 대외 관계에서도 인도는 차등을 배격하고 대등을 일관되게 실현하고 있다. 

청나라는 영국을 위시한 유럽 각국의 침공을 받고 반식민지가 되었다. 그 와중에서 민국 혁명이 일어나고, 일본의 침략을 받는 동안에도 내전을 하다가, 마침내 중화인민공화국이 국내외의 투쟁에서 승리해 청나라가 확보한 천하를 통일했다. 국토를 이어받는 데 그치지 않고, 청나라의 위세를 더욱 확대하고자 한다. 사람이 하는 모든 활동 가운데 공산당이 이끄는 정치가, 세계 모든 나라 가운데 중국이 월등하다고 하는 차등론이 강력한 힘을 가지는 만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 점에서 오스만터키나 무굴제국의 뒤를 이은 곳들과 아주 다르다. 어느 쪽이 바람직한 길을 가고 있는지 힘써 살피고 비교해 평가할 필요가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청나라 때의 강역을 확보하는 것이 당연하므로, 인접한 거의 모든 나라와의 국경 분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한다. 소수민족을 존중한다면서 말살을 시도한다고 나무라는 것은 악의에 찬 비방이라고 한다. 안에서 자유를 유린하고, 밖으로는 패권주의를 행사한다는 비난은 중국 공산당의 지극히 정당한 이념으로 반박할 수 있으나, 자기와의 싸움은 더 힘들다. 아는 것은 다 알고 모르는 것은 다 모르고, 어느 누구도 자발적인 창조는 하지 않아 13억 인구가 엄청난 낭비이게 한다. 사회 발전과 국력 신장이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국몽(中國夢)으로 세계를 장악하려고 하다가 파멸을 자초할 수 있다. 

한국은 제국이 된 적 없는 적정 크기의 나라인 것이 크나큰 행복이다. 중국 탓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차등론의 과오를 대등론으로 시정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남북이 분단된 상태로 독립한 비극이 분발을 촉구해, 각성의 수준을 더욱 높인다. 창조력을 누구나 대등하게 발현해, 인류를 위해 널리 기여하는 본보기를 보이고 있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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