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싱크탱크의 한계와 당면과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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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싱크탱크의 한계와 당면과제는 무엇인가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4.2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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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류는 각종 난제에 직면해 있다. 환경파괴와 기후위기, 감염병의 대유행, 미·중 패권 경쟁의 격화와 국제질서의 불안정, 극단적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의 위기, 국제적·국내적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이런 일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더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의 주요 싱크탱크들은 아이디어와 정보,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기반으로 지식 권력과 소프트파워를 발휘하며 이런 지구적 문제의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싱크탱크들은 그들이 속한 나라에 따라, 역사에 따라 유형과 역할을 달리해왔다. 그럼에도 세계 싱크탱크들의 규모와 영향력은 꾸준히 성장해왔다. 세계 싱크탱크들에 대한 실태 조사와 영향력 평가를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제임스 맥갠(James McGann)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싱크탱크의 나라’ 미국에 2,200여 개, 유럽에 2,900여 개의 싱크탱크가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와 중동의 싱크탱크도 계속 늘고 있고,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싱크탱크의 숫자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급증하는 중이다. 

맥갠 교수는 싱크탱크의 세계적 성장은 정보와 기술의 혁명, 정부의 정보 독점 종료, 정책문제의 복잡성 증대, 정부 규모의 확대, 정부와 선출직 관료의 신뢰 위기, 지구화와 (비)국가 행위자의 성장, 시의적절하고 가장 적합한 형식과 내용의 정보 필요성 등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세계 주요 싱크탱크들은 국내외적으로 이미 막강한 소프트파워를 발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경우도 불안한 국내 정치·정책 환경,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 사태,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 중·일과의 외교 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격변기를 맞아 싱크탱크의 역할 확대 및 강화가 요구되고 있다.

한국은 이제 ‘추격형’ 국가에서 ‘선도형’ 국가로 위치가 격상되었다. 한국 정책에 대한 벤치마킹 사례가 증가하는 등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던 한국의 국정운영 및 정책역량도 재평가되고 있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의 싱크탱크들도 ‘선도국가 대한민국’의 싱크탱크로서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선도형 국가건설을 위한 실행력은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한국은 민간의 역량이 발달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싱크탱크의 필요성을 절감한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설립되었으며, 1980년대에 들어 재벌 소속 싱크탱크가 다수 설립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주요 정책결정과정에서 불필요한 국가자원낭비와 국론분열의 극복, 그리고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정책결정과정의 정착을 위한 필요에 따라 우리 사회에 싱크탱크가 급속히 늘어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책결정과정의 전문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정책지식생태계는 자생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정부 주도의 개발 계획을 지원할 목적으로 탄생한 국책연구기관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이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독지가의 지원으로 다양한 싱크탱크가 생겨난 미국이나, 세계대전을 치루며 전쟁과 외교정책에 대한 논의를 하던 그룹이 체계화된 유럽의 싱크탱크와는 다른 형태의 한국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과거 국가 정책은 리더를 포함한 소수 집단 내에서 논의되고 결정되었으나, 현대 민주주의의 발전과 사회의 복잡화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정책 결정과정에 포함시키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이 모인 두뇌 그룹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싱크탱크에는 다양한 정의가 존재하며, 싱크탱크는 각 나라의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발전해 왔다.

새로운 역할과 도약이 요구되는 국내 싱크탱크의 당면과제는 무엇인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보고서 <정책지식생태계의 선진화 연구>(연구책임자: 우천식 선임연구위원)를 기반으로 국내 싱크탱크의 특징, 한계, 과제를 살펴본다.

■ 한국의 싱크탱크 진단

한국의 싱크탱크는 1966년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1971년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설립되면서 정책지식생태계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1970년대 한국개발연구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 개별 부처와 직접 연계된 국책연구기관이 등장했고, 1999년에는 연구회 체제가 출범했다. 

지금은 여러 유형의 싱크탱크가 있다. 재정지원 측면에서 구분하면 정부출연 연구원, 지방자치단체출연 연구원, 민간연구소, 대학내 연구소, 정부직할 연구기관 등으로 나뉜다. 민간연구소는 순수한 민간재단연구소, 기업부설연구소, 개인연구소 등이 있다.

o 정부출연 싱크탱크는 그동안 고성장 시대의 정책지식 생산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으나 현시점에 와서는 한계가 존재한다.

연구의 자율성 및 독립성 약화, 관료 보조형 단기 정책집행 연구, 우수 연구인력 유출, 고위 정책결정권자의 활용도 저하 등의 문제에 직면함에 따라 우리나라 특유의 국책 싱크탱크들은 축적된 역량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선진국의 발전 궤적을 좇아가는 추격형 전략이 한계에 직면했음을 인지⋅공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새로운 전략과 정책 개발에는 소극적이라 할 수 있다.

o 민간기업형 싱크탱크는 경제⋅경영⋅산업 등과 같은 전통적인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을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 역할이 소속 기업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므로 연구 주제 설정이나 결과물 산출에 있어 자율성과 독립성 측면에서 제약이 존재한다.

o 대학부설연구소는 양적인 면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으나, 연구소의 난립화, 재정 취약, 활동 미약, 전임연구원의 부족 등 다양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소는 소수의 인력에 의존하고 있으며, 연구소의 주요 업무인 학술행사 실적도 부실한 상황이다.

o 참여연대,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등 주요 시민단체들은 경제, 정치, 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책 대안들을 제시하였고, 적지 않은 제도개혁을 견인해 왔다. 하지만 사회변화에 따른 장기적 정책의제 설정 실패, 재정 및 인력난이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  대학 연구소 현황

대학은 연구인력의 질적 수준이나 양적으로 활용 가능한 인력풀에서도 다른 싱크탱크 대비 차별성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학문적 연구수행의 속성상 대학은 연구의 독립성이 오랫동안 보장되어 온 특징을 지닌다.

국내대학의 정책연구기관으로서 싱크탱크는 대부분 대학 설립 이후 자생적인 연구소로 출발해 온 경향이 있다. 최근에는 외부 연구비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대학 차원의 정책연구소들도 크게 늘어났다.

매년 발표되는 대학연구활동 조사에 따르면, 대학의 정책연구를 담당하게 될 정책연구소는 2015년 4,714개에서 2019년 5,290개로 늘어나 지난 5년간 약 12.2% 증가했다.

대학의 정책연구소에서 개최하는 학술행사를 정책지식생태계 활성화의 중요한 지표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학술대회 개최 상위 10개 대학이 전체 학술대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 정도이다.

한경비즈니스의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 조사 중 대학 관련 싱크탱크로서의 정책연구소는 10개 내외로, 전체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100대 싱크탱크에 포함된 대학연구소는 조사 초기에 6개에 머물다가 2015년에 12개가 포함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 10개 내외가 포함된다.

한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글로벌 싱크탱크 순위에서는 국내 대학연구소가 단 1개만 포함된바, 국제적 비교에서는 열악한 수준이다.

국내대학의 싱크탱크로는 유일하게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2015 년에 77위로 평가된 이후 2020년에는 75위로 2단계 상승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해당 순위에는 미국과 유럽의 대학 내 정책연구소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중국, 싱가포르, 호주 등 각국의 여러 대학 내 싱크탱크들도 포함되어 있어 국내대학의 싱크탱크들이 앞으로 더욱 꾸준히 국제적인 경쟁력을 높일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 향후 정책지식생태계 차원에서 국내대학의 정책연구기관으로서의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전략을 마련하고, 대학 정책연구기관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예산 및 자율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학 내 싱크탱크가 정책연구기능을 유지하고 정책연구자 집단과의 네트워크를 꾸준히 확대해 나가려면 대학이 지닌 ‘대학원생 및 연구자가 모여 있어 학문후속세대의 양성이 가능하고 대학연구자들이 정책연구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정책지식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 국내 정책지식 생태계의 한계

공공연구기관 중심의 국내 정책지식 생태계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지닌다.

o 공공연구기관 간 유사⋅중복 연구 등 소모적 경쟁 심화

• 부처 영역 넓히기 및 경쟁으로 인해, 부처 소속 연구기관들의 연구 구분이 거의 불가능(유사 연구 진행)
• 전문성을 기준으로 정책지식 연구의 분산화를 추진하였으나, 정책지식 생태계 내의 분절화 현상이 발생되고 상호작용 미흡

o ‘연구비 따기’ 현상으로 돈이 몰리는(유행)  분야의 무분별한 참여

• '연구과제중심(Project Based System: PBS)' 제도로 인해 연구기관들이 본연의 임무나 주요 전공 영역과 동떨어지더라도 돈이 몰리고 유행하는 분야라면 무리하게라도 과제를 엮는 경쟁 발생
• 부처 영역 넓히기 및 경쟁으로 인해 부처 소속 연구기관들의 연구 구분이 거의 불가능한 현상 발생

o 정권과 행정수반의 강한 영향으로 인한 연구의 자율성 결여

• 공공연구기관이 처한 환경은 일반적인 혁신적 환경조건 이외에 정부의 강한 지배를 받으며 그 제도적 환경에 종속
• 따라서 정부의 관리통제 요구에 적응하는 것이 연구기관의 생존과 운영의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중요
• 공공연구기관별 차이는 존재하나 예산 경직성 및 평가체계의 종속성

o 민간 및 외부 연구자료의 우수성으로 인한 상대적 신뢰 하락

• 민간 연구기관의 증가 및 연구 결과물 증가
• 해외 사례 및 해외 연구자료에 대한 의존성 증대

o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정책지식의 부족한 정책 활용성

• 정책지식에 내재된 활용성 문제
• 정부의 필요에 의해 생성된 지식의 제한적 활용
• 정부기구의 세분화, 정책 이해관계자 및 복잡성 증가

o 경쟁으로 인한 협력적 연구 문화의 부재

• 공공연구기관의 협력 필요성을 인지하나 실질적으로는 미약
• 안정적인 연구비 부족으로 인해 발생되는 연구비 경쟁으로 인한 협력 연구 부족
• 협력연구 추진을 위한 관리제도 및 운영방식의 소극적인 접근 - 정부의 예산지원방식 및 기관평가체계가 달라 유형별 제도적 차이가 큼에 따라 발생되는 실질적 협력연구의 어려움 
• 폐쇄적인 연구문화, 정보교환 및 인력교류의 어려움

■ 정책지식 생태계 도약을 위한 비전 및 발전전략 필요

그동안 한국 정책지식 생태계는 국내 정책에 기여했으며 일정 수준의 역량을 축적하였으나, 아직 미흡한 점이 존재한다. 급속히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정책 지원과 정책을 생산하는 한국 정책 지식생태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비전과 전략 부재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정책지식을 생산하는 공공연구기관의 낮은 개방성, 칸막이 업무, 과도한 경쟁체제, 경직적 운영제도로 인한 전략 창출 협력 부재는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분산되어 있는 정책지식 역량을 집중하고, 글로벌 선도 수준의 정책 지식 역량과 프레임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가 시행하지 못하는, 새로운 도전적⋅선도적인 전략과 과제를 제시하고, 이를 세계와 공유하고 선도할 수 있는 전환적 지식생태계 플랫폼이 요구된다.

출처: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보고서 <정책지식생태계의 선진화 연구>(연구책임자: 우천식 선임연구위원)

미국을 비롯한 선도 국가들에서는 싱크탱크를 통한 풍부한 정책지식 생산 및 전문가의 기여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한 최근에 와서는 세계 주요 싱크탱크간 글로벌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세계적 차원의 정책지식 공동체가 형성되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이슈에 대한 공동정책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도 정책지식 생태계의 체계화 및 전략적 글로벌화를 통해 정책지식의 글로벌 선도국가로 진입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정치문화적 특성에 적합한 싱크탱크 활용방안을 개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책임성(accountability) 강화와 국가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민주화 이후 구축해 온 대한민국 정책지식 생태계의 재정비를 통해 다음 단계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먼저 정책지식을 통합하고, 개방형 혁신을 통해 정책지식을 국내외로 전파하여 정책 생산과 수요의 상호작용을 글로벌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싱크탱크들간의 자유로운 경쟁을 유도하고, 재정지원을 확대하며, 또한 외부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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