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와 연보, 기록물로 만나는 청년 백남준
상태바
텍스트와 연보, 기록물로 만나는 청년 백남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4.23 13: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백남준과 미디어아트, 그 시작: 1958-1963 독일 라인지역에서 | 수잔네 레너르트 외 지음 | 전선자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 216쪽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남준에 대해 기억하는 모습은 미디어아트 창시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국내외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는 중장년 이후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한 시기, 청년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그 시작을 만날 수 있다.

해가 뜨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백남준이 독일 라인강 주변 지역에서 보낸 이 기간(1957-1963)은 그의 생애에서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매우 결정적인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남준 예술에 관한 연구 가운데 초기인 이 시기에 관한 연구는 여전히 불모지로 남아 있다. 이 시기는 백남준이 예술가로서 가장 중요한 토대를 다진 시기로서, 이 시기에 대한 연구는 백남준의 예술철학과 미디어아트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을 파고드는 일이다. 

다행히 이 시기에 대한 연구의 물결이 2005년 라인지역에서 일어났다. 2005년 쾰른 아트 페어 아트 콜로그네(ART COLOGNE)](2005.10.28.~11.1) 전시회에서 ‘라인지역에서 백남준의 초기 시절’이라는 주제로 전시가 이루어졌다. 국제미술품거래협회의 중앙아카이브(일명 차딕[ZADIK])의 주도로 이 중앙아카이브 소유의 녹음 기록물들과 쾰른시 역사기록실에 보관된 마리 바우어마이스터(Mary Bauermeister)의 소장물, 즉 쾰른을 비롯한 뒤셀도르프, 부퍼탈, 본 등에서 백남준과 함께한 모든 콘서트에 대한 것들을 전시하고, 서부독일방송국(WDR)의 협력으로 백남준의 동영상 창작물에서 발췌한 작품들을 상영했다. 이로써 쾰른 아트 페어에서 백남준 초기 시절의 이 ‘역사적인 작업들’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같은 해에 전시회의 내용을 담아 이 책 『백남준과 미디어아트, 그 시작(Nam June Paiks frühe Jahre im Rheinland)』으로 출간했다. 

이 책은 텍스트와 연보, 그리고 기록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 수잔네 레너르트는 1958년부터 1963년까지를 백남준의 청년기로 보았고, 이 초기 시절 백남준이 독일 라인지역에서 홀로 또는 그의 플럭서스 동료들과 함께 어떻게 기존의 통념과 법칙에 저항하며 새로운 예술을 추구했는지를 정확한 자료를 통해서 명확히 설명했다. 그녀가 텍스트 주제로 사용한 문구 “화창한 날 라인강의 물결을 세어라. 바람이 부는 날 라인강의 물결을 세어라(On sunny days, count the waves of the Rhine. On windy days, count the waves of the Rhine.)”는 백남준의 초기 활동을 비유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이 문구는 1962년도 6월 달력(부퍼탈: 캘린더 출판사)에 나와 있던 것으로서 백남준이 인용했던 구절이다. 이것은 다양한 예술실험을 끊임없이 한 그의 젊은 나날을 연상시킨다.

 

1958-1963 독일 라인지역에서, 백남준을 만나다<br>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Paik Nam June, 1932-2006)<br>
                                              1958-1963 독일 라인지역에서, 백남준을 만나다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Paik Nam June, 1932-2006)

텍스트에 이어서 저자는 1958년부터 1968년까지의 연보를 작성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자료가 되는 전문 서적, 인터뷰, 신문 기사 등에서 발췌한 글들로 그 당시의 라인지역을 예술사 속에서 한 지표가 되었음을 인식시킨다.

마지막으로 브리기테 야곱스(Brigitte Jacobs)가 기록물들(1958-1968)을 아홉 단계로 구성해서 백남준 예술의 진화과정을 입증한다. 시간적 구조로 된 기록물들의 구성은 마치 백남준의 행보가 ‘지금 여기’에서 다시 ‘날 것 그대로’ 현존하는 듯이 실증적 속살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독자들은 이 변화들을 생생하게 느끼며 그의 행보를 따라갈 수 있다. 특히 이 기록물들은 당시 라인지역에서 일어난 예술혁명을 직접적으로 목격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당시 패전국인 독일에는 연합군들이 주둔해 있었다. 이 연합군들은 특이하게도 국가마다 자국의 젊은 군인들을 위한 자국 방송국을 함께 데려와 있었다. 이 방송국들은 젊은 청취자들을 위해서 더 좋은 콘텐츠가 필요했다. 그래서 모든 방송국은 실험적인 작품들까지도 사들여 방송했다. 이로 인해 실험예술가들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유’와 ‘기회’를 갖게 되었고, 곧바로 이곳은 문화적 다양성과 함께 예술 간 경계를 넘나드는 무궁한 예술적 통·융합의 가능성을 품게 되었다. 그야말로 라인지역은 새롭게 창조될 예술과 문화의 플랫폼이었다. 여기서 백남준은 그의 동양적 사고가 서양의 전통문화와 상충하면서도 어떻게 조화를 찾아가야 할지를 셀 수 없는 ‘라인강의 물결’만큼 고민하고 실험했었다.

백남준의 예술적 행보는 음악에서 행위예술(퍼포먼스아트), 전자미디어로 이어진다. 각 행보마다 전환점을 이루는 계기가 있었다. 이 책에 실린 기록물들은 행위예술에서 전자미디어로 이어지는 백남준의 행보를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백남준에게는 시간예술인 음악이 언제나 기본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작업 속에는 음악적인 작업원리가 보인다. 즉 ‘가시화의 방법’과 ‘다양한 매체들을 동시에 이용한’ 백남준만의 행위예술인 ‘행위음악’에서 체득한 감각적인 경험을 사용하면서 시간을 구조화하는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그에게 가장 중요한 테마였다. 그리고 이 기본적인 예술적 역량은 백남준이 1958년부터 1963년까지 독일 라인지역에서 실험한 다양한 예술활동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책에서 보여주듯이 음악에서부터 행위(Aktion, 악치온)와 플럭서스(Fluxus)를 거쳐 미디어에 이르는 결정적인 발전 단계가 그의 작품 속에 담겨 있다. 특히 유럽의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는 국제적인 각성과 궐기로 특징지을 수 있는 개방적인 상황이었다. 이때 그는 자신의 발상을 변환시킬 실험적인 주변 환경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실존적 문제에 대한 그의 탐색은 (그의 후기 작품과는 상반되지만) 일부는 꾸밈없이, 또 일부는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당시 예술계에는 전환기, 작품의 고전적 개념의 해체, 개념화 그리고 행위주의적인 경향 또 장르의 중간 사이로 가는 경향들의 강한 밀어붙임이 예고되고 있었다. 라인지역에서 이러한 것들이 매우 뚜렷하게 드러났다. 또 이 지역에서 일어난 이러한 일들은 마치 눈금이 있는 시험관이 눈금의 경계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처럼 시범을 명확히 보여 주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