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닌 브론즈’를 통해 본 서양 박물관의 약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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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닌 브론즈’를 통해 본 서양 박물관의 약탈의 역사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4.17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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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약탈박물관: 제국주의는 어떻게 식민지 문화를 말살시켰나 | 댄 힉스 지음 | 정영은 옮김 | 책과함께 | 440쪽

 

대의 서양 박물관은 대부분 세심한 선택과 기획을 거친 제국주의 시대 약탈물로 채워져 있다.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진열장에 전시된 문화재 옆에는 이름과 날짜, 출처가 적힌 설명판이 놓여 있다. 그러나 그것이 훔쳐온 물건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다. 

‘베닌 브론즈’는 식민주의의 탐욕성과 수탈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물 중 하나다. 나이지리아 베닌시티 일대를 통치했던 오바(왕)들의 역사를 기록한 수천 점의 청동 장식판과 세공 상아 작품을 통칭하여 이르는 ‘베닌 브론즈’는 1897년 영국의 공격 당시 약탈되었다. 그렇게 약탈된 문화재는 빅토리아 여왕의, 영국박물관의, 그리고 수많은 개인 수집가들의 소장품이 되었다. 오늘날 ‘베닌 브론즈’는 문화재 반환과 배상, 박물관의 탈식민화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있다.

1897년 1월, 10여 명의 영국인 사절단이 서아프리카 베닌 왕국을 방문하던 중 원주민의 습격으로 사절단의 상당수가 살해당하는 ‘베닌 학살’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빌미로 영국은 1897년 2월부터 약 3주간 이른바 ‘베닌 원정’이라 불리는 ‘응징 작전’을 통해 수천에 달하는 대량학살과 마을 파괴, 그리고 심대한 문화적 약탈을 자행한다. 

옥스퍼드대학 피트 리버스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지은이 댄 힉스는 당시 영국군의 응징 작전들을 더 큰 군사적 움직임의 차원에서 분석하고 베닌시티에서 벌어진 파괴가 오늘날까지 어떤 영향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재고해보고자 한다. 베닌시티 원정은 나이지리아를 영국의 보호령이자 식민지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다. 영국이 서아프리카에서 벌인 수많은 ‘응징 작전’은 사실 응징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베닌시티 원정에서 영국군이 약탈한 왕실 예술품과 종교적 성물들은 전 세계의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 베닌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물관과 미술관의 수는 150곳 이상이다.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베닌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비공개 컬렉션의 수도 그 절반은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저자는 이 ‘작은 전쟁’의 이론과 배경, 전개 과정, 피해 상황, 특히 ‘베닌 브론즈’라 불리는 청동 문화재의 대량반출과 그 이후 전 세계로 흩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한다. 이 사례를 통해 제국주의 시대 영국의 식민지적 폭력을 드러내고 약탈 문화재 전시의 문제점을 역설하는 저자는 베닌 브론즈의 즉각적인 반환을 강력히 촉구하는 한편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식민지 시대 부채 청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식민지 폭력의 전리품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을 그저 중립적인 유물의 보관소로 보아야 할까? 박물관은 그저 아프리카의 예술품과 유럽의 조각, 회화를 나란히 전시함으로써 아프리카의 창의성을 보여주고 매년 박물관을 찾는 수백만의 관람객에게 세계문화유산을 보여주는 관리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식민지에서 학살을 통해 약탈한 왕실 유물과 성물을 지금처럼 계속 전시하는 한 박물관은 ‘인종과학’의 이름으로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폭력적인 장소로 남을 것이다. 이러한 박물관은 전쟁기념관처럼 유럽과 북미 곳곳에 자리 잡은 채 남반구의 후진성을 강조하는 장치가 되고, 극단적 폭력과 문화적 파괴의 연장에 공모하는 장소, 대규모 학살과 문화재 파괴, 그리고 지속적인 비하의 상징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식민지 약탈물의 반환은 균형의 문제도 아니고, 편을 가를 문제도 아니다. 약탈물 반환은 지금까지 가려져 있던 문제를 지적하고, 지금도 진행 중인 제도적 인종주의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다. 놀랍게도 영국 박물관계의 고위 전문가나 정치인들 중에는 여전히 아프리카 국가들의 문화재 관리 능력을 문제 삼는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 1896년 아샨티 전쟁에서 ‘발견’된 14세기 영국 청동 물주전자를 영국박물관으로 가져오며 근 500년의 세월동안 물주전자를 잘 보관해온 아샨티의 관리 능력을 문제 삼았던 것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돌려줘봤자 누가 다시 훔쳐갈 뿐”이라는 말은 도둑들의 표어일 뿐이다. 영국의 국립박물관들은 (나치 약탈 예술품이나 인간유해 반환이라는 예외가 분명이 있었음에도) 소장품 처분을 허락하지 않는 법을 탓하며 훔쳐온 것들을 되돌려주지 않고 원소유국에 장기 임대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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