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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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 이기중 전남대·영상인류학
  • 승인 2022.04.1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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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시네마 베리테』 (이기중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106쪽, 2022. 02)

 

1. ‘영화 진실’, 시네마 베리테

세상의 모든 재현 행위는 리얼리티와 재현물의 관계에 천착할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사에서 이러한 리얼리티와 재현의 관계를 집요하게 탐구한 사람은 바로 <카메라를 든 사람>(1929)의 영화감독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였다. 그는 ‘기계’로서의 영화적 장치에 주목하면서 영화는 문학이나 연극과 다른 언어이며, 영화에 의해 전달되는 리얼리티의 세계는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라 ‘시네 아이(cine-eye)’, 즉 카메라가 본 ‘영화의 진실’이라는 의미에서 ’키노 프라우다(kino pravda)(영화 진실)‘라고 불렀다. 

이후 지가 베르토프는 한동안 러시아에서는 거의 잊혀진 존재였으나 1960년대 초 마르크스 계열의 영화사학자인 조르쥬 사둘(Georges Sadoul)과 사회학자인 애드가 모랭(Edgar Morin)에 의해 재발견되었으며, 지가 베르토프의 ‘키노 프라우다’는 조르쥬 사둘에 의해 프랑스어로 ‘시네마 베리테(cinéma vérité)’로 번역되었고, 이후 시네마 베리테는 장 루시(Jean Rouch)에 의해 하나의 영화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 시네마 베리테의 계보

일반적으로 ‘시네마 베리테’라고 하면 가장 먼저 장 루쉬의 <어느 여름의 기록(Chronicle d'un été)>(1961)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지만 본서에는 시네마 베리테의 역사를 더욱 넓게 잡고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의 <북극의 나눅(Nanook of the North)>(1922)에서 메이즐즈 형제들(Maysles brothers)의 <회색 정원(Grey Gardens)>(1976)에 이르는 시네마 베리테 계보를 살펴보았다. 

 

                                                      북극의 나눅

한편 1960, 70년대에는 프랑스의 시네마 베리테와 북미의 (아메리칸) 다이렉트 시네마((American) direct cinema)를 통틀어 ‘시네마 베리테’라고 부르거나, 또는 미국의 다이렉트 시네마를 ‘아메리칸 시네마 베리테(American cinema verite)’라고 불렀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도 ‘시네마 베리테’로 정하고, 시네마 베리테의 계보를 시네마 베리테의 선구자, 프랑스의 시네마 베리테, 북미의 다이렉트 시네마, 관찰적 시네마의 4가지 주제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3. 시네마 베리테의 선구자들

‘다큐멘터리 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로버트 플래허티가 영화 작업을 시작하던 1910년대에는 도큐멘테레(documentaires)(당시 프랑스어로 ‘기행 영화(travelogue)’를 일컫던 용어)와 같은 풍물 기행식 영화가 유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버트 플래허티의 영화 철학과 방법론은 이와 달랐다. 그는 이누이트(Inuit) 사람들과 오랜 기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영화를 만들었으며, 당시에 만들어진 흥미 위주의 기행 영화와 달리 극(劇)적인 내러티브를 사용하여 이들의 이야기를 영화화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다큐멘터리와 같은 논픽션 영화를 ‘카메라에 의한 객관적 장면의 포착’이라는 식의 실증주의적인 입장에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볼 때, 로버트 플래허티가 <북극의 나눅>에서 보여준 영화 방식은 매우 시대를 앞선 것이며, 또한 이는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 진실’이나 장 루쉬의 ‘시네마 베리테’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카메라를 가진 사람

프랑스 시네마 베리테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장 루시(Jean Rouch) 또한 “나의 꿈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지가 베르토프의 기계적 눈과 귀, 그리고 로버트 플래허티의 감각적인 카메라를 갖는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로버트 플래허티와 지가 베르토프의 영화적 시각과 방법론은 시네마 베리테의 개념과 부합되는 측면이 많다. 그리고 ‘시네마 베리테’의 용어 또한 지가 베르토프의 ‘키노 프라우다’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시네마 베리테에 관한 논의는 이 두 감독의 작품에서 출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북극의 나눅>과 <카메라를 든 사람> 두 작품이 ‘시네마 베리테의 씨앗을 심어 놓았다’는 의미에서 로버트 플래허티와 지가 베르토프를 ‘시네마 베리테의 선구자’라고 이름 붙였다.


4. 프랑스의 시네마 베리테

프랑스에서 시네마 베리테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인류학자인 장 루시와 사회학자인 애드가 모랭이 있었다. 당시 이들은 ‘시네마 베리테’에 대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프랑스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1960년, 파리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기록하고, 동시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실’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만들고자 하는 영화에 대해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하나의 연구이자 인간을 연구한다는 의미에서의 민족지적 영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감독들과 연기자들에 의해 수행되는 영상 커뮤니케이션의 실험이 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영화의 제목을 ‘어느 여름의 기록’이라고 이름 붙였다.

 

                                                               어느 여름의 기록

 

<어느 여름의 기록> 다음 해에 만들어진 크리 마케르(Chris Maker)의 <멋진 오월(Le Joli Mai)>(1962) 또한 프랑스 시네마 베리테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 두 영화는 1960년대 초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여러 면에서 닮아있다. 하지만 크리 마케르는 자신의 영화 방법론을 시네마 베리테가 아닌 ‘시네 마 베리테(ciné ma vérité)’, 즉 ‘시네마, 나의 진실’이라고 불렀으며, 이러한 자신의 이러한 영화 철학을 <멋진 오월>에 담았다.


5. 아메리칸 다이렉트 시네마

1960년대 초 북미에서도 프랑스의 시네마 베리테와 같은 새로운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출발점은 1960년 로버트 드류(Robert Drew)가 주축이 되어 만든 드류 동료(Drew Associates) 영상집단이었으며, 리차드 리콕(Richard Leacock), 돈 알란 페니베이커(Donn Alan Pennebaker), 알버트 메이즐즈(Albert Mayseles)와 같은 젊은 영화감독들이 이곳에 모여 아메리칸 다이렉트 시네마의 전통을 만들어갔다. 

 

                                                             뒤돌아 보지 마

이 가운데 리차드 리콕은 <행복한 어머니 날(Happy Mother's Day)>(1963), 그리고 돈 알란 페니베이커는 록 가수 밥 딜런의 콘서트 투어를 그린 <뒤돌아보지 마(Don’t Look Back)>(1966)와 몬테리 팝 페스티벌의 모습을 담은 <몬테리 팝(Monterey Pop)>(1968)과 같은 로큐멘터리(rokumentary) 영화의 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으며, 알버트 메이즐즈는 1961년에 동생 데이비드 메이즐즈(David Maysles)와 함께 메이즐즈 영화사(Maysles Films Inc.)를 만들어 영화 주인공의 개인적 삶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주로 제작하였다. 이 책에서는 옛 저택에서 은둔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두 모녀의 이야기를 그린 <회색 정원(Grey Gardens)>(1975)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프레데릭 와이즈먼(Frederick Wiseman)은 당시 다이렉트 시네마 감독 가운데 유일하게 드류 동료 영상집단과 관련이 없었던 인물이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첫 번째 영화인 <티티컷 풍자극(Titicut Follies>(1967)을 만들었으며, 이후 미국의 국립기관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공적 제도의 억압과 권력을 파헤치는 데 주력했다. 본서에서는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고등학교(High School)>(1968)를 다루었다.

한편 1960년대에 이 두 가지 다큐멘터리 전통이 동시에 출현한 배경에는 두 가지의 커다란 요인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소형 카메라와 동시녹음 장비와 같은 새로운 영상 기술의 발전이며, 또 다른 하나는 1960년대 이전의 다큐멘터리 영화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현 방식을 찾으려는 영화감독들의 열망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시네마 베리테와 북미의 다이렉트 시네마는 영화 철학과 방법론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한 마디로 프랑스의 시네마 베리테는 ‘인터뷰’라는 기제를 통해 영화 대상의 삶에 개입하고 탐구하는 방식을 택했지만, 북미의 다이렉트 시네마는 영화감독이 영화 대상이나 영화적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이들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갔다.


6. 관찰적 시네마

관찰적 시네마는 시네마 베리테가 한창 유행하던 196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 나타난 영화 전통이다. 관찰적 시네마의 출현 배경은 시네마 베리테와 유사한 점이 많지만, 인류학과 영화를 접목하려는 학문적 욕구에서 나왔다는 점이 다른 일반 다큐멘터리 영화와 다르다. 한편 관찰적 시네마의 전통을 만든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인 콜린 영(Colin Young)은 ‘관찰’의 개념을 중시하면서 관찰적 시네마는 ‘주장하는’ 영화라기보다 ‘보여주는’ 영화라고 하였으며, 로저 샌들(Roger Sandal) 또한 ‘관찰’을 ‘해석’ 및 ‘주장’의 반대 개념으로 보았다. 그리고 관찰적 시네마는 “선언적이라기보다는 경험적인 것, 특정한 것, 구체적인 것을 중시하는 영화”라고 밝혔다. 이 책에서는 관찰적 시네마의 선구자이자 대표적인 민족지영화(ethnographic film) 감독으로 손꼽히는 데이비드 맥두걸(David MacDougall)의 <가축들과 함께 살기를>(1974)을 통해 관찰적 시네마에 대해 살펴보았다.


7. 시네마 베리테의 연구

1895년 영화가 탄생한 이래 수많은 영화 전통과 사조가 나타났지만, 시네마 베리테처럼 하나의 커다란 영화 전통을 만들고, 오늘날까지 영화 이론과 제작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영화 사조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시네마 베리테는 리얼리티와 재현, 감독과 영화 대상과의 관계, 영화 미학, 영화 언어, 그리고 영화 기술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연구는 영화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기중 전남대·영상인류학

서강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석사학위를, 그리고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영화와 영상인류학을 전공하고 석사, 박사를 받았다. 현재 전남대학교 문화인류고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사)한국시각인류학회 회장과 한국국제민족지영화제(KIEFF)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한 전 세계 130개국이 넘는 곳을 여행하며 여행과 음식에 관한 다양한 저술 활동을 벌이고 있는 ‘지적 보헤미안’이기도 하다. 『Wedding Through Camera Eyes』로 미국인류학회에서 수상했으며, 저서로 『일본 국수에 탐닉하다』, 『렌즈 속의 인류: 민족지영화와 그 거장들』, 『남아공 무지개 나라를 가다』, 『맥주수첩』, 『유럽맥주견문록』, 『북극의 나눅: 로버트 플래허티의 북극 탐험과 다큐멘터리 영화의 탄생』, 『북유럽 백야여행』, 『동유럽 보헤미안을 가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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