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재정중독의 디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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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 재정중독의 디톡스
  • 김일중 교수 성균관대·법경제학
  • 승인 2022.04.1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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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난 대선에서 여야 모두 숱한 무상복지 구호들을 던졌다. ‘현금’ 복지만 봐도 그 수급조건이 청년, 결혼, 출산, 저소득자, 군필, 신생아, 아동, 농민, 비정규직, 상병, 임대, 장년, 문화예술, 농촌거주 등을 총망라했다. 바로 기억나는 것들만 이 정도다. 막바지에는 빚도 탕감해준다고 했다. 끝판왕은 5천만 국민의 통장에 ‘무조건’ 쏴준다는 기본소득이었다. 소액에서 점점 큰 액수로. 선거는 끝났으나 앞으로를 위해 그 중독적 구호들을 잠시 곱씹는다. 

며칠 전 발표된 총 국가부채가 벌써 2200조 원이다. 계속 빚에 의존할 수는 없으니 이 무시무시한 공약들을 실천하려면 결국 역대급의 증세가 필수다. 그래서 위 구호들을 단순화시키면 다음과 같다. “유권자 여러분, 추가 징수한 총액을 국민 숫자로 나눠 조건 없이 되돌려 드릴 테니 증세에 동참해주시오!” 즉 내 근로의 과실을 남들과 더 나누되 국가도 날 더 확고히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이다. 5천만 국민이 서로 곳간을 헐고 시쳇말로 ‘n빵룰’에 가까이 가자는 뜻이다. 그렇게 될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과연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 

n빵룰이 성공하려면 모두가 예전만큼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런데 보통사람인 나는 향후 근로시간을 줄일 것이다. 첫째, 내 근로의 과실에서 더 높은 세율로 뺏기므로 남는 게 줄어든다. 둘째, 일 안 해도 최소한을 보장해주는 무상 소득들에 우선 기대려는 타성에 어느새 젖게 된다. 이 두 가지는 시간당 손수 근로로부터 내가 오롯이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유익을 예전보다 떨어뜨린다. 반면 근로의 수고로움은 여전하다. 따라서 일을 적게 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이른다.

다른 사람들 마음도 얼추 비슷할 것으로 믿는다. 다들 더 적게 일하니 세수와 국가보조도 줄어 결국 살림이 쪼그라든다. 그렇다고 내가 굳이 튀는 행동은 안 할 듯하다. “나 혼자 일 더 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겠나, 그냥 이렇게 살자”면서 말이다. 얄궂은 유인의 덫에 갇히는 꼴이다. 좀 다르게 생각하는 시민도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그럴 거라는 의미이다. 이런 나의 사고를 후진적 시민의식 등으로 비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국민에게 씌우는 덤터기다. 강화된 n빵룰이 문제의 발단이다. 
 
곳간들을 마구 섞을수록 우리 삶은 찌든다. 이게 바로 하딘이 「사이언스」지 논문에서 설명한 ‘공유의 비극’이다. 재산권이 불안해서 생긴 비극이다. 그 훨씬 전에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묘사했던 ‘정글’의 함의와도 직결된다. 네 것 내 것 가리지 않는 ‘정글’에서의 삶을 그는 빈곤, 외로움, 불결, 잔인, 단명 등으로 규정했었다.

공동체 의식을 함양해서 예전처럼 열심히 일하던 모멘텀을 되찾자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이타심도 있고 노동의 신성함도 잘 안다. 하지만 나의 것을 먼저 생각하는 DNA의 힘이 실로 강하다는 점을 역사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행여 근로 강도를 회복시키고자 모종의 할당제 도입 같은 것을 상상할지 모른다. 아뿔싸, 봉건사회의 농노 지대와 같은 흑역사가 불현듯 머리를 스친다. 전체주의적 발상이자 당연히 성공할 수도 없다. 

심지어 엄청난 소요재원의 상당액을 특정 소그룹에게서 징수하려 할 수 있다. 하버드 헌법학자 마이클먼이 명명했던 ‘다수에 의한 착취(majoritarian exploitation)’의 전형이다. 그 세목이 무엇으로 결정되든 당하는 정치적 소수들은 애먼 죄악세(sin tax)를 강요받는다는 자괴감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으리라. 그걸 목도하면서 동료 국민 다수가 받는 마음의 생채기는 또 어떨까.

사회부조와 사회보장을 더 촘촘히 하자는데 찬성한다. 단 그 방식은 열악한 계층에 대한 선별지원이어야 한다. 그리고 시장에서 혼자 대비하기 벅찬 유형의 위험들을 집단적으로 보장하되 운영은 엄격히 보험 형태를 띠어야 한다. 또 안전, 보건, 방재, 긴급구조 등 갈급한 혜택을 보편지원하는 사회복지·구휼 인프라들의 확충에도 왜 반대를 하겠는가. 이런 부문은 규모의 경제와 같은 공급 효율성도 살리는 작업인데 말이다.

코로나 위기 속 소외계층의 참담함은 실로 클 것이다. 지난 재난지원금들도 벼랑 끝에 몰린 그들의 지원에 썼어야 한다. 가령 5차 재난지원금 결정 이후 경기도는 추가로 상위 12%의 160만 명에게도 25만 원씩 지급했다. 그 재원을 대신 가령 500만 원씩 취약가구들을 지원했더라면 어림잡아 8만 가구가 힘을 얻었으리라. 당시 정부가 국민 88%에게 쓴 11조 원도 마찬가지이다. “소득하위 80%!”, “아니 88%!”, “아니 부자들의 조세저항이 있으니 100%로!”는 한낱 수사와 강변들이었다. 최우선 수급대상을 정확히 가려내어 단단히 생존케 해주는 유능한 정부를 우리는 고대했었다.

한바탕 왁자지껄했던 무대에는 이제 막이 내렸다. 그간의 재정중독성 외침들을 국민이 차분히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선거 직후 스스로 언급했듯이 대통령 당선인도 무리한 선심성 공약들에 대해서 그 이행의 어려움을 고하며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진솔한 리더십을 보여주기 바란다. 한 번의 커튼콜이다. 대신 지금부터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


김일중 교수 성균관대·법경제학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법경제학 전공). 연세대학교와 플로리다주립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수학했으며 한국법경제학회 회장과 성균관대 경제대학장을 역임했다. 국가가 발휘하는 극단의 두 강제력(收用權·刑罰權)과 법집행 과정에서의 권한남용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규제와 재산권』, 『법경제학 연구』, 『과잉범죄화의 법경제학』, 『Eminent Domain』(공저) 등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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