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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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어디로 가나
  • 조완규 서울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20.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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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근래 한국은 총체적 위기에 있다고 합니다. 총체적이란 국가의 기틀이 흔들릴 정도의 크기라고 해도 될 표현일 것입니다. 실제로 경제성장의 정체, 과학기술 경쟁력의 약화, 사회질서의 파탄과 도덕·윤리관의 실종, 정치계의 혼탁, 교육계의 편향된 이념주입식 교육, 안보의식의 둔화, 고령화 시대로의 급속진입 등,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분명 위기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경제실정을 보겠습니다. 전쟁을 치른 후인 1960년대 초 대한민국은 일인 소득이 8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세계 최빈국이었으며 그런 상황에서 국민은 과중한 방위비를 부담하여야만 했습니다. 그 같은 어려운 경제실정에 1997년 보유한 외환이 바닥나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빚을 내야 할 정도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국민은 소유하고 있는 금붙이를 정부에 내놓는 등 애국심으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였고 드디어 2010년에는 7%의 고도성장을 성취하였고 연 소득 2만 달러가 넘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러나 그 뒤 경제성장은 정체하였고 오히려 2012년 이후 성장률이 3%대로 쳐졌으며 2019년의 경제성장률은 단지 2.0% 대로 감소했습니다. 특히 고비용 저효율의 고질적 노동환경으로 인해 기업체는 중국, 동남아 등 저비용 국가로 생산공장을 옮기고 있으며, 따라서 청년실업자 수가 급속히 늘었습니다. 2011년 7.6%인 청년실업률이 2015년이 되면 9.2%로 증가하였습니다. 그간 선두를 달리던 조선산업, IT 그리고 자동차산업도 치받고 올라오는 중국 등 경쟁국에 자리를 내주어야 할 상황입니다.

그동안 이룩한 경제성장이 우수 과학기술인의 노력으로 가능하였지만, 최근의 초중등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말미암아 장차 유능한 연구인력 확보가 어려워질 전망입니다. 특히 호기심이 풍부한 초중등 학생에게 자연현상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유발할 교육정책이 긴요합니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과학기술력을 키우지 않고서는 국제경쟁 속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위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다음은 국민들의 건전한 도덕심과 윤리의식이 기본이 되는 사회를 조성하고 유지하는 일입니다. 첫째, 공직자의 부패관습을 없애야 합니다. 우리나라 공직자의 부패지수는 세계 37위로 대만이나 일본보다 훨씬 뒤지며 OECD 국가 중 하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최근에도 한 권력의 실세인 공직자가 그 힘을 믿고 10여 가지 잘못을 저질러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법을 배우고 또 강의하는 교수였다고 합니다. 정치계 지도자나 공직자가 윤리의식을 상실하는 등 도덕심 결여 행태가 계속되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고 이는 바로 국가의 위기로 이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성실 봉사의 의무를 잃고 부정을 저지른 공직자는 가장 엄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는 공권력 문제입니다. 공권력 남용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허약한 공권력입니다. 공권력은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하여 국민이 위탁한 정부의 권력입니다. 그러함에도 번번이 공공기물을 부수거나 공공장소를 점유하는 등 불법행위가 저질러져도 이를 방치하는 공권력의 허약한 모습을 봅니다. 불법시위를 제지하는 경찰관이 몽둥이질 당해도 이들을 방치하는 나라가 어찌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보전하는 민주주의 나라가 되기 위하여서는 공권력이 굳건하여야 하며 그렇지 않는 한 나라의 위기는 항상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는 또 어떻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임기 후 편안히 여생을 보내며 전임 대통령이 자리를 같이하여 담소를 나누는 풍경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 역시 나라의 비극입니다. 미국 친구는 어찌하여 우리나라 대통령이 하나같이 임기 후 곤욕을 치러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인들 행적을 캐면 온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선출한 대통령의 잘한 일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저희가 뽑은 대통령을 존경할 때 온 세계가 그 국민을 존경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정치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정책이나 법안제시보다는 진영논리로 패당 싸움에 열 올리는 불성실한 국회의원은 국민을 실망시키거나 피로하게 하며 이들이 국민의 지탄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불성실한 국회의원을 소환하거나 퇴출시킬 소위 국회의원 소환제가 확립되기를 바랍니다. 4년마다 치르는 국회의원 선거는 정권 심판을 겸하는 국가행사라 하겠습니다. 선거 때마다 나의 한 표가 나라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를 대신할 의원에게 표를 주어야 합니다. 건국 70년이 지난 오늘날의 정치인은 선대 정치인의 정열과 의연함을 배워야 하고 더 나은 나라 건설에 헌신할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국정을 다루는 정치인이 국가의식과 안보의식이 확고하지 않은 한 나라의 위기를 면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국가 안보체제도 점검해야 합니다. 남북 대치상태가 이미 70년을 넘고 있습니다. 남북 간에 십여 차례의 평화협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북측의 남쪽 적화야욕을 확인할 뿐 오히려 남북 간 긴장상태는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나이 어린 통치자가 권력과시를 위한 기습 등 돌발행위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할 것입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인공위성 개발 혹은 수소탄 등 핵폭탄 실험과 무시로 포격연습을 하며, 협박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전쟁도발을 견제하고 대응하기 위하여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시행하고 있지만 최근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이 훈련 규모가 축소되고 혹은 다른 나라에서 연습한다고 합니다. 시민의 안보의식을 함양하고 유사시에 대응할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 시민도 참여하는 군사훈련으로 개편되어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계속되는 북측 도발에 대응하는 훈련을 소홀히 하거나 이를 방치할 때 우리는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근래 현 정권이 추구하는 남북 간 평화구축도 단단한 국가안보 역량을 바탕으로 해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교육풍토에도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초, 중등학교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학입학 시험 준비과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주입식, 암기위주의 교육은 학생의 창의적 사고의 길을 억제합니다. 선생은 단지 지식을 전해주는 직업인이고 학생은 그들로부터 지식을 전수받는 객체일 뿐, 사제 간의 훈훈하고 끈끈한 情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습니다. 근래 초중등학교 과정은 오로지 대학진학 준비과정일 뿐, 전인교육을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특히 진보적 이념단체인 전교조 일부 교사는 건국이념과 국가주체성을 부정하고 반미운동, 미군철수 등 국가 안보와 배치되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거리로 나가 집단시위를 하는 등 교육공무원에게 금지된 정치활동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참교육을 내걸고 발족한 전교조 교사들이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돌이키기 어려운 위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쳐올 또 다른 위기는 바로 급속도로 진행되는 노령화 현상입니다. 1990년 전체인구의 5%였던 65세 이상 인구가 2015년에는 13%로 늘었으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노령화 국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노령층 인구가 증가하는 대신 젊은 층 인구가 줄었고 따라서 노동인력의 감소로 생산력은 2% 미만인 저성장 국가로 전락하였습니다. 성장속도의 후퇴와 인구의 노령화로 가계 부담률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최근 아이의 양육비, 교육비를 감내할 수 없다며 아이 낳지 않기로 한 젊은 층이 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출산율보다 사망률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결국 젊은 층은 증가하는 노인복지와 사회보장에 소요되는 재원을 부담하여야 할 책임을 져야 할 실정입니다. 결국, 인구의 노령화는 노동인력 감소로 인한 생산력 감퇴로 저성장국가로 전락할 것이니 어찌 이를 위기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비관만 할 일은 아닙니다. 진정 위기는 위기를 인식치 못하고 이에 대처할 능력이 없을 때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항상 위기를 발전의 기회로 활용하였으며 끝내는 빛난 역사를 창조해 온 슬기로운 민족입니다. 우리는 고려조 5백 년 그리고 이씨 조선 5백 년 동안 숱한 왜구 혹은 호란 등 난리를 겪었지만, 우리의 국토를, 그리고 우리 고유의 문화, 언어를 빼앗긴 일이 없습니다. 20세기 들어서 36년간 일제 식민지의 고통의 시기가 있었지만, 일제에 굴복한 일 없이 끝내는 역사적 광복을 이룬 민족입니다. 또 6·25전쟁 산물인 남북대치의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세계가 놀란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민족이니, 곧 위기를 활용하여 기적을 창출할 지혜를 가진 자랑스러운 민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 이 글은 지난 2016년 6월 1일 한국대학총장협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임

    
조완규 서울대 명예교수·생물학

서울대학교 총장, 교육부 장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 한국 한국생물과학협회장, 한국바이오산업협회장 등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에 초석을 쌓았다. 1994년 국제백신연구소(IVI) 국내 유치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현재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상임고문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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