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선투표제와 진보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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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선투표제와 진보정당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2.04.0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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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칼럼]

20대 대통령선거의 막이 내렸다. 유효투표의 48.56%를 얻은 후보가 최다득표자임을 근거로 ‘대통령당선인’으로 결정되었다. 세간에서는 유효투표율 차순위와의 격차가 0.73%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이번 대통령선거가 격전이라든지 향후 협치가 필요하다는 등의 의견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핵심은 최다득표자가 여전히 유효투표의 과반에 이르지 않은 채 당선인으로 결정되었다는 점, 더욱이 당선인이 얻은 유효표는 대통령선거권자(44,197,692명)의 37.09%에 불과하다는 점인데, 이는 대통령중심제의 민주공화국이 확보해야 하는 정치적 대표성에 문제 있음을 말해준다.

이른바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단순한 주장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이든 지방자치단체장이든 정치적 공동체의 대표에게는 그에 맞는 정치적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18대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유효투표의 51.55%를 획득하였으니 결선투표마저 필요하지 않았던 유일한 대통령선거였다고 지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대선에서도 박 후보는 대통령선거권자(40,507,842명)의 38.94%를 얻는 데 그쳤음을 기억한다면 대통령선거에서 요구되는 정치적 대표성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판단될 수밖에 없다. 그 정치적 대표성은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뿐만 아니라 당시 천만 명에 가까운 기권자의 정치 행위를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20대 대통령선거의 결과를 ‘정치적 패배’로 받아든 일부 국회의원들이 뒤늦게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대통령선거에서의 결선투표제가 헌법개정 사항인지 아닌지를 먼저 논쟁하여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음이 명백하므로 이들의 뒷북은 사후약방문임에 틀림이 없다. ‘대선에서의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빈번하였다. 가깝게는 2016년 발의된 ‘노회찬의원안’과 2107년의 ‘채이배의원안’이 있었다. 이 결선투표제는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대한민국헌법 개정안’에도 담겨 있었지만 모두 2020년 5월 29일 자동 폐기되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유효투표의 다수를 얻은 자를 대통령당선인으로 결정하는 ‘상대다수투표제’를 채택하는데, 이는 곧 지지하는 사람보다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경우라도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한편 현행 공직선거법 제187조 제1항에 따르면 유효투표의 다수를 얻은 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하면서도 ‘후보자가 1인의 경우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의 3분의 1 이상에 달하여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의 정치적 의미는 등록후보자가 1인이 되는 현실에 대한 우려보다는 유효투표의 다득표자는 최소한 선거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동안 대선 결과를 보면 이러한 해석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 흔한 선거 평론 대다수가 1위 후보와 2위 후보와의 격차에만 정치적 관심을 두다 보니 선거의 본질, 즉 고도의 정치적 행위임을 놓치고 있던 셈이다. 87년 체제 이후 실시된 8회의 대선 모두 복수의 후보들이 출마하였으나 ‘선거권자의 과반’을 득표한 당선인은 한 차례도 없었으며, 3분의 1 미만도 네 차례에 이른다. 노태우 후보 32.60%, 김대중 후보 31.97%, 이명박 후보 30.52%, 문재인 후보 31.60%였다. 김영삼 후보와 노무현 후보도 어렵사리 33.91%와 34.33%를 얻었을 뿐이며 박근혜 후보와 윤석열 후보 역시 선거권자의 40%를 득표하지는 못했다.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박근혜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상대다수투표제’에서 1위를 하여 당선인으로 결정되었음에도 기권자를 포함하여 60% 넘는 선거권자가 이들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데 한국 정치의 본질이 들어 있음은 명백하며, 그 정치적 대표성을 확보하였는지를 확인하는 제도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대통령선거를 하는 국가 중 프랑스, 오스트리아, 핀란드, 브라질, 인도 등 31개 나라가 선거권자는 물론 투표자 과반의 직접적 지지를 얻지 못한 채 당선인으로 결정해야 하는 상대다수투표제의 한계를 극복하자고 결선투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2002년 프랑스 대선의 경험은 결선투표제의 한계로 언급되긴 하지만 현재로선 가장 시의적절한 정치적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최소한 유효투표의 과반을 득표한 후보자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도록 하고, 과반을 얻은 후보자가 없는 경우 유효투표의 다수를 얻은 두 후보를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실시하여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고민의 실제는 이번 대선에서 다수 득표자 1위와 2위의 경우 오롯이 자신의 득표로써 유효투표의 48.56%와 47.83%를 획득하였다는 계산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랬는지 의문은 강하게 남는다. 심상정 후보의 2.37%를 합하면 이재명 후보가 50.20%를 얻어 역전하였을 것이라는 각본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이미 현실이 아님은 물론 윤석열 후보에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쓸데없는 짓이다. 필자의 관심은 이번 대선에서 결선투표제를 실시하였다면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 1차 투표에서 얻은 득표가 실제 어느 정도였을지다. 87년 체제 이후 진보정당의 지지도를 정확하게 확인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결선투표제가 있었다면 심상정 정의당 후보, 이백윤 노동당 후보 그리고 김재연 진보당 후보가 1차 투표에서 얼마나 득표하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결선투표가 이루어지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소수정당들이 참여하는 높은 수준의 정치협상이 이루어질 것이고 사라졌던 정치 의제가 되살아났을 것이다. 아마 2022년 3월은 ‘서울의 봄’처럼 ‘모두의 봄’이었을 것이다. 아울러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정당의 지지도와 득표수를 의석수에 반영할 수 있는 정치 개혁이 뒤따른다면 다양한 사회·경제·문화 영역에서의 요구가 정치체제와 정당의 움직임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가능하다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광역 또는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 위와 같은 정치적 이유에서 결선투표제가 도입되기를 소망한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전국교수노조> 부울경지부장 및 <경남교육연대>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민주법학> 편집위원장이며, 전공은 계약법으로 교육법, 인권법, 주택법, 법여성학 등에도 관심이 많다. 저서로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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