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 때문에 기본소득제가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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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 때문에 기본소득제가 필요하다고?
  • 민경국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3.2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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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칼럼]

인공지능(AI), 로봇 등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대량실업의 등장과 이런 실업이 초래하는 생계위협을 벗어나기 위해서 기본소득제가 필요하다고 한다. 디지털화로 노동사회의 기초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현재 부자든 가난한 자든 누구나 일자리를 상실할 위험성에 직면한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한다고, 다시 말하면 기계가 인간을 노동시장에서 몰아낼 것이라고 한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더는 근거 없는 우려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19세기 산업혁명 때에 기계로 인하여 일자리를 상실하고 이로써 인간들이 빈곤의 나락에 빠졌다고 한다. 기계는 인간의 노동력을 압도하고 점차 그 자리를 잠식해갔다고 한다. 181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러다이트 운동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불안과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21세기에는 디지털화가 불러오는 것은 실업과 소득의 상실인데 그 대비책은 탈 디지털화가 아니라 기본소득제다. 이런 점에서 과거의 기계 파괴 운동보다 매우 온건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기계가 기존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전제는 과거나 현재나 똑같다. 

그런 전제에는 기계도입 이전과 이후의 일자리는 주어져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주어진 케이크를 나눌 어느 한 사람의 몫을 크게 하면 다른 사람의 몫은 감소한다. 일자리도 주어져 있기에 인공지능에 일자리를 빼앗기면 그만큼 실업자가 증가한다고 한다. 이런 인식을 케이크 이론이라고 부른다. 이 이론이 옳은가? 일자리가 주어져 있다는 케이크 이론이 옳은가의 문제가 초미의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주목할 점은 로봇과 AI에 대한 수요 자체는 이들을 생산하기 위한 새로운 일자리뿐만 아니라 그들을 유지하기 위한 일자리를 창출한다. 기술은 스스로를 만들거나 유지할 수 없고 오로지 인간의 손을 빌려야 한다.

요컨대 일자리를 파괴하는 로봇이나 AI는 부의 증가에 영향을 미쳐서 간접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 경쟁 시장에서 노동 절약적인 기술발전은 생산비용의 감소로 이어져 가격의 하락으로 소비자의 실질 소득이 증가한다. 실질 소득의 증가는 새로운 욕구와 이런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요를 개발하게 된다. 이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상품의 개발과 이 상품 공급을 위한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 1세대 전보다 오늘날에는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으면서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은 증가한다. 

케인즈의 고용이론이 인식하지 못했던 것은 기술적 실업은 다른 부문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한 하나의 기회라는 사실이다. 노동시장이 충분히 유연하다면 노동을 줄이는 기계는 노동시간의 감소를, 따라서 장차 실업의 증가라기보다는 여가의 증가를 안겨준다. 냉장고나 세탁기와 같은 가전제품을 위한 지출보다는 외식, 운동, 혹은 휴가 즐기기를 위한 지출이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여가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가 증가한다. 

그러나 기술적 실업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실업자가 산업구조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직업을 바꿀 필요가 있거나 혹은 현재의 지식을 심화해야 할 것이다. 즉 현재의 일자리 또는 현재의 직업과 관련된 기술적 지식을 심화하기 위한 교육 또는 직업을 바꾸기 위한 새로운 교육은 새로운 기술 개발에 따라서 항상 야기되는 교육이다. 이런 교육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돈이다. 기본소득을 통해서는 그런 교육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이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핀란드의 기본소득은 수혜자들이 필요한 심화 교육이나 새로운 직업을 위한 교육 지출에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교육을 일부러 받을 어떤 유인도 없다. 오히려 그런 교육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서 실업자가 된다고 해도 언제든 기본소득을 받아서 생활할 수 있다.

산업혁명의 기술발전은 실업과 실업으로 인한 빈곤을 낳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전부 착각이다. 자본을 갖지 못한 무산자에게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혁명의 덕택이 아닐 수 없었다. 산업혁명은 노임을 급격히 인상하지는 못했던 것 그래서 노동자들에게 하루아침에 진수성찬을 제공하지는 못했던 것은 진실이다. 하지만 대량생산으로 가격이 하락하여 실질 노임의 지속적인 인상을 가져왔고 이로써 노동자의 삶이 전대미문으로 개선되었다. 따라서 산업혁명은 실업을 불러왔고 이로써 빈곤의 확대를 초래했다는 것은 순수한 착각이다. 


민경국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경제철학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같은 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이다. 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과 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사)자유주의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하이에크, 자유의 길』, 『국가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국가철학』, 『자유주의의 도덕관과 법사상』,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시장경제의 법과 질서』, 『하이에크 자유주의 사상 연구』, 『경제사상사 여행』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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