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구조개혁, ‘채찍과 당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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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구조개혁, ‘채찍과 당근’이 필요하다
  • 김범수 논설위원/서울대
  • 승인 2022.03.2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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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칼럼]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조금 남아 있지만 한낮의 따사로운 햇볕과 겨우내 앙상하던 나뭇가지 사이로 돋아나는 새싹은 봄이 바로 우리 곁에 와 있음을 알려준다. 남쪽 지방에는 벚꽃이 이미 활짝 피었다는 소식이다. 아마도 1~2주일 안에 수도권에서도 활짝 핀 벚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봄을 맞은 대학 캠퍼스도 예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년·재작년에 비하면 무척 활기를 띤 모습니다. 대면 수업이 일부 재개되면서 ‘과잠’을 입고 캠퍼스를 거니는 학생들 숫자도 늘어났고 점심시간 식사를 기다리는 학생들의 줄도 길어지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 때문에 캠퍼스가 너무 썰렁해져서 그런지 모처럼 모인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가 반갑기만 하다.  

이처럼 대학 캠퍼스 곳곳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지만 상당수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라는 찬바람에 봄을 느낄 겨를이 없는 것 같다. 춘래불사춘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22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지방에 위치한 상당수 대학이 몇 차례 추가모집에도 정원을 다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 일부 학교의 경우는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 약 10여 년 전부터 대학 관계자들 사이에 회자되던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 망한다’는 이야기가 점차 현실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추산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 대학입학 정원은 약 47만 4천 명인데 반해 만18세에 해당하는 학령인구는 2022년 약 47만 2천 명, 2023년 약 44만 명, 2024년 약 43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이며, 실제 대학에 입학 가능한 고교졸업인원과 재수생 등을 합한 입학가능자원 수는 올해 약 40만 명, 내년 약 37만 5천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더 나아가 작년과 올해 태어난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할 나이가 되는 2040년에는 입학가능자원 수가 약 28만 명 수준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입학 정원과 입학가능자원 수 규모를 비슷하게 맞추기 위해서는 대학입학 정원을 앞으로 1~2년 안에 약 10만 명 이상 줄여야 하고 그리고 다시 20년 안에 10만 명 이상을 더 줄여야 할 상황이다. 입학 정원 3,000명인 종합대학이 앞으로 20년 동안 매년 3개 이상 사라져야만 겨우 맞출 수 있는 숫자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이 오래전부터 예측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부와 대학은 대학구조개혁에 머뭇거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정부 주도의 일률적 구조개혁에 반발하는 대학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 재정지원 사업과 정원감축을 연계한 기존 대학구조개혁평가 방식을 폐지하고 2018년부터 정원감축을 대학 자율에 맡기는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로 전환하였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 시기 때 설정한 정원감축 목표, 즉 2018~2020년 5만 명, 2021~2023년 7만 명을 감축하여 2023년까지 대학 입학정원을 약 40만 명 수준으로 감축하려는 목표는 자연스럽게 폐기되었다. 정원감축을 대학 자율에 맡긴 결과 문재인 정부 시기 실제 줄어든 대학 정원은 약 1만 5천 명에 불과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명분은 좋았지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정책 전환이 아니었나 싶다. 정부 재정지원 사업과 정원감축을 연계하여 지속적으로 정원을 줄여왔다면 아무래도 지난 몇 년간 정부 재정지원 사업에 많이 선정되었던 수도권 주요 대학과 지역 거점국립대학에서 상당한 정도의 정원 감축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이 결과 수도권 대학으로의 쏠림 현상은 심화되었고 일부 지방 대학은 존폐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대학의 자율성 존중’이라는 좋은 명분이 일부 지방 대학에게는 재앙이 된 형국이다. 반면 박근혜 정부 시기 정부 재정지원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반 강제적으로’ 정원을 줄여야 했던 수도권 주요 대학과 지역 거점국립대학들은 숨 돌릴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학 관계자 모두가 동의하는 바와 같이 현 시점에서 대학입학 정원감축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어디서 얼마만큼 줄일 것인가이다.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방식으로 대학들이 알아서 정원을 줄여나가기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채찍과 당근’으로 정원감축을 유도할 것인가? 지난 몇 년 간의 경험은 ‘채찍과 당근’이 없는 자율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상적으로는 자율이 좋지만 현실적으로는 ‘채찍과 당근’ 이외의 대안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한계대학’에 퇴출이라는 ‘채찍’을 가하면서도 동시에 수도권 주요 대학과 지역의 거점국립대학들이 ‘자율적으로’ 정원을 줄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확실한 ‘당근’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확실한 ‘당근’이 무엇인지는 대학 관계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GDP 대비 0.6% 수준인 정부의 고등교육 지원예산 규모를 최소 OECD 평균인 0.9% 수준으로 올리고, 이렇게 확보한 예산으로 정원을 감축하는 대학에 정원 감축으로 줄어든 등록금 수입 규모를 넘어설 만큼의 파격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지난 10여 년 간 사실상 동결한 등록금도 현실화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조만간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한편으로는 ‘채찍’을 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정원을 줄여 나갈 수 있도록 확실한 ‘당근’을 제시하길 기대해 본다.

 

김범수 논설위원/서울대 자유전공학부·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부터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부원장과 한국정치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공정이란 무엇인가』, 『인권의 정치사상: 현대 인권 담론의 쟁점과 전망』(공저), 『전후 일본의 보수와 표상』(공저) 등의 저서가 있으며, 정의, 인권, 평화, 민족주의 등 현대정치이론의 주요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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