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대남과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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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대남과 다른가?
  • 손화철 한동대학교·철학
  • 승인 2022.03.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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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이번 대선에서 소위 ‘이대남’과 4~50대의 투표 성향이 엇갈렸다는 것은 대학의 입장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 두 세력이 오롯이 만나는 곳이 대학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운영하는 이들이야 6~70대이지만, 교실에서 학생들을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그보다 조금 젊으니 이대남과 정치적 성향이 다를 공산이 크다. 그래서인지 선거 후 실망감을 토로하는 교수가 많다.

그런데 과연 대학 교실에서 보수적인 남학생과 진보적인 교수의 의견이 전면 충돌하고 있는 것일까? 선거에서 드러난 세대별 표의 향방만으로는 그런 거친 해석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 보수와 진보의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그런 단순한 그림은 금방 무너지고 만다. 

주지하다시피, 이대남에게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였던 것이 양성평등 문제이다. 어려서부터 별다른 남녀차별을 경험하지 못한 이대남들은 왜 여성 차별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정책들이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거기 더하여 남성만의 군 복무 의무나 남성이 경제적인 책임을 더 많이 져야 하는 문화가 오히려 남성을 역차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에서는 이런 생각의 참·거짓이나 적정성에 대한 논의는 완전히 생략된 채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런데 이대남의 지지를 받은 후보를 적대시하던 4, 50대의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과연 양성평등의 문제에서 이대남과 크게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특히 이대남을 가장 많이 만나는 4, 50대 대학교수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남자 대학생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과는 달리 대학과 학계에는 성차별이 만연한데도, 대다수의 교수는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다. 옛날처럼 학사나 수업, 학교생활 전반에서 제도적으로 여성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에 학부생들은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대학원만 올라가도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대학 뿐 아니라 각종 학술단체들도 여전히 남성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지만, 그 구성원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이상한 그림이 나온다. 대학과 학계에서는 양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남학생들은 대학을 포함한 사회전체에서 양성평등이 이루어지다 못해 역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교수들은 학부생들이 아직 보지 못하는 불평등한 체제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양성평등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학생들과 교수들의 표는 서로 다른 후보에게 갔을지 모르나, 적어도 양성평등이라는 핵심 이슈에 있어서는 별다른 의견 차이가 없는 셈이다. 

2019년 통계를 보면 국공립대 대학의 여성교원 비율은 20%에 이르지 못한다. 사립대에서는 24%정도 된다지만 그중 다수가 최근에 임용된 비정년트랙 교수들이다. 같은 해 통계로 대학생 중 42%가 여학생이고 대학원생은 절반이 넘는 53%가 여성이며 여성 박사학위 취득자도 38%나 되는 것과 비교하면 대학 내 성별 불평등은 해소되려면 멀었다. 학위를 마친 남성 제자의 임용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이후에는 동료로서 대접하지만, 여성 제자에게는 자신의 ‘학문적 반려자’ 역할을 하며 자신의 학문적 입장에 동의할 것을 강요하거나 공동연구의 조교처럼 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대학의 보직자, 학회 임원진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과 업무의 차이 역시 현저하다. 언론에 등장하는 ‘전문가’는 대부분 남성이며 심지어 <대학지성 In & Out>에 기고하는 필자도 대다수가 남성이다. 여성은 리더이기보다 조력자여야 한다는 생각이 대학과 학계에 구조적으로 스며있는 셈이다. 과연 이 현실에 학계와 학교의 중추를 이루는 4, 50대 교수들의 기여가 없었는가? 

2021년 대학원생·연구자·교수 커뮤니티인 '하이브레인넷' 등에서는 여성 교수 임용 할당제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국공립대 교수 중 여성 비율을 25%로 늘이는 제도에 대한 남성 학자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여성 할당제 때문에 남성의 임용 기회가 준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목표치를 정하고 대학을 압박하는 것이 최선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란과 달리, 여성 학자들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커지는 동안 교수로 임용되는 여성의 수가 여전히 적은 것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제대로 제기된 적은 없었다. 대학과 학계 내에서 여성들의 학문적 재능과 기여를 이용하기만 하고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들은 적이 없다. 이런 선택적 침묵과 선택적 외침이 지속되는 한, 외부의 개입을 설득력 있게 차단할 방법은 없다. 이대남의 판단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책임의 일부는 나를 포함한 4, 50대 교수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학에서 진정한 양성평등을 이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는 여성가족부가 없는 5년짜리 정권보다 나의 65세 정년이 더 큰 절망이 될 것이다.


손화철 한동대학교·철학

한동대학교 교양학부 철학 담당 교수. 벨기에 루벤대학교에서 기술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최근의 관심사는 포스트휴먼와 인공지능의 철학이다. 『미래와 만날 준비』(책숲, 2021), 『호모 파베르의 미래』(아카넷 2020), 『불평할 의무』(2016, 역서)를 비롯한 몇몇 저서, 공저, 역서가 있다. 
https://sites.google.com/view/whachu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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