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발명한 가장 강력한 평화의 수단, 전쟁!…이 역설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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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발명한 가장 강력한 평화의 수단, 전쟁!…이 역설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3.14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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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역설: 폭력으로 평화를 일군 1만 년의 역사 | 이언 모리스 지음 | 김필규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672쪽

 

당신이 석기시대에 살고 있다면 다른 누군가의 폭력으로 사망할 확률은 20퍼센트에 달한다. 그러나 2015년 현재, 그 확률은 1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 이는 놀랍게도 지난 1만 년간의 잔혹한 전쟁이 이루어 낸 결실이다. 저명한 역사가이자 고고학자인 저자는 반인륜적 범죄로 여겨지는 전쟁이 실제로 인류를 위해 얼마나 위대한 공헌을 해 왔는지 명확하게 보여 준다. 전쟁은 더 크고 강력한 조직을 만들고, 이를 통해 탄생한 국가 권력은 내부의 폭력을 억제시킨다.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 오히려 세상을 안전하게 만들고, 안전한 세상 속에서 인류는 부를 창출하였다.

그러나 1만 년간 이어 온 이 역설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저자는 과거와 같은 ‘생산적 전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예견한다. 그리고 향후 40년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기로 규정하고, 이를 안전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토마스 홉스부터 제레드 다이아몬드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만나고, 기원전 67년 로마 원로원과 1992년 LA폭동 배심원들이 나란히 불려 나온다. 활과 화살부터 탄도 미사일까지, 수렵집단부터 유럽연합까지, 싸움 전문가가 된 인류의 수천 년 역사가 대륙과 대양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분명 전쟁은 지옥 같은 존재이다. 그럼에도 아주 큰 관점에서 봤을 때 전쟁은 인류에게 매우 이로운 존재이다. 특정 전쟁을 통해 특정 국가가, 특정 계층이 경제적 이득을 봤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쟁은 1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구상의 인류사회를 더 평화롭고 안전하며 번영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상당히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장이지만 저자는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반론을 제압한다. 첫째, 전쟁은 더 크고 조직화된 사회를 만든다. 전쟁의 승자는 패자를 복속시키면서 점점 큰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이렇게 커진 사회를 제대로 통치하기 위해 등장한 강력한 정부는 내부의 폭력을 통제하였다. 20~30명씩 모여 살던 석기시대의 사람들 중 10~20%는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즉 폭력으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2015년 현재 당신이 폭력으로 사망할 확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론 정부를 이끈 통치자 가운데 순수한 선의를 가지고 평화를 유지하고자 한 자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수월한 통치를 위해(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해) 살인을 엄격히 금지한 결과 인류사회는 1만 년 전보다 100배 이상 평화로워졌다.

둘째, 전쟁은 더 크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간이 찾아낸 유일한 방법이다. 무력을 통하지 않고, 목숨이라는 큰 비용을 치르지 않고 (이를테면 합리적인 토론 등을 통해) 큰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인간은 강제로 빼앗기 전까지 자신의 자유를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죽일 자유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인간이 다른 사람을 죽일 자유를 포기하는 경우는 전쟁에서 졌을 때나 질 수 있다는 공포감을 느낄 때뿐이었다.

셋째, 전쟁으로 평화로워진 사회는 경제 성장의 기반이 됐고 삶의 질도 높였다. 단편적으로 바라보면 이 과정은 지저분하고 불공평했다. 누군가는 막대한 이득을 얻고 누군가는 처참한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수십 년, 수백 년의 시간을 지내 오면서 전쟁의 승자건 패자건 할 것 없이 모든 후손들은 더 큰 사회, 더 강력한 정부 아래서 과거보다 잘살게 되었다.

전쟁은 이처럼 ‘생산적’이다. 지구상에는 1만 년 전보다 1,000배가 넘는 사람이 살고 있고 수명은 두 배 이상이 되었으며, 수입은 12배 이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너무 좋다 보니 더 이상 전쟁이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오래도록 전쟁을 거듭하며 인류는 싸움 전문가가 되었다. 더 파괴적인 무기, 효율적인 전술,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를 갖게 되었다. 또한 인류사회는 과거보다 커지기도 했지만 복잡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과거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서로 엮이고 있다. 이는 곧 지금의 전쟁은 파괴와 동시에 더 큰 것을 창조했던 과거와 달리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마는 최악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특히 향후 40년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기로 규정하고 이를 안전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방향을 제안한다. 100여 년 전 당시의 세계경찰이었던 영국이 힘을 잃어 가는 와중에 세계대전이 연이어 발발한 것을 상기시키며, 동아시아(중국) 혹은 서남아시아의 위협 속에서 세계경찰로서의 역할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는 미국이 다시금 믿을 만한 ‘리바이어던’으로 조금만 더 버텨 주길 당부한다. 어차피 조만간 ‘팍스 아메리카나’를 대체할 ‘팍스 테크놀로지카’의 시대가 올 테니 말이다.

책은 무려 1만 년의 전쟁사를 다룬다. 불가피하게 큰 맥락만을 따라가다 보니 저자는 잔인할 정도로 가차 없는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2010년대 중반 기준으로 모든 나라가 핵폭탄을 서로에게 퍼붓는다고 해도 죽일 수 있는 숫자는 수억 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식이다. 1만 년의 역사에서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나 일본의 만행은 일시적인 현상이나 전쟁의 ‘결과’를 통계화하기 위한 하나의 기초자료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의 이러한 시각은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전쟁을 치러 여전히 큰 상처를 안고 사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불편을 넘어 불쾌한 감정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전쟁과 관련한 모든 것이 역설적이므로 불편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실로 전쟁 없는 세계를 원한다면 여전히 전쟁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되새겨야 한다는 또 하나의 역설로 책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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