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의 한국 민주화운동과 국경을 넘는 연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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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의 한국 민주화운동과 국경을 넘는 연대의 역사'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3.13 1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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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회의]
- 한국학중앙연구원, 해외 한국민주화운동 관련 국제학술회의 개최
- 김정남 선생이 직접 취재·기록한 기탁 자료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해외에서의 한국민주화운동과 국경을 넘는 연대의 역사’를 주제로 3월 11일(금)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한국민주화운동과 관련한 해외에서의 연대와 교류 과정을 새롭게 조명하고, 한국민주화운동의 세계사적 의미를 되짚어 보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영화 1987’ 실존 인물, 한국민주화운동의 대부라 불리는 김정남 선생님의 기탁자료를 2020년부터 정리하면서 1970~80년대 일본에서의 한국민주화운동 연대투쟁을 담은 미공개 희귀자료들을 새롭게 발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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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2월 27일 김정남이 송영순에게 보낸 편지이다. 장기표의 2심 최후진술 녹음테이프를 동봉한다는 내용의 메모가 서두에 기재되어 있다. 밑줄이 있는 노트용지에 파란색, 검은색 볼펜으로 수기되어 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이 자료들의 발굴을 계기로 한국민주화운동에서 국경을 넘는 연대의 역사가 갖는 의미를 되새기고, 한국민주화운동이 일국사적 관점이 아닌 일본, 미국, 유럽에서의 연대와 교류라는 초국가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이번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됐다.

이번 국제학술회의는 [1부] ‘한국민주화운동과 미국/독일에서의 연대활동’, [2부] ‘일본에서의 한국민주화운동과 일본 시민들의 연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 ‘한국민주화운동과 미국/독일에서의 연대활동’에서는 이삼열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의 기조강연에 이어 황인구 보스턴칼리지 교수가 ‘미국에서의 인권문제와 한국의 초국적 민주화’, 이유재 튀빙겐대 교수가 ‘생애구술사를 통해 본 독일에서의 한국민주화운동’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한국민주화운동이 미국에서 초국적 인권정치로 발전한 과정과 그 과정의 중심지였던 워싱턴의 의미를 조명했으며, 아울러 한국민주화운동을 위한 독일 연대세력의 활동을 생애구술사를 통해 고찰함으로써 한국민주화운동의 초국가적 성격을 논의했다. 

 

1977년 5월경 김정남이 송영순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1977년 3~5월 민주구국헌장 서명운동, 김지하 재판기록 공개 관련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br>
1977년 5월경 김정남이 송영순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1977년 3~5월 민주구국헌장 서명운동, 김지하 재판기록 공개 관련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2부 ‘일본에서의 한국민주화운동과 일본 시민들의 연대’에서는 이미숙 릿쿄대 조교수가 ‘경계를 넘는 연대와 재귀적 민주주의: 1970~80년대 ’일한연대운동‘을 중심으로’,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해협을 건넌 편지들-김정남, 송영순 서신의 민주화운동에서 의미’,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이 ‘감옥과 국경-’양심수‘ 석방운동과 한일연대’를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가톨릭 네트워크를 통한 연대의 과정과 그 과정에서 김정남 이사와 재일동포 송영순 선생 등이 주고받은 서신의 의미를 짚어보고, 양심수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정치적ㆍ종교적 신념 등에 의해 투옥ㆍ구금된 사람을 일컫는 말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한일연대운동과 배경에 대해 논의를 펼쳤다. 

안병우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한국민주화운동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의 지지와 연대를 통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초국가적 연대의 경험은 매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며, 이번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한국민주화운동 연구의 나아가야 할 방향이 새롭게 모색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1980년 6월 11일 김정남이 송영순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송영순이 국제사회에 5.18광주항쟁의 진상조사를 요청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의 편지에서 송영순은 ‘바울(Paul)’, 김정남은 ‘마리아(Maria)’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br>
1980년 6월 11일 김정남이 송영순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송영순이 국제사회에 5.18광주항쟁의 진상조사를 요청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의 편지에서 송영순은 ‘바울(Paul)’, 김정남은 ‘마리아(Maria)’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한편 김 선생은 1964년 6·3 항쟁 당시 시위를 주동한 '배후인물'로 몰려 감옥살이를 했다. 이후 1987년 6·29 선언 전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배, 도피, 투옥을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화 운동가들이 모인 단체를 결성·운영하는 등 한국 민주화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으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민주화운동사를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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