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육에서 ‘역량’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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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육에서 ‘역량’의 의미
  • 신현석 고려대·교육학
  • 승인 2022.03.13 17: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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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바야흐로 대학교육에서 역량의 전성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각종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2008년 ‘학부교육역량강화사업’을 시작으로 역량기반 대학교육혁신이 대학변화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는 글로벌 환경의 변동성과 불확실한 미래의 모호성 그리고 불안감에 대응하기 위한 UN 등 국제기구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모색과 대비 노력이 구체화되어 역량운동(competence movements)이 2000년대 초반부터 나타났다. 최근에 OECD(2019)가 DeSeCo 프로젝트의 1차 결과로 발표한 ‘학습나침반 2030’은 미래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역량을 제시하는 일종의 네비게이션으로 역량 중심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국제사회에 제시한 바 있다. 특별히 우리나라에서 이유와 사정은 어떻든 이제 역량은 모든 수준의 교육단계에서 거부할 수 없는 ‘힘’(力)과 ‘크기’(量)를 가진 유행어가 되었다.

역량이 대학교육의 제도적 실천방안으로 현장 적용이 가속화되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방안과 방법론의 모색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결과적으로 발견되는 괴리와 역설로 인하여 ‘왜’ 역량인가에 관한 타당성과 정당성의 의문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역량’ 교육의 도입에 대한 문제의식과 방향 제시의 부족으로 실행 측면에서 혼란이 야기되고, 교육의 목표가 핵심역량 함양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었다. Young은 심지어 학생 중심 교육을 잘못된 이론과 결합하여 학생들을 역량 훈련으로 몰아넣어 경제적인 도구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렇듯이 역량 담론에 기대어 직업 세계에 연결하려는 대학교육은 역량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역량 형성과 동떨어진 교수-학습, 공공성과 다양성에 토대한 가치를 포함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한정되어 대학교육 전체를 재조정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역량교육이 확산된 것은 글로벌 교육 거버넌스에 따라 권고와 트렌드를 수용하여 역량 연구의 중심에 있던 국책연구기관과 관련 연구자들이 교육권력이 작용하는 교육과정 개편과 대학평가와 연계된 재정지원사업 설계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형적인 지식-권력의 연계는 서구에서 역량의 개념이 개별적 특성과 자율적 판단에 바탕을 둔 맥락적 분별성을 강조하는 역량의 용법과 다른 역량의 모습을 초래하였다. 기능적 측면에 경도된 소수 전문가가 독점하는 역량 담론은 거역할 수 없는 권력과 결부된 하향식 실행으로 이어져 생존을 위한 변화가 절실한 시기에 대학교육 혁신의 근거와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공론화의 시간과 공간을 박탈하였다. 교육의 대상으로서 학습자와 기획자로서 대학을 비판적, 민주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행동과 책임의 주체로 볼 것인가, 아니면 지도와 개입을 통한 타율적 변화와 혁신의 객체로 볼 것인가에 따라 역량교육은 정반대로 해석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대학교육 환경이 여전히 후자를 지향해야 할 경로의존적 고착의 이유를 얼마나 성찰했느냐이다.     

Hargreaves는 숙고와 성찰이 없는 역량교육은 사회정의와 불평등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며, 공적 개입을 통해 업적을 남기고자 학교 및 대학을 압박하고, 단기적 목표에 집중한다고 하였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과 수행 성과를 강조하는 역량교육은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교육의 이념과 목표 그리고 정서적 감동과 동감을 불러일으키는 공동체 의식의 형성을 어렵게 하여, 피상적 동조와 참여(디커플링)를 유발한다. 이러한 역량교육의 문제들이 서로 결합하게 되면 역량의 개념과 원칙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행자의 주관적 구성에 따라 역량교육의 실천적 절차를 제도화하고, 역량의 수행 성과를 평가하는 ‘합리적 체제의 비합리성’이라는 비정상의 정상화 패러독스를 초래할 수 있다.

역량의 전성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비합리적·비정상적 현상과 이에 대한 비판은 간단하게 표현하면 역량 개념의 내포와 외연에 대한 논리와 분석을 명철하게 밝히는 철학적 탐구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물론, 역량은 아무리 잘 정의해도 역량이라는 용어 자체가 분명하지 않은 특성이 있고, 그래서 역량이 무엇인지, 어떻게 발휘되고 평가할 수 있는지 알기 어려워 역량교육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기는 하다. 역량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의 본질에 대해 학자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것은 그만큼 의미 파악이 부족하거나 의미의 내포적 구성을 위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역량의 내포적 의미 구성에 대한 치열한 논구와 협론 없이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실무자들이 자기 분야에서 역량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이에 역량 개념은 접두사와 접미사가 결합한 복합어로서 외연을 넓혀가는 각자도생의 길을 가면서 모호하고, 불확실하며, 복잡해지게 되었다. 역량이 접미사로서 분야와 결합할 때는 확장 적용될 외연 분야의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고, 접두사로 쓰일 때는 역량 개념의 내포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야 하는데 이러한 고려 없이 역량 개념은 도처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유행어로 오용·남용되고 있다.  

최근 OECD에서 역량의 구성요소를 지식, 기술, 태도와 가치로 집약하면서 어느 정도 내포적 의미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개념의 혼란 문제는 역량이라는 개념에 내재한 특성에서 기인한다. 서구 교육에서 역량 개념은 학습자가 처한 맥락에서 지식의 습득과 활용의 행동 주체로서 자기결정에 의해 합리적, 민주적,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며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는 절차에 따라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복합적인 자질 혹은 능력의 총체로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로부터 역량은 상황에 따라 적합성이 달라지는 맥락지향성, 총체성, 공통성, 계층성(단계별 구체성), 과정 중심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역량의 특성을 고려하여 역량이 적용되는 장면과 상황에 부합하게 개념을 정의하고, 실용적인 수행기준과 실행절차 그리고 평가방식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역량의 특성은 상황과 맥락에 적합한(contingent) 범위와 정도를 한정하여 역량의 용법과 용량을 제약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은 역량 개념의 다중실재적인 의미는 역량교육의 제도적 실행과정에서 많은 쟁점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결국, 역량의 의미는 사람과 맥락에 따라 매우 다르게 해석되어 상이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역량은 연구자들이나 교육실무자들에게 여전히 모호하고 복합적이며,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이다. 이에 따라 실제에서 역량기반교육을 추진할 때 참여자들의 원활한 의견교환과 맥락적으로 조작적 정의가 이루어져야 분명한 목표 설정과 전략 추진이 가능해진다. 또한, 역량이라는 개념을 맹신하여 역량의 교육과 측정 가능성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맹신과 과신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역량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기계처럼 다루며 획일적 산출을 요구하거나,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의 획득 정도를 당사자의 느낌으로만 평가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러한 오류는 대학교육 전체에 막대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고, 그 가운데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학생이 될 것이다. 모든 학생은 자신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양질의 대학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신현석 고려대·교육학

현재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교육정책 및 고등교육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기획예산처장과 사범대학장 및 교육대학원장을 역임하였고, 한국교육정치학회장과 한국교육행정학회장을 거쳐 현재 한국교육학회 수석부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고등교육개혁정책, 한국 교육행정학론, 한국의 대학평가(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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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2022-03-17 14:10:40
매우 공감합니다.
논란의 여지가 여전히 많고 학문적 정교화가 좀더 필요한 '역량' 개념을 교육부, 한국교육개발원 등의 국가기관과 '핵심역량' 운운하는 관변 '학회' 등이 합작하여 일률적인 top-down식으로 전 대학을 대상으로 도입을 실질적으로 강제하는 이러한 개발독재 식의 방식은 지양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국책 기관 및 그 안팎에 서식하는 HRD론자들의 저러한 작태 등으로 말미암아 일견 교육학 영역에 대해 그리 호의적인 시선을 갖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인데, 다름 아닌 교육학 내부에서 쓴소리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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