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극장 뮤지컬의 흥행공식에 대하여, 뮤지컬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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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극장 뮤지컬의 흥행공식에 대하여, 뮤지컬 '아이다'
  •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뮤지컬평론가
  • 승인 2020.02.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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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연의 뮤지컬 인사이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다수의 사람이 모이는 곳’인 공연계는 직격탄을 맞았던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쉽지 않은 모양새다. 예정되어 있던 공연을 아예 취소하거나 남은 공연 기간을 갑자기 줄여버리는 등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 2019 뮤지컬 아이다_Dance of the robe_아이다(전나영)
▲ 2019 뮤지컬 아이다_Dance of the robe_아이다(전나영)
▲ 2019 뮤지컬 아이다_Dance of the robe_아이다(전나영)
▲ 2019 뮤지컬 아이다_Elaborate lives_아이다(전나영)와 라다메스(최재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속에서, 이번 시즌 한국 공연을 끝으로 더 이상 전 세계에서 볼 수 없는 공연이 되어버린 <아이다>(엘튼 존 작곡, 팀 라이스 작사, 2019. 11. 13~2020. 2. 23,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가 마지막 스퍼트를 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1998년 애틀랜타 공연을 시작으로 2000년 3월 브로드웨이 팰리스 극장에 초연된 후, 2005년에 신시컴퍼니에 의해 한국에 수입된 버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의미다. <아이다>는 제작비 158억 원을 들여 LG아트센터 8개월 장기공연을 완료했던 초연 이후 2010년, 2012-13년, 2016-17년 공연을 지속하면서 총 732회 공연, 73만 관객이라는 기록을 올린 신시컴퍼니의 대표 레퍼토리였으나, <아이다>의 저작권을 갖고 있는 미국 디즈니사(Disney Theatrical Productions)의 결정에 따라 중단되게 되었다.

▲ 2019 뮤지컬 아이다_Every story is a love story_암네리스(정선아)
▲ 2019 뮤지컬 아이다_Every story is a love story_암네리스(정선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공연’은 이번 시즌 <아이다>의 마케팅 포인트가 되었다. 마스크를 한 관객들이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1,766석을 상당 부분 채우고 기립박수를 보내는 광경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무엇이 <아이다>의 마지막을 아쉬워하게 만들고, 관극을 신종 바이러스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것일까. 답은 사실 명확하다. 대극장 뮤지컬만이 보여줄 수 있는 대부분의 것을 <아이다>는 갖고 있다는 것. 보고 듣는 것이 즐거워야 하고, 그 즐거움은 ‘경이로운 것’을 마주할 때의 쾌감을 지향한다. <아이다>의 무대는 이 쾌감을 산출하는 핵심이다. 장면별로 정확한 콘셉트 아래 깔끔하게 정리된 무대 미장센은 <아이다>의 시각적 쾌락을 이끈다. 나타샤 카츠(Natasha Katz)의 조명 디자인으로 색감을 만들어 무대를 채우고 대도구 대신 천을 활용하는 방식은 시적 상상력을 통한 ‘비어있는 무대의 확장’을 도모한다. <아이다>에 무대 영상이 거의 쓰이지 않는 이유다. 물론 그 반대편에 대도구를 활용한 웅장하고 화려한 미장센 역시 유효하다. 이집트의 공주이자 라다메스의 약혼녀인 암네리스를 묘사하는 장면이 대표적인데, 암네리스의 첫 등장을 무대 전면을 가득 채우는 수영장 세트와 플라잉 쇼로 처리한다든지, 각양각색의 옷장을 상징하는 대도구 앞에서 암네리스가 ‘옷장 패션쇼’를 벌이는 ‘My Strongest Suit’ 장면은 외모에 집중하는 암네리스의 철없음을 화려함의 극치로 감싼다. 또한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남자 앙상블 배우로 구성된 군무는 자로 잰 듯 정제된 무대의 수위를 높인다.

▲ 2019 뮤지컬 아이다_Fortune favors the brave_라다메스(최재림)와 앙상블(2)
▲ 2019 뮤지컬 아이다_Fortune favors the brave_라다메스(최재림)와 앙상블

뮤지컬 <아이다>는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1871)를 원작으로 하여, 디즈니에 의해 현대화된 뮤지컬이다. 위에서 언급한 무대 미장센과 <아이다> 넘버를 구성하는 엘튼 존 특유의 팝 음악, 록, 레게, 가스펠, 모타운 스타일 등의 음악은 <아이다>를 오페라와 차별화시킬 뿐만 아니라 시대적 배경을 극의 갈등이 일어나는 토대로 추상화시킨다. 이집트의 장군 라다메스가 고대 아프리카 북동부에 위치한 누비아 왕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로 데려온 누비아 공주 아이다와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면서, 파라오를 무너트리려 했던 아버지 조세르의 야욕을 좌절시키고 결국 아이다와 함께 생매장당하는 서사는 원수의 집안 남녀가 등장하는 삼각관계 연애물과 권력투쟁이 난무하는 역사물의 조합을 연상시킨다. 뮤지컬은 여기에 환생한 라다메스와 아이다가 뉴욕 박물관의 이집트관에서 만나 서로를 알아본다는 설정을 액자식으로 더해 보편성을 높인다. 환생한 그들의 재회를 ‘Every Story is Love Story’라는 테마로 구체화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2019 뮤지컬 아이다_Fortune favors the brave_라다메스(최재림)와 앙상블
▲ 2019 뮤지컬 아이다_Fortune favors the brave_라다메스(최재림)와 앙상블
▲ 2019 뮤지컬 아이다_Fortune favors the brave_라다메스(최재림)와 앙상블
▲ 2019 뮤지컬 아이다_The gods love nubia_아이다(전나영)와 남여 앙상블

따라서 <아이다>는 무대 스펙터클, 서사의 전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대중적인 흡입력을 갖고 있으며, 격정적인 넘버로 각 장면의 정서를 끌어올리는 (특히 한국 관객에게) 유효한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흥행공식은 그 이면에서 대극장 특유의 ‘과잉’을 노출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필요한 요소를 결합시켜 각 장면을 마스터 피스로 완결시키려는 노력은 자연스러운 극의 전개를 방해했으며, 이러한 흐름은 이번 시즌 공연에 처음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를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원인으로 보였다. 무대의 미장센이 마치 19세기 멜로드라마의 타블로(Tableau)를 활용하는 듯 정확한 구도를 보여주며 정지될 때는 그림을 관람하는 태도로 관극해야 하는 느낌마저 받았다. 따라서 발군의 노래 실력과 상관없이 과장된 연기톤으로 다소 거친 호흡을 보여주었던 주연들 사이에서, 2010년 시즌부터 줄곧 암네리스를 연기했던 정선아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이며 극을 이끌었다. 외적인 것을 중시하던 철없는 공주에서 사랑을 잃은 후 성숙한 파라오로 발전하는 과정이 매우 설득력 있었다. 무엇보다도, 인물의 변화와 함께 공연의 메커니즘을 통과하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돋보였다.

▲ 2019 뮤지컬 아이다_공연 사진_My Strongest Suit_암네리스(정선아)
▲ 2019 뮤지컬 아이다_공연 사진_My Strongest Suit_암네리스(정선아)

디즈니가 <아이다>를 보완하여 새로운 버전으로 세상에 다시 내놓는다면, 그리고 그것이 다시 국내 시장에 수입된다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무대 기술력이 디즈니의 자본과 만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놓인 <아이다>를 탄생시킬 수 있을까? 대극장 뮤지컬의 흥행공식은 반드시 클리셰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뮤지컬평론가

런던대학교(로열 할러웨이)에서 연극학 석사를, 고려대에서 국어국문학 박사를 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 연구교수, 워싱턴 대학교(시애틀) 동아시아학과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교수로 있다. 주요 논저로는 “한국 창작뮤지컬에서 재현된 서울의 양상”, “여성국극의 혼종적 특징에 대한 연구”, “한국적인 것’의 구상과 재현의 방식”, “번역된 문화와 한국적 디코딩”, “‘근대적 지식인 되기’를 향한 욕망의 서사”, 『제국의 수도, 모더니티를 만나다』(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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