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취향은 사회를 바꾸고, 사회는 경제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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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취향은 사회를 바꾸고, 사회는 경제를 바꾼다
  • 유승호 강원대학교·문화학
  • 승인 2022.02.0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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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취향의 경제: 취향의 시대는 산업과 소비를 어떻게 바꾸는가』 (유승호 지음, 따비, 320쪽, 2021.11)

 

이 책은 취향과 관련된 경제적 활동들이 새로운 가치 창출의 중심이 되고 있으며, 그 이유를 취향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만드는 자유로운 공동체에서 유래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특히 스크린 플랫폼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생성하는 '이야기 실천가'들과 이들이 추구하는 ‘취향의 심도’가 산업 전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산업의 구조와 소비의 방식이 바뀌고 있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논증하고 있다. 

이러한 취향 경제로의 전환이 가능했던 환경은 무엇보다 2000년 이후 인터넷과 스마트폰, 유튜브 등 개인미디어의 등장이다. 개인미디어는 개인이 자신의 취향을 곧바로 콘텐츠화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했다. 이러한 콘텐츠의 생산구조는 문화자본과 경제자본의 상호 전환을 가속화한다. 강고한 경제자본의 불평등 구조 속에서 ‘경제력은 빈약하지만 개인의 욕망과 인정을 추구하는 취향인’의 등장과 이들의 지위상승적 욕망이 새로운 문화자본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들이 만들어 낸 문화자본이 경제자본으로의 전환에 성공하면서 새로 구축된 문화자본은 한국의 전통적인 산업의 구조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개인 취향의 부상이 기존 산업의 틀을 깨고 새로운 산업을 견인하는 근거로는 취향을 기반으로 수요를 창출하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들의 부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얼리어답터들은 취향을 기반으로 수요를 창출하고 혁신을 전파하는데 본 책에서는 이들의 자발성과 자신감의 유래를 소유효과의 관점에서 논의한다. 자기가 가진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소유효과는 개인에게서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닌 공동체와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연유하는데, 특히 개인 취향에 대한 관심과 인정을 즉각적으로 현재화할 수 있는 스크린 위의 SNS 등으로 인해 소유효과는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러한 소유효과를 기반으로 스크린 플랫폼과 스크린 콘텐츠는 문화자본 형성의 터전이 이를 둘러싼 새로운 관계와 경쟁의 양식이 나타난다. 그 중요한 양식이 바로 팬덤의 부상이다. 팬덤은 외로움의 시대에 느슨한 관계를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강력한 지지와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공동체의 부상을 대변한다. 즉, 팬덤은 느슨한 공동체이지만 호혜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를 통해 자체 내에 자기생산적인 회로를 만들고 개인에게 정서적 에너지를 공급하는 거점이 된다.           
 

이러한 취향의 확산으로 한국의 산업과 소비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취향소비는 애초에는 과시적이고 속물적 상품소비와 일방적으로 결합되었지만, 1990년대 이후 점차 문화표현 콘텐츠인 음악, 게임, 영화와 결합하게 되었고, 이러한 자기표현 수단의 취향소비는 개인의 정체성과 맞닿으면서 새로운 ‘유기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 즉, 취향중심의 콘텐츠가 수평적이고 반위계적인 이념적 영역으로 옮겨가면서 청년층들이 대거 참여하는 분야로 떠오른 것이다. 소비력이 부족하고 시장에서 배제되었던 청년층이 빈약한 경제자본으로도 자신들의 개성표현과 지위상승 욕망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영역을 발견하였고 이러한 콘텐츠 영역으로 청년층 노동력이 대거 이동하면서 그 곳에서 새로운 시장과 지위가 생산되게 된다. 2010년 이후로 스마트폰과 SNS, 유튜브라는 개인미디어를 기반으로 취향 기반의 시장은 급속하게 확대되어 갔고 이러한 산업이 청년 고용창출에서 중요한 위상을 점하게 된 것이다. 

개성과 취향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고 새로운 공동체와 조직이 취향 중심적 원리를 채택하면서 기존 산업도 개인과 취향 중심 사회에의 적응가능성이 경쟁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커머스(e-commerce)나 엔터테인먼트시장에서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부상이란 사실상 개인의 취향을 찾아내고 이들에게 호소할만한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창조하고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본다면, 이러한 취향의 산업화는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면서 나타나는 필연적 결과라고 할 것이다. 


취향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불평등

특히 새로운 가치의 창출 과정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취향을 생산하고 조직화하는 팬덤의 특성이다. 팬덤은 취향을 보호하는 전위대로서 서구의 경우처럼 한국 사회에서도 문화콘텐츠의 수요를 창출하고 확대하는 매개역할을 해왔다. 한국사회의 가치 창출 영역이 제조영역에서 문화영역으로 확산하는 현상이 콘텐츠를 통해 현재화한 것이다. 이제는 글로벌 거대기업으로 군림하고 있는 기업들의 시작은 대부분 문화의 영역이었다. 아마존은 책에서, 애플은 디자인과 음악에서, 구글은 도서관에서, 유튜브는 동영상과 음악에서, 넷플릭스는 영화에서, 트위치는 게임에서, 페이스북은 친교에서 자신들의 사업을 시작했고, 여기서 확보된 취향 중심의 고객을 기반으로 거대기업으로 성장해 나갔다. 한국의 경우도 음악과 게임, 채팅 같은 콘텐츠 영역이 미래의 유망 산업과 갖는 연관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데이터와 인공지능, 친환경 같은 신산업의 성장이 취향경제와 밀접히 연결되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가토스에 있는 넷플릭스 본사 건물. 사진: 넷플릭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자본의 등장으로 인한 불평등의 추세는 비관적이다. 취향의 경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쇠퇴하는 개인과 조직은 사실상 기존의 자본으로부터도 소외받아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취향이 가져오는 새로운 자본에 참여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고립되어 이중의 고통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문화의 자본화로 인해 '배척당한 자들이 배척한 자를 배척(exclusion of the excluders by the excluded)할 수 있는'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배척한 자에 의해 또다시 배척당한다. 이들은 취향의 시대에 취향의 심도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보다는, 소모적이고 퇴락적인 취향에 빠져 타락하거나 그루밍을 당해 속물적이고 과시적인 취향만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음악과 게임의 취향소비만 하더라도 미적 성향의 개발과 언어적 지식의 습득으로 진화하기보다는 중독과 도박, 강박과 과소비 같은 퇴행적 행동에 갇히기 쉽다. 이들에게 취향을 심화시키고 이를 일터와 일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인프라나 매개체는 여전히 부실하다. 취향이 문화자본화하면서 새로운 불평등의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향후 새로운 문화자본에 의한 불평등의 심화를 어떻게 완화하느냐하는 문제는 취향의 경제가 당면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는 한국의 경제가 지속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와도 긴밀히 연결된다. 이민자, 이주민, 소수자, 열패자 등 배척당한 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기반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풍부하게 주어진다면 취향의 경제가 갖는 경쟁력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유승호 강원대학교·문화학

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 교수. 고려대 사회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비스산업화론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정보화진흥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재직했으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교수, 한국문화경제학회 회장을 지냈다. 현우문화경제학술상, 학술연구성과 교육부장관표창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취향의 경제』, 『스타벅스화』, 『아르티장』, 『문화도시』, 『서열중독』, 『당신은 소셜한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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