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교육과 대학,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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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교육과 대학,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1.3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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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 『서울대 10개 만들기: 한국 교육의 근본을 바꾸다』 (김종영 지음, 살림터, 2021.12, 348쪽)
- 『대학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 (김태준·유재원 지음, 박영스토리, 2022.01, 260쪽)

 

■ 『서울대 10개 만들기: 한국 교육의 근본을 바꾸다』 (김종영 지음 | 살림터 | 2021년 12월 01일, 348쪽)

 

우리나라 교육의 시작과 끝은 ‘명문대, 좋은 학벌’이다. 학벌이 사회적 지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보상도 그에 따라 차등적으로 분배되고 결국 불평등 구조가 고착된다. 학벌에 따라 구획된 사회는 곧 그 사회가 분열된 사회임을 또한 의미한다. 학벌위주의 대학 서열화로 말미암아 계층 간 갈등이 조장되고 서울과 지방 간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지방대를 ‘지잡대’라고 부르며 조롱하기도 한다. 학벌로 인한 패거리 문화가 기승을 부리며 그 결과 파벌에 의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사회 관계망을 만들어낸다. 

학벌사회에서의 학교 교육은 출세를 위한 도구로 인식되어 무한경쟁의 장으로 전락한다. 학벌이 개인을 대변하는 상징이 되고 학벌을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맺어지며 학벌이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부각된다. 결국 최상의 가치인 일류대학 학벌을 쟁취하기 위한 치열한 입시경쟁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스카이’(SKY)로 대표되는 학벌주의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학령인구가 급감해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게 되면서 희소성에서 나오는 ‘스카이’ 권력은 더 공고해졌다.

왜 한국만 교육지옥인가? 모든 사람이 한국 교육은 문제라고 하는데 왜 개혁되지 않는가. 대한민국 교육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대한민국 교육이 더 나아지려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저자인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문제는 입시가 아니라 대학이라고 본다. 그동안 교육개혁은 주로 입시를 바꾸는 것에 치중해 왔다. 김 교수는 이를 ‘입시파’로 명명하고 “시험 또는 입시를 아무리 바꿔봐도 허사라는 것은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고 비판한다. 이 책에서 김 교수는 바로 이 질문에 분명한 대답을 내놓는다. 망국적 대학 서열화 타파 위해 서울대를 10개 만들자고.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제목 그대로 전국에 ‘서울대’를 10개 만들자고 제안하는 책이다. 9개 지방거점국립대를 서울대와 통합운영하는 프로젝트다. 대학개혁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온 저자가 기존 ‘대학통합네트워크’ 운동을 재정립하고 이름 역시 ‘서울대 10개 만들기’라고 바꿔 붙였다. 이를 통해 이른바 ‘스카이’(SKY,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독점체제를 해체하고 ‘교육지옥’을 허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하나의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왜 한국만 교육지옥인가?” 한국 교육이 비정상적이라는 데 국민 대부분이 동의한다. 세계 최고의 사교육비, 세계 최저의 출산율, 불행한 아이들 등이 이를 증명한다. 다른 나라는 아닌가? 한국과 비슷한 교육·경제 수준을 갖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교육지옥’이라고 불리는 나라는 없다. 누구나 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시급하다는 데 공감하지만 구체적 방법론에 들어가면 해법이 제각각이다. 저마다 이해관계도 다르다.

저자의 진단에 따르면 교육지옥은 대학 서열체제에 따른 ‘병목’현상 탓이다. 명문 대학의 지위권력이 극단적으로 독점화된 한국의 경우 SKY 학벌을 향한 극심한 병목이 발생한다. 고속도로를 하나만 만들어 놓고 모든 차를 그쪽으로 가라고 하니 교통지옥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극심한 병목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고속도로 10개를 만들자는 것이다. 사람들이 SKY를 향한 하나의 고속도로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지위경쟁(Positional Competition) 이론에 따르면 교육은 지위경쟁을 촉발하며, 이 경쟁에서 이긴 일부 집단이 다른 집단을 배제하고 지위와 재화를 독점한다. 지위경쟁은 현대사회의 특징이지만, 그 정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저자에 의하면 대학체제가 평준화된 유럽(프랑스와 영국은 제외)은 학벌을 향한 지위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세계적 수준의 대학이 60여개에 이르는 미국에서는 상위권에서 지위경쟁이 일어나지만, 다원적 서열 체제 덕분에 병목현상이 심하지 않다. 한국은 대학의 지위권력을 단 세 대학이 독점하고 있어 학벌을 향한 극심한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지은이는 이를 각각 ‘평준화’ ‘다원화’ ‘독점화’ 모델이라고 부른다.

교육지옥은 왜 유지되는가? 무엇보다 강고한 ‘교육지옥동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동맹은 정부 관료, 중상층 학부모, 사교육 시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육부 관료들은 대부분 행정고시 출신으로 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약하고 교육개혁에 큰 관심이 없다. 관료의 특성상 사회적 논쟁을 피하려고 한다. 한국 교육 문제 앞에서 학부모는 국가보다 힘이 세다. 하지만 “대학 병목체제 안의 학부모는 ‘단기적 관점’에서 자식의 명문대 진학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사교육 세력은 가장 강력한 교육개혁 반대 세력이다. 사교육 시장 규모는 총 30조~40조원에 이르며 2018년 기준 사교육 사업체는 18만8631개, 사교육 종사자는 162만7455명에 이른다. 선진국 가운데 이렇게 대규모의 사교육 시장이 존재하는 곳은 없다.

방향이 잘못된 교육개혁 운동도 걸림돌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회균등선발 확대 등 대입에서 계층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들을 마련해 ‘개천’에서 ‘용’이 나올 확률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독점체제 자체는 유지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들을 포함해 독점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공정한 입시’에만 매달리는 이들은 입시가 대학 서열의 종속변수라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본고사, 학력고사, 수능, 학종, 논술 모두 한국을 교육지옥에서 구해 내지 못했다. 입시가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독점체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대학체제를 본뜬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내놓는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기본적으로 2004년 이후 교육개혁 운동 일각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대학통합네트워크’ 운동의 연장선에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는 독일처럼 대학의 지위권력을 평준화시켜 대학병목을 제거하고 미국의 연구중심대학처럼 창조권력을 최대한 높이는 방향으로 대학체제를 바꾸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서울대 학위의 ‘신용경색’을 ‘양적 완화’를 통해 해소함으로써 과도한 사교육과 학교에서의 경쟁, 곧 교육적 무기전쟁을 피하자는 뜻이다.

우선 서울대를 포함한 10개 거점국립대의 이름을 서울1대, 서울2대 또는 한국대-부산, 한국대-광주같이 통일하고 공동 학위를 주자고 제안한다. 인서울-지방대의 경계를 없애 버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진행 과정에선 마찰도 충분히 예상된다. 부산이나 광주에서 서울대 이름에 반론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서울대 교수진, 재학생, 졸업생의 거센 반발도 예상되며 일반 국민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이를 무릅쓰고 해보자는 것이다.

거점 국립대 9개(충북대, 충남대, 전북대, 전남대, 제주대, 경상대, 부산대, 경북대, 강원대)를 서울대와 묶어 모두 ‘국립서울대학’으로 이름을 바꾼 뒤, 서울대만큼 예산을 투입해 수준 높은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자는 것이 뼈대다. 스카이로 향하는 하나의 고속도로 체제가 낳은 병목현상을 없애기 위해 고속도로 10개를 만들자는 것이다.

한국의 독점화 모델과 유럽의 평준화 모델 사이의 절충안으로 미국의 다원화 모델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벤치마킹 대상은 4년제 공립 연구중심대학 10개로 이루어진 캘리포니아대학 체제(University of California System, UC System)다. 여기에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UC 버클리)과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을 비롯해 샌프란시스코·샌디에이고·샌타바버라·어바인·데이비스·샌타크루즈·리버사이드·머세드 캘리포니아대학이 포함되며, 이 중 7개가 전세계 대학 순위 100위 안에 들어 있다. 저자는 입시 문제나 사립대 문제 등을 일단 제쳐놓고 국립대 통합에 집중하자고 이야기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부터 풀어나가는 ‘최소주의적 접근’을 하자는 것이다.

전국 곳곳에 위치한 국립대가 서울대 수준의 좋은 대학이 된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지방대를 서울대로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김 교수는 “정부와 기업이 집중 투자를 하고 인재를 끌어모은 카이스트, 포스텍, 울산과기원의 사례를 보아도 가능함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이 대학들을 아무도 지방대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답한다.

대학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정부의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고 연구중심대학으로 방향을 분명히 설정해야 하며 학문분야별 특화, 구조조정 등도 필요하다. 1조5,000억 규모의 재정을 지출하는 서울대 10개를 만들려면 나머지 9개 거점대학에 서울대에 버금가는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 연구중심대학에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연구중심대학인 스탠퍼드대의 예산은 서울대의 5배나 된다.

현재의 예산 수준으로는 9개 거점국립대가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부산대는 서울의 절반, 전남대는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이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은 2020년 기준 평균 1,265억원이다. 서울대보다 평균 3,600억원이 적다. 정부가 매년 지방거점국립대에 3,600억원씩만 더 투자하면 순식간에 몇 개 대학은 8,000억~9,000억원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고 인프라에 투자할 수 있어 많은 연구비를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수주할 수 있다.

통폐합과 함께 칼텍 화학과처럼 특성화를 단행해야 하며 UC데이비스 와인제조학과같이 탁월한 산-학-관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대 10개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대학무상교육도 실시해야 한다. 등록금을 사립대 기준으로 잡고 넉넉하게 계산한다고 해도 필요한 예산은 11조1,900억원, 국내총생산의 0.6% 수준이다. 저자는 말한다. “지방대에 서울대 수준의 지원을 하자면 한 대학에 매년 3,600억 정도를 추가 투입해야 한다. 대학무상교육에 11조 원이 필요하다. 지금 사교육비 규모가 40조 원에 이른다. 재난지원금 100조 원 이야기도 나온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대학무상교육에 드는 돈은 국내총생산의 0.8% 규모다. 우리 경제로 감당하기 어렵지 않다고 본다. 지금 우리보다 1인당 소득이 낮았던 유럽 여러 나라가 수십 년 전에 한 일이다.”

저자는 “정의로운 사회는 다원적인 가치와 다원적인 기회로 축조되어야 하는데 (…) 한국 교육체제는 스카이 입학하기라는 단일 가치와 단일 기회로 이루어져 있다”며 “정의는 기회균등과 공정보다 더 큰 것”이며 “독점을 해체하는 것이 정의를 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 『대학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 (김태준·유재원 지음 | 박영스토리 | 2022년 01월 10일, 260쪽)

 

세계의 모든 대학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와 사회경제적 양극화 심화로 개혁과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우리 대학들은 이에 대해 학령인구 급감과 등록금 동결 정책으로 인해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기득권이 난마처럼 얽힌 교육 현장에서 대학 개혁의 목소리는 공허하게 메아리로만 들릴 뿐이다. 지엽말단적이고 단편적인 주장만 난무할 뿐, 대학은 각종 규제로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이해 당사자들 간의 갈등과 저항으로 인해 한 발도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배움의 장인 대학의 생태계가 조만간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저자들은 대학 개혁이라는 과제를 공론화해서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대학은 물론 정부, 기업 그리고 국민들 모두가 나서는 추진력을 끌어내 대대적인 대학 개혁을 시행할 수 있도록 이 책을 집필했다. 

성실하고 노력하는 학생들이 존중받는 교육은 얼마나 귀중한가? 인간은 누구가 다 소중하고, 마땅히 행복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경쟁 없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사회는 없다. 대학입시만 해도 그렇다. 이 세상에는 들어가기 어렵고 졸업하기 쉬운 대학과 들어가기는 쉬운데 졸업하기가 어려운 대학이 있을 뿐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들어가기도 어렵고 졸업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대학도 있다. 한국의 대학은 들어가기 어렵지만 졸업하기는 쉬운 편에 속한다. 1970년대와 비교하면 대학의 낭만이라고 부르던 것들이 많이 사라지고 학생들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한다. 대리출석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학생들은 휴강하자는 말을 절대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여기에다가 어학연수와 기업 인턴까지 하려면 대학생활은 매우 바쁘다. 

하지만, 글로벌 기준에서 볼 때 우리 대학의 학업강도는 아직 약하다. 하버드대학의 재학생들이 1주일에 1,000페이지에 달하는 강의자료를 읽느라 잠잘 시간이 없다는 말은 아직도 교과서 위주의 강의를 진행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무척이나 생소하게 들린다. 이러한 대학교육수준으로 어떻게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시대의 리더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여러 군데에서 발표하는 세계대학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은 기대 이하이다. 대학을 대학이라 부르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교육과 연구의 질이 낮은 곳이 한 둘이 아니다. 중고등학교보다 더욱 급한 것은 대학교육의 혁신이 아닐 수 없다.  

대학은 시대가 바뀌면서 그 위상이나 역할도 바뀌어 왔다. 대학이 시대적 소명에 얼마나 부합되는가에 따라 대학의 운명이 결정된다. 지금 보는 것처럼 영미나 유럽에 있는 세계적 대학들을 중국과 일본의 대학들이 따라가는 모습은 오랜 시간을 두고 겨루어온 경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대학은 그동안 선진국의 앞선 교육과 연구 프로그램를 수입하는 데 바빴고 어느 정도 성과도 이루었다. 그러나 숨 돌릴 틈도 없이 학령인구의 급감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변화가 대학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더 이상 대학의 개혁을 미룰 수 없다.
 
대학은 말 그대로 큰 배움의 장이다. 대학을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부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학을 정의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학문적 자유이다. 이것에 대한 최초의 기록적 증거는 12세기 볼로냐 대학의 학술 헌장에 나타나는데, 교육을 위한 학자의 자유로운 통과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오늘날 이것은 “학문의 자유”의 기원으로 주장되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훔볼트는 <인간교육론>에서 국가는 대학에 대한 간섭은 가능한 줄이고 대학에 대한 지원은 가능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통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대학이 만들어진다면, 이게 곧 선진 국가를 만드는 든든한 반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진리 탐구를 위한 대학의 자율성이야말로 대학의 존립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리’의 성격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신학이 학문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지동설과 진화론을 앞세운 과학이 그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이다. 오래된 역사와 명성은 대학의 커다란 자산이다. 하지만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와 시대의 요구를 외면한다면 대학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쳐온 교수의 관점에서 대학개혁을 다루고 있다. 한평생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를 천직으로 여겨온 교수라도 대학개혁에 대해서는 전공에 따라 의견이 제각각이다. 물론 경제학교수라고 해도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몇가지 점에서 다른 전공교수들과 시각이 다를 것이다. 우선 경제학은 절대선이나 절대악을 믿지 않는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선택이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선호의 문제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무엇을 중시하는가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대학개혁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이 현재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이유는 이전에 이루어진 여러 선택의 결과이다. 이제 와서 이전의 선택을 무시하고 제로베이스에서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대학에게 현 시점에서 요구되는 역할이 무엇인가, 또 대학은 이러한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개선할 점을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접근방식일 것이다.

선택과 관련하여 경제학의 중요한 원리 중의 하나는 선택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선거철에 유행하는 포퓰리즘은 특권층에 의해 착취당하는 일반대중을 위한 정책을 추진한다는 숭고한 대의를 앞세우지만, 종종 인기에 영합한 나머지 현실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비용이 따르지 않는 편익은 없다. 즉, 어떤 선택을 하면 다른 무엇을 포기하여야 한다. 대학생들은 대학에 다니기 위하여 등록금과 기숙사비 이외에도 일을 했으면 벌 수 있는 소득을 포기하여야 한다. 대학이 이러한 비용을 뛰어넘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면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되물어야 한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미충원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방대학을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한다면 그 혜택을 누가 얼마나 보고, 또 그 비용은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 따져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자라고 해서 시장만능주의자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시장만능주의는 시장을 신뢰한 나머지 정부간섭은 적을수록 좋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이러한 기조는 퇴보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경제학은 시장이 반드시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오래전부터 가르쳐왔다. 교육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교육은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전체에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후자에 해당하는 외부효과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교육서비스를 전적으로 시장에 맡기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의 교육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다시 말하자면 교육서비스 시장은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보다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물론 경제학자들은 정부개입을 이야기할 때도 시장의 기능을 중시한다. 시장을 무시한 정부개입은 시장의 실패 못지않은 정부의 실패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 교수가 바라보는 대학개혁의 청사진이 교육부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은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독창적이고 창조적이면서 융합적인 사고가 가능한 인재 양성과 연구 능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일 수 있는 대학 개혁법을 소개한다. 저자들은 교육이라는 분야가 그 어떤 학문 영역이나 주제보다 광범위하고 복잡하고 상호 긴밀하게 연계돼 있기 때문에 문제해결의 맥과 핵심을 제시하는 것과 더불어 경제학적인 사고에 기초를 두고 종합적인 방안을 제안하려 노력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서론에서는 대학 개혁의 필요성을 다각적 측면에서 제시한 후 본론에서 대학의 문제점과 교육 환경의 변화에 따른 대학 개혁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결론에서는 앞에서 논의된 대학 개혁의 방안을 7가지 핵심 전략으로 정리해서 제시했다.

대학 개혁의 구체적 방안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첫째, 정부 주도하에 한시적으로 대학 입학 정원을 일률적으로 축소하고 국·공립대학 구조를 개편하는 한편, 제한적 등록금 자율화 등 사립대학 운용의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 둘째, 특성화된 연구중심대학 지원을 강화하고 에듀테크를 활용해서 교육의 질을 향상하는 동시에 평생교육 및 직업교육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대학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충하고, 국립대학의 수월성을 대거 향상시켜 대학 서열화를 완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회의 사다리를 확대해야 한다. 현행 로스쿨 제도와 병행하는 새로운 변호사시험제도도 제안하고 있다.

대학은 인적자본을 육성하는 장소이다. 대학에서 탐스런 열매를 맺으려면 때맞춰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벌레를 잡아주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가 어떤 열매를 원하는지는 시시때때 바뀐다. 나무가 위치한 곳의 기후도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변한다. 이 책은 경제학 교수가 바라보는 대학 개혁의 청사진을 담았다. 대학이 사회적으로 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려면 스스로 거듭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경주해야 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대학의 경쟁력 제고와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들은 “현재의 위기는 동시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만델라는 교육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했다. 이제라도 대학이 바뀌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평생 교육과 연구를 천직으로 여겨온 저자들의 솔직한 평가와 고언이 대학 개혁의 물꼬를 틀 수 있길, 부디 대학 개혁이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안착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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