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역사의식 – 왜 역사인가?
상태바
역사와 역사의식 – 왜 역사인가?
  • 박유정 대구가톨릭대·철학
  • 승인 2022.01.09 23: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책을 말하다_ 『문화 텍스트로 본 서양역사』 (박유정 지음, 인간사랑, 281쪽, 2021.11)

 

왜 역사인가? BTS가 빌보드 차트 1위를 달리고, 비트코인이 MZ세대의 재테크 수단이 되어 가는 가운데 탄소세가 환경문제의 이슈가 되는 이때 말 타고 마차 타던 시대의 역사를 알아야 할까? 함무라비 법전, 그 역사를 알아야 할까, 우리 삶에 필요할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의문에 답하고자 하는 작은 시도이다.

굳이 헤겔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역사는 사건사가 아니다. 사건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즉 그것은 일련의 사건의 계열에 대해 객관적으로 탐구하는 진리의 체계가 아니라 오히려 사건이 노정하는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주관성의 과학이다. 역사는 사건이 드러내는 의미의 지평을 주관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진리의 체계이다. 고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 즉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역사가의 상호작용이라고 말하는 것이다(E. H. Carr, 『역사란 무엇인가』, 황문수 역, 범우사, 1997, 17-51쪽 참조). 따라서 역사는 사건이 드러내는 의미를 해석함으로써 진실을 발견하는 과학, 무엇보다도 해석의 과학인 것이다.

이렇게 역사는 무엇보다 해석이고, 해석이 관건이다. 이 책은 이러한 해석에 기준이 되는 문화 텍스트들을 다루고, 그것을 통해서 각각의 역사가 드러내는 의미지평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했다. 가령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호메로스와 플라톤의 저술을 읽어봄으로써 그 역사적 의미의 현장을 들여다보고자 했고, 2차 세계대전을 발발하게 했던 전체주의의 역사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어봄으로써 그 역사적 분위기를 전달하고자 했다. 또한 프랑스 대혁명의 역사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에서 칸트의 철학과 그의 이신론적 윤리학을 다루고 노발리스의 <밤의 꽃>을 읽어봄으로써 그 역사적 현장을 실감할 수 있도록 서술하고자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문학이나 예술 혹은 철학의 문화 텍스트를 다룸으로써 각각의 역사가 갖는 의미의 현장을 더욱 생생하게 드러내고, 이를 통해서 그 사건이 갖는 의미의 지평을 반성적으로 자각하도록 돕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이 책은 역사와 문화 텍스트 사이의 해석학적인 순환을 가져왔고, 그로써 이른바 ‘역사 이념의 현상학’에 이르고자 했다. 이는 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로서 아직 도달하지 못한 이정표로 남아 있지만, 역사가 결국 의미를 이해하는 해석학적 과정 속에서 자기의식이 그 정체성을 수립하는 정신적 과정임을 말하는 것이다. 즉 역사는 사건이 드러내는 의미지평, 그것도 매우 중층적인 의미지평을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서 자기의식이 그 존재의미를 자각하는 역사의식 생성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역사는 사건의 의미지평인 역사성에 대한 해석의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역사의식의 장인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식의 지평에서 볼 때 왜 역사인가에 대한 우리의 의문은 답해질 수 있다. 역사는 우리의 삶과 무관한 일련의 사건의 역사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자기의식에 관계하여 우리의 존재를 규정하는 의미의 지평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역사는 한국인의 자기의식과 그 존재를 구속하고, 한국인은 그의 정신과 존재가 그로부터 성장한다. 이것이 역사적 사건이 드러내는 의미지평의 해석학적 순환 속에서 생성되는 역사의식의 중요성이다. 즉 역사는 지나가버린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의 삶 속에서도 우리의 존재를 규정하는 역사의식의 지평이기 때문에 그것은 언제든지 재생되고 부활되며 심지어 체험될 수 있는 이야기이고, 그런 점에서 중요한 것이다.

가령 2019년 일본이 가했던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라는 경제제재를 보자. 이는 일본이 한국에게 반도체의 불화수소를 비롯한 소재부품에 대한 수입규제를 한 것인데,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일제가 저질렀던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불복함으로써 비롯된 역사의식의 문제였다. 표면적으로는 경제문제이거나 정치문제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역사의식의 문제인 이러한 예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대만 민주화 운동이나 이스라엘 골란고원의 문제처럼 우리의 삶이 그 자체로 늘 동반하고 있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역사와 전통 위에 세워진 건물이기 때문이다. 고로 역사는 지나가 버린 과거가 아니라 현재 속에서 언제나 부활될 수 있는 가능적 지평인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우리의 삶과 역사가 갖는 이러한 역사의식의 지평에서 왜 역사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자 했다. 역사를 단순한 사건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의미를 드러내는 문화로서 바라보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반성적 차원, 즉 역사의식을 제고하는 대로 나아가기를 바랐다. 이것이 헤겔의 역사철학이 말했던 역사의 보편사적 이념일 것이고, 왜 역사인가 하는 실존적 물음에 대한 답일 거라고 생각하였다. 즉 역사는 개별적이고 단편적인 사건이나 사실, 즉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배경을 형성하는 전통이자 문화이며, 이것을 도외시하고는 나 자신조차 자신을 정립할 수 없는 존재근거에 닿아 있는 것이다. 이는 역사의식을 통해서 독일의 나치에 대한 사과로 혹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로 표면화되는 우리 삶의 본질적 존재이자 의미의 보루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이러한 역사의 삶 관련성을 문화 텍스트를 통해 설명함으로써 역사와 친해지고, 나아가서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의식을 제고하도록 돕고자 했다. 특히나 배우는 젊은이들이 과거에 대한 이해를 통해 미래의 청사진을 구성할 수 있는 의식을 꾸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철학전공인 저자가 문화 텍스트를 통해 역사를 인문학적으로 서술한 이 책은 아직도 개별 역사에 대한 서술에서 피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결국 왜 역사인가 라고 물었을 때 역사의 존재의미는 역사의식이라는 삶과의 연관성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호메로스를 말안장에 넣고 달렸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헬레니즘을 불러왔던 것처럼 역사를 통해 푸른 미래를 꿈꾸는 BTS와 MZ세대가 21세기 한국의 르네상스를 불러올 날을 그려본다.
    

박유정 대구가톨릭대·철학

부산대학교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 대학 인문학 연구소 Post-Doc,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강의전담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프란치스코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우수논문 사후지원을 받았던 「하이데거 예술론의 헤겔 수용과 비판」이 있고, 문학과 예술 및 철학의 해석학적 탐구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