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인정(仁政) 사상의 입론 근거: 위임 통치론과 군민(君民) 호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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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인정(仁政) 사상의 입론 근거: 위임 통치론과 군민(君民) 호혜주의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1.09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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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교양서20 제16강〉_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의 「〈맹자〉」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여덟 번째 시리즈 ‘교양서20’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교양서는 사회의 기본이 되는 인간 교육, 즉 교양 교육이나 인성 함양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도서다. 교양의 내용은 자기 수양의 지혜를 넘어 그리고 동양이나 서양의 문화적 전통을 넘어, 인간과 세계와 자연과 우주에 관계되는 넓은 독서를 포함한다. 전체 20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자기 수련과 타자에 대한 공감과 사회적 필요와 삶의 배경이 되는 자연과 우주의 구성을 느낄 수 있고 알게 하는 기초적인 교양 도서 20권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2. 동양사상 제16강 이승환 명예교수(고려대 철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맹자 인정(仁政) 사상의 입론 근거: 위임 통치론과 군민(君民) 호혜주의


이승환 교수는 “인정(仁政)이라 불리는 맹자의 왕도(王道) 정치 사상”에 대해 그 입론의 근거로서 “위임 통치론과 군민(君民) 호혜주의”를 들어 이야기한다. 우선 위임 통치론을 말하며 ‘폭군 방벌론’과 “하늘이 수여한 위임 통치의 명을 받든다는 의미”의 천명론(天命論)이라는 정치사상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면서 그를 통해 “통치권의 정당성의 원천을 밝히는 동시에 통치권의 행사가 인정(benevolent government)의 형태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듯 “하늘-왕-백성의 관계를 위임 계약으로 설명”하는 데에서 한 걸음 나아가 맹자가 행정 권력의 원천을 청구권(claim right)-의무(duty), 그리고 능력권(power right)-책임(liability)의 규범 관계에 두고 있음을 밝힌다. 즉 “가혹하고 탐욕스럽게 자기만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춘추ㆍ전국의 군주들에게 이타주의의 행동 강령을 설파”하는 순진함을 보인 것이 아니라 “군주-백성 간에 호혜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가 바로 맹자가 말하는 ‘백성 보살핌[保民]의 정치’이고 ‘관대한 정치’이며 ‘인자한 정치’”였음을 강조한다. 

 

지난 11월 20일, 이승환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교양서20>의 16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위임 통치론: 왕도 정치의 계약법적 성격

인정(仁政)이라 불리는 맹자의 왕도 정치 사상은 하늘[天]과 군주[王]를 계약의 주체로 하는 위임 통치론에 입각해 있다. 맹자 왕도 정치론의 계약법적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폭군 방벌론’으로부터 논의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탕’은 하나라의 마지막 왕 ‘걸’을 방벌하고 상 나라를 세운 건국자이며, ‘무’는 상나라의 마지막 왕 ‘주’를 방벌하고 주나라를 세운 건국자이다. 맹자는 제 선왕과의 대화에서 탕ㆍ무가 폭군 걸ㆍ주를 방벌하고 새 나라를 세운 일을 공자 정명론의 논법을 사용하여 정당화하고 있다.

흉포한 범죄자를 처벌하여 죽이는 일이 주(誅)라면, 하극상의 반란을 일으켜 임금을 죽이고 자리를 빼앗는 일이 시(弑)이다. 맹자는 탕ㆍ무가 걸ㆍ주를 방벌한 일을 두고 ‘시’ 대신 ‘주’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단 한 개의 글자를 통해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폭군 방벌론이라고 불리는 이 정치적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맹자 이전부터 전해오던 천명론(天命論)이라는 고대의 정치사상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천명수수(天命收受)’란 하늘이 수여한 위임 통치의 명을 받든다는 의미로서, 통치권의 정당성의 원천을 밝히는 동시에 통치권의 행사가 인정(仁政: benevolent government)의 형태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책무를 규정하는 개념이다. 

‘천명’이란 하늘이 유덕자에게 왕위를 임명한다는 뜻으로, 영미권의 학자들은 이를 “Mandate of Heaven”이라고 번역한다. (mandate란 임명 또는 위임을 뜻한다.) 주나라 초기의 정치적 사건을 기록한 『서경』 「강고(康誥)」 편에서는 하늘이 문왕에게 패악무도한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새 나라를 세우라고 “대명(大命)”을 내렸으며 문왕은 하늘이 내린 이 “명령을 받들었다[受命].”라고 적고 있다. 그런데 하늘이 문왕에게 통치권을 위임해주면서 제시한 조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덕을 숭상하고 백성을 보살피라는 “경덕보민(敬德保民)”의 요구이다.

위 기록에 등장하는 하늘과 문왕 그리고 백성은 “위임에 관한 계약”이 성립하기 위해 필수 적으로 요청되는 세 요소이다. 위임에 관한 계약법의 언어로 『서경』 「강고」 편에 나오는 ‘천명수수’에 관한 기록을 재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하늘은 위임인으로서 수임인인 문왕의 덕성과 능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백성 보살핌[保民]’이라는 사무를 위임하였고, 문왕은 선량하고 성실한 수임인의 자세로 이를 받아들였다.”

맹자의 폭군 방벌론은 위임 계약의 법적 논리를 적용할 때 그 정당성이 확연하게 드러나게 된다. 폭군 걸ㆍ주(수임인)는 하늘(위임인)이 통치권을 위임할 때 요구 조건으로 제시한 ‘경덕(敬德)’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음은 물론, 하늘이 위탁한 사무 즉 ‘백성 보살핌[保民]’의 의무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계약을 크게 위반한 것이다. 수임인이 계약을 위반했을 경우 위임인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가? 답은 간단하다. 신뢰를 저버린 수임인과의 계약을 파기해버리고, 다른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아 새 계약을 맺는 수밖에 없다. 하늘의 위임 명령은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다. 『시경』 「대아」 편에서 문왕의 덕을 찬미하는 노래에 나오는 “천명미상(天命靡常)”이라는 구절은, 수임인이 약속을 위반했을 때 위임인인 하늘이 해당 계약을 언제라도 파기해버릴 수 있다는 단호함을 천명한 포고문으로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천심은 민심, 민심은 천심

하늘-왕-백성을 구성 요소로 하는 계약법의 구도에서, 형이상의 존재인 하늘은 지상에서 전개되는 정치적 상황을 어떻게 탐지하고 파악할 수 있는가? 하늘은 포악한 군주에 의해 자행되는 무자비한 폭압과 학정(虐政)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위임 계약의 파기를 준비하는 것일까? 

하늘이 지상에서 벌어지는 정치 상황을 파악하는 길은 백성들의 반응을 통해서이다. 백성이 지상에서 벌어지는 정치 상황을 하늘로 하여금 감지하게 해주는 센서(sensor)다. 천심은 곧 민심이고, 민심은 곧 천심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왕에게 통치권을 위임할 수 있는 임명권자는 명목상으로는 하늘이지만, 하늘의 눈과 귀 역할을 해주는 자는 바로 백성이다. 맹자보다 조금 뒤의 유학자인 순자의 다음 문장은 군주에게 통치권을 위임하는 실질적인 계약 주체가 백성이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전해오는 말에 “임금은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띠워주기도 하지만 엎어버리기도 한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순자는 중국 사상사에서 보기 드물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철학자였다. 그는 비의(秘儀)에 싸인 전통의 하늘 개념 즉 ‘주재천’을 거부하고 ‘자연천’을 주장했다. 하늘이 빠지고 빈자리에 백성[民]이 실효적인 계약 주체로 부상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물은 배를 띠워주기도 하지만 엎어버릴 수도 있다.”라는 말은 “백성은 임금을 추대해줄 수도 있지만 파면해버릴 수도 있다.”라는 말과 매한가지이다.

 

3. 폭군 방벌론에 대한 법가의 비판

신하가 임금을 내쫓거나 제후가 천자를 죽이는 일은 실정법에 따른다면 국가 원수를 시해하는 일로서 반란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라는 합리적 제도를 상상도 할 수 없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혁명이라는 극단적 방법 이외에는 폭군의 폭압으로부터 벗어날 다른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맹자는 아무리 천자라도 용납받지 못할 학정을 저지르는 폭군이라면 실정법을 어겨서라도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실정법 위에 이를 지도하는 상급심으로서 보편 도덕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맹자의 혁명 사상은 자연법적인 색채를 띤다. 맹자보다 조금 뒤의 유학자인 순자 또한 “걸ㆍ주는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였으며, 탕ㆍ무가 이들을 제거한 것은 국가원수 시해가 아니라 범죄자 처벌이다.”라고 하여, 실정법을 어기고서라도 폭군을 제거해야 한다는 맹자의 주장에 찬동한다.

보편적인 도덕 원칙을 실정법의 우위에 놓는 유가의 입장과는 반대로, 법가 사상가들은 실정법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한비자(韓非子)에 의하면, 탕과 무가 걸ㆍ주를 방벌하고 죽인 것은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를 위반한 일이다. 법 실증주의에 입각한 법가의 입장은 한 대의 법가 사상가 황생(黃生)의 입을 통하여 더욱 명백하게 표현된다. 그는 “탕과 무는 걸ㆍ주를 처벌하라는 (실정법에 의한) 명을 받은 적이 없으니, 이는 곧 임금을 시해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비록 다 떨어진 모자라도 머리에 써야 하고, 아무리 새 신발이라도 머리에 쓰지 않고 발에 신는 까닭은 위ㆍ아래의 구분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걸ㆍ주가 도덕 원칙에서 크게 어긋났다 하더라도 임금은 임금인 것이며, 아무리 탕ㆍ무가 도덕적으로 옳다고 해도 신하는 신하인 것이다. 임금이 실수를 했을 때 신하가 바른 말로 간언해서 고치려 하지 않고, 트집을 잡아 내쳐버리고 임금 자리에 대신 앉는 것은 국가 원수 시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힐문한다. 법가에 의하면, 아무리 도덕적 동기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그 행위가 실정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면 절대로 용납받을 수 없는 범죄 행위에 불과하다.

 

4. 대부(大夫) 행정 권력의 원천과 ‘백성 보살핌[保民]’의 의무

맹자는 하늘-왕-백성의 관계를 위임 계약으로 설명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왕-대부-백성의 관계 또한 같은 논리로 설명한다. 왕의 통치권이 하늘과의 위임 계약에 의해 성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방 행정 책임자인 대부의 권한은 나라의 최고 통치권자인 왕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맹자는 소와 양의 목축을 위탁받은 사람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소와 양을 주인에게 반환하고 목축인의 직책에서 물러나야 하듯이, 왕으로부터 백성 보살핌의 사무를 위탁받은 대부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에는 그 직을 사임하고 물러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강하게 압박한다. 가축주-목축인-가축의 관계에 대한 맹자의 해석에는 위임 계약에 관한 법적 논리가 탄탄하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임은 한 개인(위임인)이 다른 개인(수임인)에게 사무의 처리나 재산의 관리를 위탁하고 수임인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한다. 수임인은 위임인의 뜻에 따라 충실한 관리자의 자세로 위탁 사무를 처리해야 하며, 위탁 사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에는 지체 없이 위임인에게 이를 보고하고 손해를 배상해야 할 책임을 진다.

맹자의 비유에서 가축주는 위임인이 되고, 목축인은 수임인이 되며, 가축 기르는 일은 위탁 사무에 해당한다. 청구권-의무, 그리고 능력권-책임의 규범 관계는 왕-대부-백성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왕(위임인)은 ‘백성 보살핌’에 필요한 권한을 대부에게 위임할 수 있는 능력권을 가진다. 수임인인 대부는 위임인인 왕의 뜻에 따라 충실하게 백성을 보살펴야 할 책임이 있으며, 자신의 부주의로 백성에게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서는 변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 또한 대부가 왕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무 즉 ‘백성 보살핌’을 소홀히 했을 경우 왕은 수임인인 대부의 지위를 박탈할 권한이 있으며 아울러 손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5. 위탁 사무의 수행: 보민(保民)과 인정(仁政) 

적지 않은 동양 철학 연구자들이 공자ㆍ맹자의 ‘인’ 개념을 이타주의적 덕목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다. 가혹하고 탐욕스럽게 자기만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춘추ㆍ전국의 군주들에게 이타주의의 행동 강령을 설파하는 일은 과연 가당한 일일까? 정말로 맹자는 하늘로부터 ‘백성 보살핌’의 사무를 위탁받은 군주들에게 무상으로 백성들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고 희생하라고 권고했을까? 만약 공자와 맹자가 정말 그런 식으로 군주들을 설득하려고 했다면 정치 자문(counselor)으로서 자격 미달이라 해야 할 것이다.

공자는 자장(子張)과의 문답에서 “군주가 관대한 정치를 베풀면 많은 사람을 얻게 된다[寬則得衆].”라고 설파한 바 있다. 농사일로 바쁜 봄철에는 백성들을 함부로 노역에 동원해서는 안 되며, 가을에는 세금을 적정한 수준으로 부과하여 노동 인구가 굶주리지 않게 하는 일 등이 종국적으로는 국가 전체의 경제력을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다준다. 이처럼 군주-백성 간에 호혜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가 바로 맹자가 말하는 ‘백성 보살핌의 정치’이고 ‘관대한 정치’이며 ‘인자한 정치’이다.

맹자는 ‘인정’의 당위적 근거를 위임 통치론의 계약법적 의무에서 도출하지만, 현실 군주들을 만나 설득하는 과정에서는 통치자와 피치자 간의 ‘호혜적 이익’을 강력한 논거로 제시한다. 맹자는 청빈한 금욕주의를 주장하지도 않았고, 정결한 성 도덕을 주장하지도 않았으며, 백성들의 행복을 위해 왕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맹자가 주장하는 왕도 정치란 통치자 개인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탐욕적 이기주의를 넘어서, 통치자와 피치자 모두의 행복 증진을 위하려는 호혜주의에 입각한 정치일 따름이다. 맹자는 극단적인 위아(爲我)주의자인 양주와 극단적인 박애주의자인 묵자를 비판하고, 중도를 바람직한 정치 원리로 제시했다. 중도란 자기 이익만을 염두에 두는 이기주의와 타자의 행복만을 생각하는 이타주의의 양극단을 넘어서서, 자기와 타자 모두의 복리를 고려하는 호혜주의의 길을 말한다.

적지 않은 해설자들이 맹자가 이익[利]을 경시하고 인의(仁義)만 중시했다고 말하곤 한다. 양 혜왕과의 첫 대면에서 맹자가 “임금께서는 왜 이익만 말씀하십니까? 중요한 것으로는 ‘인의’가 있을 따름입니다.”라고 면박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두 사람 간의 대화를 따라 읽다 보면, 군주의 근시안적 이기심의 추구는 나라 전체에 쟁탈과 분쟁을 초래할 것이며, 오히려 ‘인의’의 정치를 시행한다면 더 많은 사람의 지지와 성원을 얻게 되어 저절로 경제력과 국방력이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로 볼 때 맹자는 벽창호 도덕 선생님처럼 마냥 ‘이익’을 거부하고 ‘인의’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근시안적 이기주의’는 결과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렇듯 맹자가 권하는 ‘인의의 정치’는 공자가 말한 “관대한 정치는 많은 백성을 모을 수 있다[寬則得衆].”라는 주장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인정’이란 백성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는 정치이다. 백성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줌으로써 왕권도 안정이 되고 나라 전체에는 평화와 번영이 들게 된다.

 

6. ‘인정’의 구체적인 내용

맹자는 ‘인정’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군주 1인만을 위한 사부(私富) 축재의 억제, 기간산업(즉 농업) 장려에 의한 민생의 진작, 토지 개혁을 통한 공정한 부세 제도의 확립, 그리고 관세 철폐에 의한 상품 경제의 활발한 유통 등을 든다. 이러한 제반 정책은 한편으로는 기층민의 삶[民生]을 향상시켜주는 조치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군주의 통치 기반을 안정되게 해주는 군(君)-민(民) 모두에게 호혜적인 정치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맹자는 지배 계급의 폭력에 의한 억압과 수탈은 오래 지탱하기 어렵다고 보고, 기층민의 삶을 보살펴주는 ‘인정’이야말로 결과적으로는 통치자의 정권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맹자의 ‘호혜주의 정치 원칙’에 의하면, 군주의 축부(畜富)는 과다한 징세와 부역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징세와 부역이 과다할 때는 기층민이 군주에게 등을 돌리게 되고, 기층민의 이반과 동요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나라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된다는 것이다. 맹자가 “민(民)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군주는 끄트머리다.”라고 한 것도, 통치자들에게 “나라의 존망은 기층민의 건재 여부에 달려 있다.”라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한 말이다. 이로 볼 때, 맹자의 ‘인정’ 사상은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이타주의적 도덕 강령’이 아니라, 통치자와 피치자의 모두의 원시안적 이익을 염두에 둔 호혜적 정치 원리라는 생각이 든다. 

맹자는 ‘인정’의 시행과 관련하여, 제 선왕에게 기간산업인 농업을 장려하여 민생 경제를 안정시킬 것을 권한다. 맹자는 ‘인정’을 위한 경제 정책의 시행에 있어서 농업ㆍ어업ㆍ목축업을 장려하고 이와 더불어 천연자원의 보호와 지속 가능한 개발을 권하고 있다. 맹자에 의하면, 민생의 바탕이 되는 이러한 기간산업을 장려함으로써 백성의 생활이 안정되고, 백성의 생활이 안정됨에 따라 국력 또한 부강해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중농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기간산업의 장려에는 맹자뿐 아니라 법가나 병가의 개혁자들도 대체로 의견을 같이한다.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맹자가 중농 정책을 통해 통치자-피치자 간의 호혜적 이익 증진을 도모한다면, 법가는 군주권과 국방력 강화를 위한 세수(稅收) 증대라는 단기적 이익 실현에 목표를 둔다.

경제 정책에 있어서 맹자와 법가와의 차이점은 부세 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맹자는 부세 제도에 있어서, 야인(野人)의 경우는 정전제(井田制)에 의한 노역 지대[助]를 부과하고, 국인(國人)의 경우에는 수확량의 10분의 1을 현물 지대[賦]로 과세할 것을 주장한다. 국인(國人)은 국의 중심지인 읍(邑) 또는 국중(國中)에 사는 거주민을 의미하고, 야인(野人)은 읍의 바깥에 거주하며 농업 생산에 종사하는 경작자들이다. 

민생 경제의 보호라는 차원에서 맹자는 야인 계층에게는 정전제에 의거한 노역 지대의 부과만을 요구했지만, 국인 계층에 대해서는 생산량의 10분의 1[賦]을 거두어들이는 현물 지대 방식을 취할 것을 주장한다. 맹자가 왜 국인과 야인의 세금 제도를 달리하려고 했는지 설명해줄 만한 문헌은 존재하지 않지만, 지배 계층인 국인에게 부과하는 세금으로는 하ㆍ은ㆍ주 이래 전해오는 10분의 1의 세율이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 같다. 맹자는 중농 정책에 의한 민생 경제의 안정을 주장하는 동시에, 상업 정책에 있어서도 관세의 철폐와 상인의 자유 왕래를 적극 권장한다.

전국 시대의 각국이 부국강병을 위하여 상행위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국가 안보를 이유로 통행의 자유를 엄격하게 제한하지 않을 수 없던 상황에서, 맹자의 관세 철폐 주장은 다분히 현실에서 벗어나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면 맹자는 과연 자신의 관세 폐지론이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을까? 관세 폐지를 연기하려고 하는 송의 대부를 질책하는 것으로 보아서, 맹자가 관세의 폐지를 절실한 당면 시책으로 생각했으며, 또한 관세의 폐지야말로 ‘인정’ 실행의 중요한 측면이라고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볼 때, 관세의 폐지는 맹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인정’의 일환이며, 관세 폐지로 말미암아 부진했던 상업 경제가 부흥하고 경색되었던 유통 질서가 개선됨으로써 국가 경제 또한 부흥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7. ‘인정’의 도덕 심리학적 근거: 호혜적 공감

맹자는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근본적 특징을 “남의 불행을 차마 보아 넘기지 못하는 마음” 즉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라고 보았다. 그는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에게서 느끼는 연민감을 예로 들어, 인간에게는 남의 불행을 차마 그대로 보아 넘기지 못하는 마음 즉 ‘측은지심’이 있다고 말한다. ‘측은지심’은 인간을 동물로부터 구별하게 해주는 중요한 지표이다. 동물은 배고픔을 면하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상대에 대한 아무런 동정심이나 연민감을 가지지 않은 채 대상을 공략한다. 그러나 맹자는 인간은 이와 다르다고 본다. 인간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곤경에 빠진 약자나 불행에 처한 타자를 향하여 연민감과 자비심을 보일 줄 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맹자는 ‘불인인지심’을 인간만이 가지는 특징이라고 보고, “측은지심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측은지심과 더불어,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는 마음[羞惡之心], 사양하고 양보하는 마음[辭讓之心], 그리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是非之心] 등의 사단(四端)을 인간이 가지는 본질적 특징이라고 보았다. ‘사단’은 인자함[仁]ㆍ의로움[義]ㆍ예의 바름[禮]ㆍ지혜로움[智]의 네 덕을 이루기 위한 실마리가 된다.

전국이라는 격렬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맹자가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여긴 까닭은 무엇일까? 『맹자』에 기록된 전쟁의 참상에 대한 묘사와 정치ㆍ경제적 개혁에 대한 수많은 제언들로 볼 때, 맹자가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라고 선언한 데는 나름대로의 현실적 의도가 있을 것이며, 당시 상황 속에서 이러한 주장이 청자(聽者)에게 미치는 ‘발화 수반 효과’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맹자가 인간에게 네 덕을 이룰 수 있는 실마리[四端]가 내재되어 있다고 말할 때, 그가 겨냥하는 최종 목표는 통치자를 교화하여 ‘인정’을 실현하게 하는 일이다. 맹자에 의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한 나라의 군주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사단’이라는 잠재성에도 불구하고 인한 정치를 베풀지 않는 일은 스스로의 발전 가능성을 포기하는 일이며, 그의 신하들이 자기 임금을 인한 정치로 이끌지 못한다면 이는 임금으로 하여금 자신의 본성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방기하는 일이 된다. 이로 볼 때 맹자의 성선론은 단순히 인간의 본성에 관한 지적 호기심에서 말해진 것이 아니라, 당시의 탐욕스럽고 포학한 군주들을 교화하기 위한 의도에서 발화(發話)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정치가 ‘인정’과 반대로 행해진다면 백성들의 마음이 정권으로부터 이반하여 마침내 걸ㆍ주처럼 패망의 길에 들어서게 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맹자는 통치자-피치자 간에 호혜적 관계 설정이 절실하게 요구됨을 설파하고 있다. 왕이 인정을 베풀면 백성도 그를 신임하여 목숨까지 바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기층민이 등을 돌리게 되어 군주 자신의 존립마저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다. 

 

8. 인자에 의한 전국의 통일

맹자가 내세우는 ‘인정’이라는 정치 강령은 전쟁으로 치닫는 전국 당시의 정세로 보아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춘추 시대에도 이미 ‘인정’을 베풀어 백성의 지지를 획득하여 세력을 획득한 경우가 있음을 볼 때, ‘인정’이라는 정치 원칙이 꼭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니다. 

너그러운 정치를 시행하게 되면 지지 세력이 모이게 되고, 이에 따라 국세도 저절로 부강해지리라는 것이 맹자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맹자는 인정을 베풀면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정’은 곧 천하를 얻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맹자는 난국을 종식시키기 위한 방도를 패(覇)에 의한 무력 통일이 아니라 왕(王)에 의한 ‘인정’에서 찾는다. 공자의 ‘인자무적’이라는 왕도 정치 사상을 이어받아, 맹자는 ‘인정’을 행하면 천하의 민심이 물 흐르듯 귀의할 것이라고 군주들을 설득한다. ‘인정’을 시행한다면 민심이 자연히 인자한 군주를 향하여 모여들게 되고, 이에 따라 난립하는 국제 질서 또한 자연히 인자한 군주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 강대국과 약소국의 외교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맹자에 의하면, 강대국은 약소국을 감싸 안아줌으로써 천하의 중심으로서 지위를 유지할 수 있고, 약소국은 강대국을 섬김으로써 자국의 영토와 백성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외교 관계가 모두 하늘의 이치에 따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강대국에는 인(仁)이라는 포용력이 필요하고, 약소국에는 생존을 위한 지혜[智]가 필요하다는 것이 맹자의 입장이다.

맹자의 이러한 입장에 따른다면, 힘이 약한 나라는 지혜를 동원하여 강대국을 섬기며 생존을 도모해야 하고, 만약 이것마저 불가능하다면 나라를 포기하고 백성을 살리는 것이 순리이다. 사직과 국가의 보존을 염려해야 했던 등 문공이나 한비자와 달리, 천하주의자인 맹자에게 사직과 국가란 어찌 보면 큰 의미가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국경선으로 둘러싸인 국가 공동체를 유지하고 핏줄로 이어지는 사직을 보존하는 일보다는, ‘인의’에 의해 평화와 번영을 기약할 수 있는 호혜적 대공동체의 수립이 맹자에게는 더욱 절실한 관심사였을 것이다.

일국의 보존을 위해 고심하던 등 문공이나 한비자와 달리, 맹자는 천하를 주유하며 강대국의 군주들을 설득하고자 했다. 그가 방문했던 나라나 체류 기간을 따져보면, 맹자는 제나라에 가장 큰 희망을 품었다고 보인다. 비교적 국세가 강하고 토지가 넓은 나라를 골라 그 나라의 군주를 설득하여 ‘인’이라는 포용력으로 천하를 평화ㆍ통일하게 만들려는 염원을 맹자는 꿈꾸었다.

하지만 역사는 맹자의 꿈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상앙과 한비자 등 법가의 정책을 채택한 진나라가 결국 ‘다투는 나라들[戰國]’을 차례로 멸망시키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영토를 처음으로 통일하였다. 하지만 진이 천하를 통일한 후에는, 잔혹한 형벌로 인해 길 가는 사람의 절반이 불구자였고, 가혹한 세금으로 인해 농민들이 개나 돼지가 먹는 음식을 먹어야 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민중은 대규모의 반란을 일으켰고, 진나라는 결국 천하를 통일한 지 15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어찌 보면 ‘보민’과 ‘인정’을 강조하는 맹자의 정치 이념은 분열된 천하를 통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통일된 천하를 유지하기 위해 유효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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