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제는 엔데믹이다!…코로나19 바이러스와 백신 그리고 달라진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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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제는 엔데믹이다!…코로나19 바이러스와 백신 그리고 달라진 세계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12.14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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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사이언스: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획 | 동아시아 | 220쪽

 

2019년 11월 17일, 처음으로 보고된 이래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코로나 19)는 계속해서 우리 인간의 예상을 뒤집어오고 있었다. “호흡기 질병은 겨울철에 발생하여, 바이러스가 활동하기 어려운 더운 여름철에는 거의 사라진다”, “팬데믹 전에는 어느 정도 인체 간 감염이 발생하여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병인이 되는 바이러스의 변이 또한 이어지고,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계속해서 인류의 희망을 보기 좋게 배신해왔다. 두 번의 여름이 지나면서도 코로나19 팬데믹은 종식되지 않았고, 오히려 WHO에서 ‘엔데믹(Endemic)’으로의 전환을 점치고 있을 정도다. 본래 엔데믹이란 말라리아나 뎅기열 등 지역에 따라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풍토병’을 의미한다. 그런데 코로나19의 대유행 이후로는 ‘감염병의 주기적 유행’을 의미하는 용어로 새롭게 쓰이고 있다. 코로나19는 그야말로 감염병의 문법을 바꿔놓은 커다란 전기인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다는 점에서는 과학계와 의학계 또한 이에 뒤지지 않았다. 2020년 1월 1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이 밝혀진 이후 세계 각국에서 일제히 백신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2020년 12월 11일, 화이자(Pfizer)의 백신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고, 그로부터 3일 후 드디어 접종이 시작됐다. 질병에 시름하던 사람들에게는 지지부진한 속도였겠지만, 이는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다. 과거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AID)에서 사스(SARS)의 백신 후보물질의 임상 1상에 진입하는 데에만 해도 20개월이 걸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비범함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백신 개발에 소요되는 약 5년 이상의 기간을 5분의 1로 감축시킨 것은 mRNA 기반 백신의 특징도 있겠으나, 인류가 맞이한 미증유의 재해에 대해 전 세계의 면역학자, 바이러스학자, 의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공동 대책을 수립하고자 노력한 덕택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보 공개와 지식의 공유는 학계를 넘어 일반 대중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에피데믹, 팬데믹을 넘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인포데믹(Infodemic)을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앎이란, 삶에 드리운 미지의 장막을 걷어내는 지시등이다. 팬데믹에 이어 엔데믹이라는 상황하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그리고 앞으로 맞닥뜨릴지도 모르는 미지의 질병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세계 각국 각사에서 저마다 백신 개발에 뛰어들면서 “어떤 백신이 효과가 좋을까” 하는 궁금증 역시 생길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초로 임상 1상에 들어간 것은 중국의 시노팜(Sinopharm)에서 개발한 백신이다. 중국, 동남아시아, 남미 등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에서 주로 접종이 이루어졌으나 그 효능에 대한 논란이 잇달아 번졌다. 그런데 사실 백신의 효능은 그저 단순히 백신의 예방률을 줄지어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 백신의 효능 차이는 기실 각 백신의 유형과 크게 결부되어 있다. 가령 시노팜과 시노백 백신은 사백신이다. 열이나 방사선, 화학물질 등으로 비활성화시킨 병원체를 직접 주입함으로써 면역 반응을 유도한다. 병원체가 살아 있지 않으므로 백신으로 주입한 병원체가 증식하지도 않고, 질병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병원체를 이용한 백신이기에 개발 속도가 빠르고 안정성이 높지만, 대신에 면역 반응이 적고 지속 기간이 짧다. 말하자면 이들 백신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효능이 떨어지는 것은 사백신이라는 유형에서 기반한 태생적인 한계다. 한편 화이자와 모더나 등에서 개발에 성공하면서 조명을 받은 mRNA 백신이나 DNA백신은 핵산(Nucleic acid) 백신으로 분류된다. 병원체의 항원에 관한 정보를 담은 유전물질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무엇보다 백신 생신이 빠르고 장기간 면역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각 백신에는 개발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특성이 있다. 방역당국 만이 아니라 개개인 또한 이러한 점들을 알아야 한다. 기초과학에 관한 지식은 위기 상황에서 안전한 삶을 꾸려나가기 위한 무기가 된다.

《코로나 사이언스: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의 저자들이 전망하는 것은 단순히 파편화된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세계 그 자체이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는 주기를 두고 나타나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에 의한 감염에 잘 대응하며 살아갈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전망한 고규영 단장의 말처럼, 우리는 코로나19와 더불어 사는 ‘코로나 엔데믹’ 시대를 맞이했다. 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기초과학 지식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다. 

2021년 7월 1일, 드디어 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이 터진 이후에야 비로소 논의가 진전될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러한 지연으로 인해 한국이 이번 사태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자력으로 해내지 못했으며, 백신 수급을 타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질병이 휩쓸고 간 폐허를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질병을 미리 예방하고 견딜 수 있는 체력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기초과학이 할 수 있는 진정한 역할이다. 앞으로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코로나21, 코로나22를 생각하면 지금의 시작은 결코 늦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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