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좌파사상가의 원형’을 제시해 줄 푸코(Michel Foucault)의 삶과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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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좌파사상가의 원형’을 제시해 줄 푸코(Michel Foucault)의 삶과 정신
  • 이명곤 제주대학교·서양철학
  • 승인 2021.12.12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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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푸코와의 1시간』 (이명곤 지음, 세창출판사, 140쪽, 2021.10)

 

내가 프랑스에서 공부할 즈음에 대다수의 프랑스인들이 철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식견이 있고, 웬만한 철학적 논의는 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한편 놀랐고 한편 부러웠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특이한 교육제도 때문이었다. 프랑스에서 대입시험(바깔로레아)은 일종의 철학시험이며, 고3 때에는 거의 철학만 수업하기 때문이었다. 이후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프랑스인들처럼 저렇게 철학을 가까이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종종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처음 출판사로부터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프랑스 철학을 소개하는 시리즈물」’을 의뢰 받았을 때, 기분이 좋았고 흔쾌히 승낙하였다. 출판사에서 제안한 철학자는 데카르트, 루소, 베르그송, 레비나스 그리고 푸코였다. 『푸코와의 1시간』은 이렇게 시리즈의 마지막 책으로 출간되었다. 

앞서 출간된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가급적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독자들에게 유익한 방식으로 구성하였고, 또 독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이 책이 프랑스 철학을 ‘소개하는 책’이니 만큼, 글을 쓰면서 깊이 있는 철학적 논쟁은 가급적 자제하고, 한 철학자가 지니고 있는 핵심 사상을 중심으로 간략하고 분명하게 즉, 정제된 방식으로 글을 쓰고자 하였다. 고교 졸업생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읽을 수 있도록, 그리고 누구나 편하게 끝까지 읽어 내려갈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책을 읽다가 철학 사전을 뒤적이거나, 인터넷을 검색할 필요가 없도록 용어 설명이나 필요한 정보들은 모두 ‘네르바(부엉이)’라는 도우미를 등장시켜 설명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푸코의 사상에 대해서 의문이 들거나 반론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부분에서도, 역시 네르바를 통해 독자들 대신 질문하게 하고 그에 대해 답변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글을 쓰는 것보다, 출판사와 약속한 분량 ― 자투리 시간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작은 분량 ― 을 맞추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더욱 고민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꼭 필요하지 않는 대부분의 자료들은 간략한 도표로 대신하였다. 총140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아주 작은 책을 출간하고서 한 철학자의 생애나 사상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겸연쩍고 무안한 일이다. 그럼에도 어쩌면 철학을 접해보지 못한 일반인들에게는 오히려 철학에 접근하는 데 보다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하며 소개 글을 쓰기로 하였다.  

 

그의 저작들이 인문학 도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가장 많이 판매된 것을 감안한다면 푸코는 가히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 멤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프랑스 철학을 소개하면서 푸코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사람들에게 ‘푸코’라는 철학자의 이미지는 ‘그의 사상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푸코는 사회학자이자 동시에 철학자이며 또한 정신분석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저작들은 정치, 사회, 의료, 인권, 종교, 가정, 교육, 범죄 등 거의 모든 사회적 이슈들과 밀착해 있으며, 그 내용들은 거의가 자신이 직접 경험하였거나 직접 조사를 하고 수집한 것이다. ‘지식의 고고학’이라는 용어를 스스로 만들만큼 푸코의 학문적 탐구는 과거의 다양한 학문적 자료들을 고고학자가 화석을 탐구하듯이 그렇게 수집하고 분류하고 또 구조지우는 사회학적 방법에 충실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을 논하든지 경험적이고 객관적인 다양한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저작들은 항상 과거에 실제로 발생하였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하는 구체적인 사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분량은 방대하다. 푸코의 사상이 어렵다고 하는 것은 이 같이 방대한 자료들 중에서 ‘푸코만의 고유한 사유’와 그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철학적 메시지’를 간파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즉, 방대한 사회학적 차원의 요소들에서 철학적 요소들을 분리해 낸다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크게 3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은 소위 ‘좌파사상가’로 불리는 그의 삶과 학문에 관련된 인생행로에 관해 그 윤곽을 전체적으로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1장에서는 ― 아직 푸코의 전기가 출간되지 않은 국내의 사정을 감안한다면 ― 질곡이 많았던 그의 젊은 시절과 ‘구조주의’를 창시하여 석학이 되기까지의 그의 삶의 여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푸코는 청소년 시절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매우 힘겹고 불만에 가득한 삶을 살았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푸코가 자신을 이어 의사가 되기를 바랐는데, 후일 ‘폴’이라는 아버지의 성을 버린 것은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 때문이라고 한다. 야생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소년으로 알려졌고, 또 공격적이고 논쟁적이며 동시에 우수에 가득 찬 청년으로 알려진 푸코는 나아가 청년시절 이미 동성애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할 만큼 불행한 나날을 보냈다. 일반인들의 눈에 푸코는 아웃사이드의 인물 그 자체였다. 바로 이러한 점이 천재학교로 알려져 있었고 엘리트들만이 입학할 수 있다는 ‘그랑제꼴’에 입학하였지만 그는 전혀 평범하거나 만족한 삶을 이어갈 수 없었다. 반면 세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푸코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철학공부에 몰두하였다. 그리하여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미 철학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였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었던 『광기의 역사』가 출간되자 그는 이미 학계의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고, 이후 출간된 『말과 사물』은 그를 일약 세계적인 인물로 올려놓았다. 아마도 주어진 비극적 상황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날아오른 의지의 인물이 푸코의 이미지일 것이다.

 

                                                      푸코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석

2장은 ‘구조주의’와 더불어 푸코 사상에서 핵심적인 주제인 ‘해체주의’, ‘광기의 역사’, ‘자아(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 등을 제시하고 있다. 푸코는 니체를 번역하면서 니체에게 많은 영감을 얻었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이 기존의 모든 도덕적 가치들을 무화시키고 새로운 도덕을 세우려는 시도였다면, 푸코는 ‘인간은 없다’는 모토를 내세우며, 새로운 인문학의 가치를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인간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개념이나 진리가 부정된다면(해체주의), 이후 이를 규정하는 것은 한 사회의 구조(구조주의)이다. 그렇기 때문에 푸코는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수용하여야 했던 과거의 일종의 절대적인 진리들을 모두 광기로 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존의 도덕체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꿈꾸었던 위대한 천재들 역시 그 당시 일반인들의 눈에는 ‘광인’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광기의 역사). 그래서 푸코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에 있어서는 오직 자기 스스로만이 결정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3장에서는 푸코의 ‘사회비판철학’과 ‘정치적 영성’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3장의 목적은 일종의 철학자로서의 푸코의 소명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며, 또한 ‘암담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푸코 나름의 답변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푸코의 행위 원칙은 오직 사실이나 진실일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경제, 종교, 성문화, 의료, 권력 등) 거의 모든 사회적 제도나 시스템을 비판하였다. 오직 오류나 잘못에 대한 비판만이 사회를 보다 나은 미래로 데려 갈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치 양떼로부터 떨어져 나온 한 마리 양처럼 지상의 그 어떤 권력이나 영예와도 결탁하지 않았고 오직 자아의 실현과 새로움을 향한 부단한 초월을 감행하였으며, 또 이를 모두에게 주문하였다. 그는 스스로 이를 ‘정치적인 영성(la spiritualité politique)’이라 하였다.

한 사람의 철학자를 ‘좌파’니 ‘우파’니 하는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의 사유의 성격이나 그의 삶의 기질에는 분명 ‘좌우’의 특징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푸코는 순수함을 너머 ‘순결한 좌파 사상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약자들을 위한 정치적 행동주의를 표방하였고, 거짓과 오류 그리고 정의롭지 못한 것, 특히 개개인의 자아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사회 시스템들에 대해서는 강한 우려를 표방하였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글을 쓰는 동안 나에게 큰 도움을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변질되기 이전의 ‘순수한 좌파사상가의 원형’을 혹은 ‘이상적인 좌파 사상가의 모델’을 푸코한테서 발견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다시 말해 ‘무엇’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참된 것’이 중요한 것임을 푸코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작은 분량의 책이지만 이 책을 통해 프랑스 철학의 특징과 푸코의 사상과 정신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이명곤 제주대학교·서양철학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경북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프랑스의 리옹가톨릭대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를 전공, DEA학위를 취득했으며, 파리1대학(판테온 소르본)에서 ‘프랑스 철학사’ 관련 DEA학위를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간학과 영성’에 관한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파리1대학 예술대학에서 조형미술학사 및 석사학위(한국화) 그리고 미학 DEA학위를 취득했으며, 2014년에 영남미술대전의 초대작가(한국화)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토미즘의 생명사상과 영성이론』,  『역사 속의 여성 신비가와 존재의 신비』, 『키르케고르의 《이것이냐 저것이냐》 읽기』, 『종교철학 명상록: 성인들의 눈물』 등이 있으며, 〈편하게 만나는 프랑스 철학〉 시리즈를 집필했다. 역서로는 『자아와 그 운명』, 『진리론』, 『키르케고르: 신앙의 개념』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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