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의 죽음이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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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죽음이 남긴 것들
  • 최정기 전남대·사회학
  • 승인 2021.12.12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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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21년 11월 23일, ‘전두환’이 사망하였다. ‘전두환’이 사망하자,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우리 사회의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에서 나온 말들은 전두환에 대한 비판 일색이었다. 심지어 그가 만들었던 민정당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국민의힘’에서조차 공식적인 조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에 대한 비판의 주된 내용은 그가 1979년 ‘12·12군사반란’ 사건에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에 이르는 기간의 잘못과 재임기간 중의 강권통치를 반성하지 않았다는 데에 맞추어져 있다. 문제는 그의 개인적인 반성이라는 것이다.

우연한 일이지만, ‘전두환’이 사망한 날은 그의 평생 동료이자, 1987년 이후에는 애증의 관계였을 ‘노태우’가 사망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장례 및 상례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똑같이 1980년 전후 쿠데타의 주역이었지만, 가족장으로 치러진 ‘전두환’의 장례는 국장으로 거행된 ‘노태우’의 장례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이와 같이 상이한 장례 절차를 설명하는 사람들의 말은 두 사람 혹은 두 사람의 가족들이 보여준 반성의 차이였다. 역시 문제는 사적인 수준의 반성이었다.

한편 ‘전두환’의 사망 이후 국내·외 언론보도를 보면 호칭에 매우 큰 차이가 발견된다. 한국 언론에서는 ‘전두환’이라는 이름에 ‘씨’나 ‘전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다. YTN, KBS, MBC, 한겨레신문, 경향신문은 ‘전두환 씨’로 쓰고 있고, 그 외 모든 방송과 신문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외국 언론에서는 ‘독재자’ 혹은 ‘광주 학살의 주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남한의 전 군사독재자(Ex-Military Dictator) 전두환’이라고 쓰고 있고, 프랑스24(프랑스의 CNN)에서는 ‘한국의 전 독재자(ex-Dictator) 전두환: 광주의 도살자(the ‘Butcher of Gwangju’)’라는 비교적 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도 ‘전두환 전 군부독재자(Former Military Dictator)’라고 적고 있다.

외국 언론이 역사적 평가에 따른 호칭을 사용한 반면,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평가와 무관하게 ‘전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거나, 어느 정도 부정적인 평가나 법적 결정들을 반영하여 ‘씨’라고 호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교전통을 강조하면서 정명(正名)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 그동안의 진상 규명 작업에 따른 역사적·사회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등 다양한 국가기관의 결정이 이미 있었음에도, ‘전 대통령’, ‘씨’ 등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또 여전히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그를 치켜세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전두환’의 죽음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터져 나온 서로 다른 의견들은 일견 대립적인 것 같지만, 달리 보면 모두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전두환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비판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전두환’이 개인적으로 반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례도 ‘노태우’와 달리 국장으로 할 수 없다고 한다. ‘전두환’의 국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가 대통령이었다는 것, 그가 개인적인 공적이 있다는 것 등을 제시한다. 또 한국 언론들이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사용한 ‘씨’ 혹은 ‘전 대통령’이라는 호칭 역시 역사적이고 사회적 수준의 평가가 아니라 ‘전두환’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모두 우리가 ‘5·18’을 사유하는 태도에 기인한다. 우리는 40년이 지난 현재까지 5·18진상규명에 매달리고 있다. 물론 진상규명은 중요하다. 그런데 진상규명만 하면 되는 것일까? 필자는 ‘5·18’이 1980년 당시의 한국사회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며, 현재의 우리가 반성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는 나침판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의 한국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인 사회였는지, 또 질서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사회였는지 ‘5·18’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국가는 물론이고, 시민사회도 가해자의 일원이었음을 자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5·18’을 개인적인 수준의 반성으로 사유하지 않고,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수준에서 사유해야 하며, 그럴 경우 ‘5·18’은 현재의 우리에게 다양한 상상력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우만(Zygmunt Bauman)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서 홀로코스트가 유대인만의 비극이고, 독일인이 가해자라는 시각을 분명하게 반대하였다. 홀로코스트가 역사의 정상적 흐름을 방해한 단절이며, 문명사회라는 신체에 자란 암이고, 일시적인 광기였다는 기존의 견해를 부정하였다. 그에게 홀로코스트는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창’이었다. 바우만에게 홀로코스트는 합리적인 현대사회에서, 우리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단계에서, 합리성과 현대문명의 집약된 결과로 발생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홀로코스트는 현대 사회와 문명의 문제를 진단하고, 인류가 나아갈 길을 사유할 수 있는 ‘창’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홀로코스트가 현대 문명을 진단하는 창이라면, ‘5·18’은 현대 한국을 진단하는 창인 것이다.

한 가지 불필요한 말을 덧붙이고자 한다. 필자는 사회통합과 국격의 향상을 이야기하면서 ‘전두환’의 국장을 주장하는 일부 정치인들을 보며 ‘5·18’ 국가폭력으로 인한 죽음을 떠올렸다. ‘5·18’ 당시 사망한 민간인 165명 중, 27일 새벽 신군부 반란군의 진압작전 시에 발생한 사망자를 제외하면, 군에서 관리한 시신은 46구였다. 그런데 신군부 반란군은 이들 시신들을 유기 13구(28.3%), 가·암매장 21구(45.7%)로 처리하였다. 군의 관리 하에 있었던 시신들은 죽어서조차 모욕적인 처우를 받은 것이다. 반면에 ‘전두환’은 천수를 누리고,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누가 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최정기 전남대·사회학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로 현재 5·18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전남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기획담당관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주제는 ‘한국에서의 지배와 저항’으로 나환자 통제, 정신과 관련시설, 감옥체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피해, 5·18국가폭력과 저항 등을 연구했다. 주요 저서로는 『감금의 정치』(2005), 『전쟁과 국가폭력』(2012), 『5·18과 이후: 발생, 감응, 확장』(2020)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전남지역의 한국전쟁과 민중의 고통 - ‘정당하지 않은 적’과 경계짓기」(2011), 「대안적 사회구성과 슬로시티운동 비판: 담양군 창평면 슬로시티 사례를 중심으로」(2019), 「5·18국가폭력으로 인한 죽음과 민중항쟁: 5·18당시 장례준비 의식의 의미를 중심으로」(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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