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건 8할이 그대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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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건 8할이 그대들이었습니다
  • 이세원 강릉원주대·사회복지학과
  • 승인 2020.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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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교수 단상]

삼십 대 중반까지만 해도 내 인생은 독야청청의 삶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배워오고 살아가는 것은 나 스스로의 덕분이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마땅한 성과 없이 지지부진한 청년의 삶이 힘들었다. 자만하고 외롭던 날들이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와 몇 번의 인생 고비를 넘기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 덕분에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내 삶의 첫 감사는 가족에게 하고 싶다. 박사학위 취득 후 학회 모임을 다녀와서 “내가 박사로서 벌게 된 첫 소득이야”라고 말하며 토론비 봉투를 남편에게 건넸었다. 남편은 얼마 들어있지도 않은 빨강 봉투를 내게 도로 주지도 그렇다고 가져가지도 못한 채, 생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던 사람이 눈물을 '뱉었다 도로 넣었다'를 반복했다. 우리는 수 초간 아무 말도 없이 봉투만 맞잡고 있었다. 남편은 내가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박사과정을 마치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지방으로 시간강의를 하러 다닌 나의 노고를 알아서였고, 나는 남편이 퇴근 후 육아 출근을 하며 내 빈자리를 채워왔던 수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뿐이랴. 매일 새벽마다 딸을 위해 기도해 주신 친정 엄마, 책값을 지원해 주시고 수 없는 취업 낙방에도 격려해 주셨던 시부모님, 제 몫의 호두과자를 남겨놓았다가 엄마를 주려고 식은 호두과자를 꼭 쥔 채 고속버스 하차장에 나를 마중 나와 주었던 나의 아이들...... 내가 다른 친구들처럼 젊은 나이에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육아와 가족에 대해 내가 짊어지고 있는 부담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던 시절이 너무나 부끄럽다.

학교에서 만났던 인연들, 교수님들과 선후배들 역시 나를 만들고 이끌어주었다. 사회복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교수님들과 학우들은 내가 사회복지학의 끈을 놓지 않으며 학문을 음미하며 궁구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후학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이고 의미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있도록 나에게 시간 강의를 허락해 준 선배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내가 만났던 후학들에게 감사를 하고 싶고, 내가 만날 후학들에게 ‘부디 나를 잘 깨우쳐 달라’고 미리 감사를 하고 싶다. 처음 시간강의를 맡았던 그때에는 내가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마냥 신나기만 해서 ‘내가 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어떻게 가르칠까, 무엇을 가르칠까. 그렇지만 학생들과 함께하는 해를 거듭하면서, 수업은 내가 가르치는 시간이자 배우는 시간이란 것을 몸소 깨치고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Biestek의 사회복지 실천 관계 형성 ‘원칙’을 가르치나, 학생들은 나에게 시시때때로 사람 대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응용’ 할 것을 과제로 준다. 나는 학생들에게 20세기 사회복지 이론을 가르치나, 학생들은 빠른 정보탐색력을 동원해 21세기적 사회이슈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마지막 박사과정 수업을 마치던 날,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휑했었는데 요즘에는 더 많은 스승을 두게 된 셈이다. 흔히 우리 시대를 스승이 없는 시대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이 많은 스승들이 있으니 어찌 아니 감사할 수가 있을까.

나를 키운 건 8할이 주위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이듯이, 나도 우리 학생들의 성장에 있어 한 줌의 따뜻한 햇살이 되고 싶다. 후학들이 세상 저 끝까지 나아가도록 보탬이 되는 훈풍이 되고 싶다.


이세원 강릉원주대·사회복지학과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원과 전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강릉원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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