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알튀세르의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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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알튀세르의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읽기
  • 황재민 한국외대·서양철학
  • 승인 2020.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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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이 읽기_ 『루소 강의』 (루이 알튀세르 지음, 황재민 옮김, 그린비, 2020. 01)
 

최근 번역 출간된 알튀세르의 ≪루소 강의≫는 1972년 2~3월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세 차례에 걸쳐 알튀세르가 행한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관한 강의의 녹음 기록이다. 논술 및 구술로 이뤄지는 교원 자격시험 준비생들을 대상으로 시험 주제가 되는 텍스트에 대한 충실한 해설을 제공하는 것이 주목적인 강의이므로 요새 우리나라 학원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직전 대비 특강’ 정도가 되겠다. 그러니까 현대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의 강의록치고는 어쩌면 시시하게 비춰질 수 있는 작품이다. 예컨대 미셸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록’과는 그 성격과 권위, 심지어 분량 면에서 매우 다른 것 같다. 게다가 철학자 알튀세르의 이름은 대개는 마르크스, 스피노자, 라캉의 이름과 더불어 등장하지 알튀세르와 루소의 조합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낯설다.

일단 강의가 펼쳐진 장소에 주목하자. 알튀세르는 1948년 파리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직후부터 1980년 정신착란 상태에서 자신의 평생의 반려자 엘렌 리트망을 살해한 사건에 이르기까지 30년 넘게 해당 학교에서 재직하면서 철학 분과 수험지도 교수 역할을 지속했다. 이러한 알튀세르의 지도를 거친 이들이 장차 현대 인문사회과학계를 주름 잡을 푸코와 데리다 등의 인물들이다. 20세기 지성사를 수놓는 사건들 가운데 하나로 꼽힐 1965년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의 연이은 출간과 더불어 인식론적 절단, 구조적 인과성, 과잉 규정 등의 개념을 제안하고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고유성을 규명하고자 한 시기에도, 또 1968년 5월 혁명 이후 재생산의 문제 설정에 따라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호명 등의 개념을 제안한 시기에도 알튀세르의 주된 활동은 늘 파리고등사범학교에 붙박이로 지내면서 수험생들이 쓴 글에 대해 첨삭 지도를 하는 것과 ≪루소 강의≫ 같은 철학 강의, 즉 마키아벨리, 말브랑슈, 홉스, 스피노자, 로크, 몽테스키외, 루소, 헤겔, 포이어바흐 등에 대한 강의를 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철학자 알튀세르에게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의 강의는 그 자신의 사고에 대한 실험장이자 제작소였다. 지금에 와서 보면 여러 갈래의 사상들을 낳았다는 것이 분명해진 그런 사유의 현장.

나아가 ≪루소 강의≫가 행해진 1972년이라는 연도에도 주목해 보자. 알튀세르 사상 전개의 가장 큰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는 1980년 사건 이후, 더 정확히는 1990년 그의 사망 이후 사후 출판물들에서야 모습을 드러낸 알튀세르의 ‘마지막’ 철학, 곧 마주침의 유물론 내지 우발성의 유물론을 둘러싼 것이다. 알튀세르가 살아생전에 선보인 철학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듯 보인 까닭이다. 그런데 루소는 알튀세르의 지적 생애 내내 꾸준한 관심 대상이었으므로 알튀세르가 전개한 루소론의 변천을 추적하면 1950~60년대 그가 처음 벌인 문제 제기들의 연속선상에서 우발성의 유물론의 요체를 파악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령 우발성의 유물론의 관점에서 쓰인 것으로 평가되는 알튀세르 유고 가운데 하나인 <마키아벨리와 우리>의 초안은 1972년에 작성된 것인데, ≪루소 강의≫ 바로 직전에 행한 강의가 토대가 된 것이다.

단적으로 알튀세르의 초기와 말년의 사고를 관통하는 관심사는 역사적 인과성의 해명에 놓인다고 말할 수 있다. 우발성의 유물론에 따르면 그러한 해명에서 핵심 테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우연성을 필연성의 양상이나 예외로 사고할 것이 아니라, 필연성을 우연적인 것들의 마주침의 필연적 생성으로 사고해야 한다.” 이는 우선 역사에 관한 목적론적 설명에 대한 근본적 거부를 나타낸다. 역사의 흐름은 불연속이고 무규정이고 예측불허이다. 곧 상황들과 역사적 사건들의 연쇄는 연속적인 것이 아니다. 현재는 미래의 계기들을 포함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사고가 역사를 무질서한 혼돈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미래가 예측불허라 할지라도 사건들의 이어짐은 회고적으로 질서를 부여받고 일정한 필연성 형식에 따라 사고될 수 있다. 필연성은 사태 속에 기입된 것이 아니다. 필연성은 이를테면 존재론적이 아니라 인식론적이다. 필연성은 사태에 대한 우리의 판단 속에 기입된다. 이 인식론적 행위는 사후에 개입한다. 사회형태들의 변화에 따라 그 사회형태들의 균형 및 전복을 규정하는 법칙들도 변화한다.

▲ 루이 알튀세르 (Louis Althusser, 1918~1990)
▲ 루이 알튀세르 (Louis Althusser, 1918~1990)

알튀세르의 ≪루소 강의≫를 읽는다면 위와 같은 역사 개념이 일정 부분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대한 분석에서 도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루소의 출발점 자체가 자신의 선학들이 내놓은 자연상태에 대한 설명에 대한 비판이다. 홉스와 로크는 이미 사회적인 것을 자연상태에 투사한 데 불과하다. 루소는 자연상태를 순수 자연상태, 세계의 청춘기, 전쟁 상태로 세분하면서 각각의 단계를 미래가 내포되지 않은 부동성으로 제시한다. 이 불변성은 힘과 필요의 상호작용으로 설명된다. 인간이 자신의 필요를 충족할 힘을 충분히 가진다면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 현재의 요소들로부터 미래를 야기하는 내적 동역학이나 결정론은 없다. 이행은 갖가지 우연들, 우발적 사건들로 인해 초래된다.

우발성의 유물론에서 제시된 역사적 인과성이 알튀세르 초기의 구조적 인과성과 얼마만큼 닮은 것인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알튀세르가 계몽주의 시대에 역사에 관한 가장 심오한 통찰을 제공한 자로서 루소를 꼽은 것이 벌써 1950년대 중반임을 감안하면, 루소의 역사 개념에 대한 지속적 참조가 알튀세르의 탐구를 추동한 한 축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알튀세르 생전에 출간된 작품 가운데 ≪마르크스를 위하여≫에 포함된 글로서 <피콜로 극단, 베르톨라치와 브레히트>(1962)에 나타난 두 가지 형태의 시간성에 관한 도식이 알튀세르가 루소에 대해 강의하면서 그린 발생의 도식과 놀랄 만큼 닮아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탐구의 실마리를 찾는 것은 어떨까?


황재민 한국외대·서양철학

한국외대 철학과 박사 수료. 푸코-알튀세르의 주체화 양식 연구라는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옮긴 책으로 스튜어트 엘든의 ≪푸코, 권력의 탄생≫(근간), 루이 알튀세르의 ≪재생산을 대하여≫(근간), 제라드 뒤메닐, 미카엘 뢰비, 에마뉘엘 르노의 ≪마르크스를 읽자≫(근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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