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학술기획과 만주…학술사·지식사적 맥락에서 본 ‘만주’ 갈등
상태바
제국의 학술기획과 만주…학술사·지식사적 맥락에서 본 ‘만주’ 갈등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11.08 07: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제국의 학술기획과 만주: 동아시아 근대의 형성과 역사학 1』 | 오병수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272쪽

 

심화되고 있는 동아시아 역사 갈등을 근대학술사 차원에서 조망한 이 책은 동북아역사재단이 2017년부터 ‘동아시아 근대의 형성과 역사학’을 주제로 진행한 공동 연구 결과를 일부 묶은 것이다. 동아시아 역내 현안인 역사·영토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역사 인식이 어떻게 생산, 유통, 소비되는지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서로의 인식 차이를 좁히기 위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근대학술사 차원의 조망을 통해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려는 기초적인 작업이다. 
 

재단은 특히 근대 이래, 열강이 만주에 대한 제국적 지배를 실현하기 위해 근대적 학술 조사와 연구를 통해 어떻게 근대적 시간과 공간을 창안하고 근대 지식으로 재편했는지를 동아시아 근대 학술제도 차원에서 접근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 책은 만주라는 공간을 둘러싼 역사 갈등을 한·중간의 고대사 문제라는 좁은 틀이 아니라, 근대 이래의 지식사적인 맥락으로 보면서 문제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 어떻게 연구를 시작했나

‘과거’는 현재 존재하지는 않지만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를 조망하는 데 불가결한 요소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과거를 모른 채 미래를 전망할 수는 없다. 동아시아의 국제적인 역사 갈등 문제 역시, 각국이 추구하는 미래 전망이 길항拮抗하고 있는 데서 연유하는 문제이다. 즉, 각국이 자국을 중심으로 미래를 전망하며 국민 동원의 이데올로기로서 자국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동북공정’은 그 전형적인 사례였다.

따라서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근대 이래 동아시아 각국이 자국사를 구성해 온 방식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의 근대 역사학이 어떻게 과학적인 방법과 제도를 바탕으로 ‘민족’과 ‘강역’을 창출하고 민족의 내력을 서술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어떻게 세계와 자기의 관계를 상상하고 주변을 타자화하는지 등이 핵심이다. 이 연구는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학술사 맥락에서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굳이 ‘동아시아’와 ‘근대’를 표방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제국과 식민, 침략과 저항으로 얼룩진 동아시아의 근대가 구조적인 연동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동아시아의 근대 역사학이 서구 근대 역사학의 방법과 인식 틀을 수용하여 내면화하는 한편, 그를 통해 자기를 재정립하는 이중적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일본의 역사학, 또는 동양학이라는 것 자체가 서구의 제국주의적 방법과 인식 틀을 내면화하여 주변에 투사하고, 자민족을 중심으로 위계화함으로써 제국적 침략을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자국사를 구축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소위 식민사관이라는 것도, 곧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전용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른바 ‘중화민족’을 창출하고, 청조의 강역을 역사 강역으로 치환하여 자국사 구축을 시도한 중국의 근대 역사학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특히, 한족을 중심으로 강역 내 주변의 제 민족을 위계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을 얼개로 자국사를 구축한 것은 일본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역시 서구에서 기원한 진화론식의 근대적 사유, 조사와 측량 등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였고, 서구의 동방학과 일본식 동양학에 대응하면서 자기 확립의 과정을 거쳤다. 이렇게 구축된 자국사는 항전과 냉전을 계기로 극단적인 대중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오늘날 역사 갈등의 원형을 형성하였다.

이처럼 동아시아에서 근대 역사학의 성립 과정을 성찰하는 것은, 결국 현재의 역사 갈등 현상을 근원적인 맥락에서 사유함으로써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과 같다.

 

                           만주국의 통치 이념과 관료 육성을 목표로 세워진 만주 건국대

▶ 무엇을 연구했나

이 책은 제국의 학술 기획과 제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만주’ 연구를 파악한 것이다. ‘만주’라는 공간은 일찍부터 역사적 고토故土로서 한국인의 역사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이다. 더욱이 적어도, 여진의 흥기 이래 한반도의 안위와 직결된 중요한 지정학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이 역내 국가 간 역사 갈등의 핵심으로 부각되어 있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만주를 둘러싼 이러한 갈등은 20세기 이래 지속되어 온 현상이다. 특히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각 세력은 ‘만주’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각축하며 그에 필요한 각종 학술 기획을 진행하였다. 그들은 만주에 대한 특권적 지배를 전제로 공간을 분할하고, 인종과 민족의 계보를 재구성하면서 자연, 지리, 자원 등에 대한 종합적 지식을 체계화함으로써 지역 공간으로서 만주를 창출하고자 하였다. 

러일전쟁 이후 일제는 이러한 제국적 지식을 전유하면서 정책적 필요성에 따라 만선, 만몽 등 정치적 지리 개념을 창출하고 각종 학술 탐사를 통해 제국적 침략을 정당화하는 ‘지식’을 생산했다. 이러한 작업은 제국적 침략정책을 대행하는 제국 대학 체제의 ‘동양학’의 창출을 통해 구체화됐다. 일본이 대륙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수행한 만선사, 만몽사 연구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이렇게 창출된 근대 지식은 지금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연구하였다. 첫째, 제국帝國의 만주 연구의 ‘지식 정치’적 맥락, 다시 말해 만주라는 공간에 대한 근대 지식의 형성과정과 그 정치적 맥락을 밝히는 것이다. 19세기 말 영국 왕립지리학회의 만주 및 백두산 탐사, 러일전쟁 이후 본격화된 일제의 학술 기획 등은 의도적으로 만주를 중국에서 분리하는 공간 개념을 양산하였고, 이것은 중국의 민족주의를 자극하여 (자국의) ‘변강’과 ‘동북’이라는 개념을 창출하였다. 근대 지식으로서 만주라는 공간이 어떻게 형성, 전유되면서 역사 갈등으로 제기되는지를 분석하였다.

둘째, 일제의 만주 연구를 지속시킨 제도로서 제국대학의 동양학의 창출 과정과 만주 연구를 도쿄제국대학, 만주건국대학, 그리고 경성제국대학 등을 통해 검토하였다. 각 대학이 어떻게 제국적 지배 정책에 조응하여 만주 연구를 수행하였고, 현재도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해명한 것이다.

셋째, 국민국가 건설의 기회를 박탈당함으로써 스스로의 근대 학술 제도를 갖추지 못한 한국의 경우, 즉 한국인의 만주 체험과 기억의 문제를 심층 분석하였다. 1930년대 조선인들은 만주를 민족의 고토이자, 조선의 연장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과 일본이 구축한 이념에 대항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후 ‘복합적 이미지’만 남긴 셈이었다.

 

▶ 무엇을 더 할 것인가

이 연구의 목표는 현재 동아시아 역사 갈등을 동아시아 학술사 차원에서 해명하는 데 있다. 재단은 향후에도 1930년대 이후, 그리고 냉전에 이르기까지 침략과 저항의 역사를 배경으로 동아시아 각국이 구축한 역사학과 자국사 서술을 맥락적으로 분석할 예정이다. 특히, 자국사 구축에 수반하는 학술 정책과 조사 정리, 그리고 서구 제국의 동양학의 재편 등이 관심 대상이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 각국의 근대 역사학에 내장된 이데올로기를 해부하고, 새로운 미래를 전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바람직한 역사학의 방향을 모색할 것이다.

거듭 말하자면, 여진 흥기 이후 만주의 상황은 늘 한국의 운명과 동아시아 판도를 결정해 왔다. 한국 전쟁 당시 군수 기지 역할을 수행했고, 휴전 후에도 가상의 전쟁을 전제로 오랫동안 그 역할이 유지되었다. 만주는 단순한 고토를 넘어서 여전히 중요한 지정학적 공간임을 상징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구상하는 지역 질서를 담보하면서, 만주를 생활공간으로 포섭할 수 있는 인문학적 지역 연구가 절대적인 과제인 셈이다. 역사는 과거이지만 동시에 현재와 미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