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말과 글, 유보된 생각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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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말과 글, 유보된 생각의 시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11.01 0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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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즈, 글쓰기를 배우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구술과 문자에 관한 생각 | 에릭 A. 해블록 지음 | 권루시안 옮김 | 문학동네 | 184쪽

 

구술문화가 문자를 익힐 때 인간의 의식은 어떤 식으로 달라질까? 또 이 새로운 소통 형식은 글의 내용과 의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종이에 인쇄하는 물리적 형태의 발행 방식이 쇠퇴하고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으로 대체되는 오늘날, 인류는 저 옛날 그리스인이 경험한 문자 혁명과 비슷한 차원의 의식변화를 거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 에릭 A. 해블록은 이 책에서 고전 시대에 구술이 문자로 탈바꿈한 것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짚어본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연구의 선구자로 월터 옹의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해블록은 고대 그리스에서 구술문화가 문자문화로 바뀐 과정과 그것이 현대 서양 사상과 사고에 미친 영향을 토대로, 고전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완전히 새로운 모델을 내놓았다. 

이 책은 인간의 의사소통 역사에서 있었던 고비, 즉 그리스 구술성이 그리스 문자성으로 탈바꿈한 때를 하나의 그림으로 통합하여 보여준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 인류사에서 그리스 문학과 그리스 철학은 문자로 적힌 말이 최초로 빚어낸 쌍둥이에 해당하는 활동이다. 그는 이 두 가지가 최초인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둘이 독특한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그리스 문자 혁명이라 불리는 사건의 맥락 안에서 가장 잘 대답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뮤즈’를 이 책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뮤즈는 호메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는 3세기 반이라는 세월 동안 지중해에 살면서 구술-문자 방정식에 관여하게 된 소수 민중의 목소리다.

구술 시대의 표상인 뮤즈는 문자 시대가 시작되면서 곧장 과거의 유물이 되어 역사의 뒷방으로 밀려난 것이 아니다. 뮤즈는 글쓰기를 배웠다. 고대 그리스의 문자 혁명은 혁명이라는 말이 은연중 암시하는 것과는 달리 오랜 기간에 걸쳐 천천히 일어난 일이며,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구술과 문자는 서로 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다. 그렇게 문자가 맡는 역할이 점점 커지면서 뮤즈가 역사학자와 철학자로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인간의 의식 변화가 그 뒤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양 사상에 깊이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그의 구술-문자 방정식을 그리스 시대에 국한시키지 않고 현재까지 확장시킨다. 고래로 인간의 목소리가 지니는 힘의 한계는 물리적으로 그 자리에 있는 청중의 규모로 결정됐다. 그러나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이제는 그 한계가 완전히 사라졌다. 한 번에 한 무리의 청중에게 들려주던 하나의 목소리가 이제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지구 전체 인구를 상대로 들려줄 수 있게 됐다. 이는 문자가 완전히 자리잡은 현대에 구술문화가 부분적으로 부활한 한 가지 예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저자에 의해 구술-문자 방정식은 현대 세계에서 지금도 작용하고 있는 조건이 되었으며, 그의 영향은 인류학, 사회학, 비교문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로 퍼져나가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글은 쓸 줄 아는 사람뿐 아니라 읽을 줄 아는 사람을 전제로 한다. 알파벳이 발명된 뒤에도 한동안은 대중에게 전할 내용을 지을 때 소수에 지나지 않을 독자보다는 절대다수인 청중을 염두에 두고 지었을 것이다. 글은 또 물리적 표면을 필요로 한다. 전하려는 내용이 짧다면 목판이나 석판에 새겨 사람들로 붐비는 곳에 둘 수 있겠지만, 내용이 길면 파피루스나 양피지, 헝겊 등에 작은 글씨로 여러 장에 걸쳐 기록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쓴 글은 동시에 읽을 수 있는 독자 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많은 사람이 읽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광장이나 극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구술로 전달하는 방식에 비해 내용 전달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공터에 모인 수백 명 청중에게 이야기 한 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주는 데는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지만, 같은 내용을 적은 글을 같은 수의 청중이 읽게 하려면 사본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 해도 이야기로 들려줄 때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구술문화가 문자문화로 정착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구술로 전해지던 문학은 점점 문자의 탄생 이후 시대의 모습으로 변화해갔다. 저자가 여러 차례 지적하는 것처럼 구술은 엄밀히 말해 글이 아니므로 근본적으로 문학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구술 사회에 관한 모든 것을 문자 기록을 통해 추적할 수밖에 없는데다, 문자 기록을 오랜 세월 문학으로서 연구 분석하다보니 오늘날에는 그것이 문학이라는 관념으로 단단히 굳어버렸고, 따라서 그 관념을 스스로 의식하고 녹여가며 상상해야만 그 본모습을 제대로 짐작해볼 수 있다. 구술서사시는 원형을 잘 유지하는 편이라고는 해도, 구송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구송시인이 자리나 청중에 따라 의도적으로 다르게 이야기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운율과 내용에 맞는 여러 표현 중 그 순간에 떠오르는 것을 골라 읊는다는 구술 자체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모든 생각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구술 사회를 경험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문자 사회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는 데 필요한 도구도 수단도 이제는 영영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현대는 정보의 홍수 시대다. 문자문화는 종이책이라는 둑을 넘어 인터넷 속에서 가상 발행 형태로 범람하고 있다. 글꼴이나 배경색, 쪽의 크기 등의 설정도 자유롭고, 특정 낱말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시 내용 전체를 살필 필요 없이 검색 한 번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검증되고 확증된 정보에 가까웠던 종이책과는 달리, 인터넷에서 발행된 문서들은 수시로 수정되고, 삭제된다. 가상 발행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편리한 점을 제공하지만, 그 이면에는 발행물이 언제든 바뀌거나 사라질 수 있으며, 미래에 같은 주소에서 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사실 또한 자리잡고 있다.

또한 문자 이외에도 기술의 발전으로 다시 싹트고 있는 청각 정보와 시각 정보 역시 우리의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우리의 눈은 한치 앞만 보지 않으며, 우리의 귀는 주변의 소리만 듣지 않는다. 기술을 도구 삼아 점점 확장되어가는 인식의 지평 속에서 문자는 어떤 식으로 변화해갈지 우리는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문자가 발명되면서 구술은 말을 고정하는 역할을 문자에게 맡기고 오락으로 남았다. 문자가 쓰이기 시작한 뒤로 수천 년 동안 말과 생각은 물리적 형태의 글에 기록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이 역시 흔들리고 있다. 어쩌면 현시대 우리 인류는 저 옛날 그리스인이 경험한 문자 혁명과 비슷한 차원의 의식 변화를 거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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