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대항해 시대’가 있었을 때 중국은 어떤 시대를 주도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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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대항해 시대’가 있었을 때 중국은 어떤 시대를 주도했는가?
  • 조영헌 고려대·동양사
  • 승인 2021.10.1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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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대운하 시대 1415~1784: 중국은 왜 해양 진출을 ‘주저’했는가?』 (조영헌 지음, 민음사, 464쪽, 2021.08)

 

나의 답변은 ‘대운하 시대’이다. 시기적으로는 1415년에서 1784년까지의 370년에 달한다. 명의 영락제에서 청의 건륭제까지 통치 시기에 해당한다. 조선으로는 태종에서 정조까지의 통치 시기에 해당한다. 일본사에서는 무로마치 막부의 아시카가 요시모치에서 에도막부의 도쿠가와 이에하루 쇼군의 통치 시기이다. 한국 학자가 대운하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기존에 흔하게 언급하던 (중국인 중심의) ‘명·청 시대’, (일본인 중심의) ‘근세 시대’, 혹은 (서구인 중심의) ‘초기 근대(early modern)’라는 용어를 대체해보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당시 바다의 패권을 유럽이 잠식하고 있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지만, 유럽만큼 거대한 ‘문명’이자 강력한 세력이었던 중국은 왜 바다로의 진출을 ‘주저’했을까? 해양 진출의 ‘실력’이 없었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송·원 시대 거침없이 해양 진출을 시도했고 1405∼1433년까지 정화의 선단은 거대한 선박을 이끌고 인도양과 아프리카 동부지역까지 수차례 왕래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기에 논쟁이 뜨거웠다. 그 강력한 해양력은 정화의 사망 이후 어디로 사라졌는가? 왜 그렇게 급속하게 해양에 폐쇄적인 국가로 전환되었나?

해묵은 논쟁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각도를 비틀어야 한다. 일단 바다로의 문을 닫았는지 열어놓았는지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고,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정서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일차는 중국의 해안에 살았던 사람들이고 다음은 해양 정책을 결정했던 집권자들의 이해관계다. 그들의 목소리가 늘 일치했던 것이 아니기에 우리에겐 이중의 감수성을 지닌 세심한 경청의 자세가 요구된다. 당시의 맥락 속에서 그들의 정서와 관행을 발견할 수 있다면, 강고했던 19세기 유럽/근대 중심주의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 15∼18세기 중국과 인근 해역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엔 중국 해상(海商)도 있었지만 왜구(倭寇), 유럽 상인과 선교사, 일본 상인, 동남아의 조공단, 그리고 표류민들이 혼재했다. 

 

                                                  대운하 소주 구간<br>
                                                              대운하 소주 구간

물론 이러한 정서와 관행을 꿰뚫는 용어는 중국의 남북을 연결하는 거대한 인공수로 대운하이다. 대운하의 북쪽 끝에 수도 북경이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 끝에 경제·문화의 중심지이자 해안과 접했던 강남(江南)이 존재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북쪽의 정치 중심과 남쪽의 경제 중심이 이렇게 완벽하게 통합된 시기는 이전에도 없었지만 이후에도 없었다. 그랬기에 북경 정부는 대운하를 통해 남쪽의 경제 중심을 원격으로 조정하며 안보(security)와 이윤(profit)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했고(물론 안보 이슈가 늘 이윤 이슈를 압도했지만), 실제 370년 동안 이 체제를 뒤흔들 만큼 강력한 해상세력은 존재하지 못했다.

이 책은 지난 2011년 출간했던 학술서 『대운하와 중국 상인: 회·양 지역 휘주 상인 성장사, 1415-1784』(민음사) 이후 확장된 문제의식과 대중적 글쓰기의 ‘중간’ 결과물이다. ‘중간’이라 함은 확장되는 문제의식과 대중적 완성도에서 모두 ‘중간’ 정도의 성취가 있다고 자평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후에나 나올 ‘대운하’ 3부작의 최종판에서는 더 많은 독서와 토론을 담아 문제의식과 글쓰기에서 완성도가 높은 ‘세계사’ 서술을 선보이고자 한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기에, 그 중간 단계의 성과물을 “중국은 왜 해양 진출을 ‘주저’했는가”라는 부제를 담아 문세(問世)했다.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중에 여섯 분의 길고 짧은 추천사가 있다. 한국에서 출간된 동양사 학술서(정확하게는 ‘대중 학술서’)에 이렇게 추천사를 많이 담은 사례는 보지 못했다. 한국의 출판 현실이 출판사의 엄정한 ‘Peer Review’를 수반하지 않기에 스스로 나보다 한, 두수 위의 선배 학자들에게 추천서를 부탁했다. 물론 추천사라는 전제가 깔려있긴 하지만, 나보다 더 넓고 다양한 관점으로 이번 저술을 평가해주었다. 저자 후기에도 썼지만, 이 여섯 편의 추천사는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선배 연구자들의 바램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다시 몇 문장을 골라 인용하면서, 부끄러운 자기 책 소개와 삼부작 완성을 위한 기억의 발판을 삼고자 한다.

 

                                                                 대운하 항주 구간

무엇보다 이 책은 “20년 가까운 세월 하나의 주제에 대해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이루어낸 값진 성과다. ‘대운하의 시대’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조 교수가 처음일 것이다. 이 용어는 시대를 새롭게 규정하고 분석하여 중국의 근대를 참신한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열쇠다.”(주경철/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대운하라는 주제를 포기하지 않고 20년 가까이 붙잡고 있었기에 ‘대운하 시대’라는 시대 용어(terminology)가 탄생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책은 그동안 “서구 중심주의의 시각에서 쓰인 대항해 시대라는 명명을 대신하여 대운하 시대를 제시한다. 아시아의 바다가 왜 제국의 바다가 되지 못했는가에 대한 답을 내적 필요성에서 찾았다.” 따라서 “근현대 세계사를 보며 아시아는 왜? 중국은 왜? 이런 의문을 한번쯤 품어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강희정/서강대 동아연구소 소정) 그랬으면 좋겠다. 읽어보고 15∼18세기 ‘대운하 시대’스럽지 않은 디테일한 현상을 집어주어도 좋고, 대운하 시대보다 더 적합하고 보편적으로 ‘명·청 시대’라는 중국의 낡은 시간 개념을 포착할 수 있는 거시적인 개념을 제시해주어도 좋겠다. 혹 독자 가운데 “원고를 읽으면서 근대 전환기 서양 중심의 역사 이해를 극복하는 눈부신 빛이 터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고 고백하는 분을 만나다면 지난 10년간의 고통스러운 독서와 집필의 시간은 다 잊혀지고 새로운 고통의 시간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중국을 단 하나의 국가로 파악하기보다는 “유럽에 비견할 수 있는 문명권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실제 규모나 세계사적 영향력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8개의 년도(year)마다 중국의 대운하에 발생했던 작은 에피소드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여 당시 중국의 정세 더 나아가 동시대 대륙 건너편 유럽의 상황을 대조하는 내러티브를 구사했다. 바라건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거미줄 같은 운하망을 타고 차이나를 한껏 누비는 기분”(계승범/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을 누리시길 소망한다. 인문학의 위기라고 불리는 시대 가운데 많은 인문 독자들은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역사 연구 역량, 교양 대중과의 소통 의지, 그리고 어려운 이야기도 평이하게 풀어낼 수 있는 글쓰기 능력 등 삼박자를 갖추”고 있는 “양질의 역사 콘텐츠”를 고대하고 있다. 이 책이 이러한 삼박자를 갖추려고 노력했던 책으로 기억되어 “인문학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희망”(구범진/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이 되기를 소망한다. 난 이 삼박자 가운데 ‘소통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투철한 의지로 한 주제를 20년 동안 붙잡고 새로운 담론을 만들려면 부득불 기존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다. 난 기본적으로 유럽 중심주의적 역사 서술에 반감이 많지만, 중국/중화 중심주의적 서술 역시 경계한다. 다만 시작은 “‘옐로우 차이나(Yellow China))에는 해양문명이 없다’는 세계역사학계 고정관념은 교역과 교류, 조운과 안보라는 대내외적 영역을 포괄한 거시적 조망과 역사적 실상에 대한 저자의 정밀탐사로 여지없이 무너”(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지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21세기 중국의 ‘해양 굴기’는 역사적 근원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독서를 마친 독자들은 나의 생각에 동감하리라 확신한다. 적어도 대운하 시대(1415∼1784)는 아니라는 것을.


조영헌 고려대·동양사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의 방문 학자와 하버드-옌칭 연구소의 방문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홍익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 근세 시대에 대운하에서 활동했던 상인의 흥망성쇠 및 북경 수도론이 주된 연구 주제이고, 앞으로 동아시아의 해양사와 대륙사를 겸비하는 한반도의 역사 관점을 세우는 것에 관심이 있다. 저서로 『대운하와 중국 상인: 회·양 지역 휘주 상인 성장사, 1415~1784』와 『옐로우 퍼시픽: 다중적 근대성과 동아시아』(공저), 『주제로 보는 조선시대 한중관계사』(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하버드 중국사 원·명: 곤경에 빠진 제국』과 『바다에서 본 역사: 개방, 경합, 공생 - 동아시아 700년의 문명 교류사』(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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