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소설, 현대의 대중문화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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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소설, 현대의 대중문화를 만나다
  • 송성욱 가톨릭대학교
  • 승인 2021.10.04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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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고전소설과 대중문화: 조선시대와 현대의 문화 동기화』 (송성욱 지음, 월인, 324쪽, 2021.08)

 

『고전소설과 대중문화』는 한국 고전소설의 현대적 가치에 대한 저자의 오랜 고민과 생각을 풀어낸 책이다. ‘조선시대와 현재의 문화 동기화’라는 부제에서 말하고 있듯이, 조선시대 소설을 현대의 문화와 다양한 측면에서 비교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자는 고도의 첨단 기술과 매체로 인해 어지러울 정도로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이 더욱더 이러한 문제에 몰두하게 되었다. 이에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 소설이 현대의 대중문화와 여러 측면에서 닮아 있다고 규정함과 동시에 TV드라마나 영화에는 조선시대 소설의 구조와 세계관에서 추출되는 한국적 스토리텔링의 속성이 고스란히 잠재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I부에서는 최근의 사회, 문화적 상황을 바라보는 필자의 생각과 고전소설 연구의 관점을 서술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 제기의 역할을 하는 부분으로 논문 형식을 탈피하여 비교적 자유롭게 저자의 생각을 개진하고 있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엽을 동시에 사는 저자의 세대가 누리는 문화는 매순간 놀라움의 연속으로 다가오며, 변화의 속도와 양상, 그것의 파급력이 모두 놀랄 거리 투성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 속에서 변화의 속도는 매체가 변하는 속도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음에 주목하였다. 마치 모바일 전화기와 태블릿 PC, 거실의 TV, 주방의 냉장고가 한꺼번에 동기화되어 있듯이 매체와 문화 역시 동기화되어 있다고 현재의 문화적 현상을 진단하였다. 나아가 넷플릭스(Netflix), 웨이브(wavve)와 같은 OTT, 유튜브(YouTube), 페이스북(Facebook) 등과 같은 매체는 매체이면서 그 자체로 문화이며, 심지어는 새로운 문화 형태를 생산하는 적극적인 기능까지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현대의 문화 현상에 대한 저자의 이러한 시각은 지금 시대의 학생과 고전소설 사이의 거리에 대한 교육적 고민으로 연결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온전히 경험하는 지금 세대에게 고전소설이 어떤 효용적 가치가 있을지에 대한 대학교수로서의 고민이 이 책을 집필하게 한 큰 동기 중의 하나였던 셈이다.  

II부는 I부에서 제기한 전반적인 고민과 문제 의식들을 보다 추상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전소설 자체가 지니고 있는 대중문화적 속성, TV드라마와 고전소설의 유사성, 고전소설의 문화산업적 가치 등을 개념적 측면에서 다루었다. 

대중문화는 대체적으로 정형적이고 유형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고전소설의 특징과 유사하다고 하였다. 또한 대중문화와 고전소설 모두 구술적 사유방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닮아 있다고 했다. 현대 TV드라마와의 비교를 통해서는, 낮은 문화적 위상, 여성 독자(시청자)와의 친연성, 가문과 가족 중심의 공간 설정, 혼인을 둘러싼 부부 갈등 중심의 내용 전개 등에서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된다고 하였다. 이와 아울러 고전소설이 문화산업 특히 이야기 산업의 측면에서 큰 기여를 할 수 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문화산업은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작품의 질이 중요한다. 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는 다양하지만 기본 서사와 핵심 소재가 가장 중요하며, 세계를 지배하는 대중문화 작품 중에는 해당 문명권의 전통 문화에 기반을 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작품들은 타 문명권의 사람에게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발동시킬 수 있는 특수성과 동시에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거론한다. 이러한 사실은 문화 산업 분야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창작 소재의 원천으로 고전소설이 활용될 수 있다는 점과 연계되고 있다. 

III부에서는 II부에서 언급한 다소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을 개별 작품과의 구체적인 비교를 통해 예각화하고 있다. 크게 TV드라마와 영화와 고전소설을 구체적으로 비교하여 그 유사성과 차이점을 드러냈다. 그리고 TV드라마, 영화 모두 외국 작품과 비교하여 한국적 스토리텔링의 특성을 도출하고 있다.  

TV드라마와의 비교에서는 가족 서사를 구성하는 스토리텔링 방법 자체가 조선시대 대하소설과 유사하다고 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가족 서사의 특징은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한·중·일 비교를 통해 한국 스토리텔링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징임을 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전소설의 고유한 특징인 천상과 지상의 이원적 구조를 중심으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도깨비>를 분석하기도 했다. 고전소설, 특히 영웅소설에서는 천상과 지상의 시·공간적 구도가 뚜렷하게 설정되어 있으며, 이 둘의 관계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원리로 작용한다. 이 원리가 현대의 TV드라마에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분석함으로써 고전소설의 이원적 구조를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고자 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정서구조의 한 축으로 이해되는 이 이원적 구조가 현대 대중서사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탐색하고 있다. 

영화와의 비교에서는 서양의 슈퍼히어로 영화, 한국의 천만 관객 영화, 중국의 무협 영화 등을 고전소설과 연계하여 분석하면서 한국적 스토리텔링의 특성을 밝힘과 동시에 고전소설의 현재적 가치에 다시 한번 주목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슈퍼맨>과 같은 서양의 슈퍼히어로 이야기와의 비교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저자는 조선시대 영웅소설만큼은 지금의 슈퍼히어로 영화에 열광하는 세대와 가장 잘 호흡할 수 있는 대상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제를 두고 이 논의를 진행하였다. 지금의 슈퍼히어로만큼이나 환상적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웅소설에 열광했던 조선시대 독자들이, 슈퍼히어로 영화에 열광하는 지금의 관객들과 대비될 수도 있다는 전제이다. 저자는 영웅소설을 듣기 위해 전기수 주변에 모였던 조선시대의 독자들과 <엔드게임>을 보기 위해 영화관에 모이는 지금의 관객들의 모습이 비슷해 보인다고 했다. 이러한 전제를 두고 서양의 슈퍼히어로 이야기와 조선시대 영웅소설을 비교한 결과, 영웅소설과 슈퍼히어로 이야기 사이에는 놀라운 정도의 유사점과 동시에 근본적인 차이도 존재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원적 구조의 측면에서 영웅소설의 천상과 지상의 관계가 슈퍼히어로 이야기에서는 외계와 지구의 관계와 대응된다고 하였다. 이에 영웅소설에서는 지상과 천상의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으로 형상화하려는 한국 특유의 사고 방식을 읽을 수 있다면, 슈퍼히어로 이야기에서는 외계와 지구의 수평적, 현실적 관계를 굳이 수직적 관계로 인식하려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외계인인 슈퍼맨을 신으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다분히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공간 설정, 캐릭터 성격 등의 측면에서 슈퍼히어로 이야기 속에는 영웅소설 여러 편이 한꺼번에 들어가 있다는 분석 결과를 도출하였다. 뿐만 아니라 마블이나 DC의 이야기가 세계관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과 유사한 방식의 세계관 확장 역시 조선시대 영웅소설의 변모 방식과 유사하다고 하였다. 

IV부는 활용의 측면을 다루고 있다. 앞 부분에서 고전소설의 현대적 가치를 논하기 위해 문제 제기, 이론적 탐색, 구체적 논증 등이 있었다면 여기에서는 실제로 고전소설이 어떤 방식으로 현대 문화산업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인지를 제시하려 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고전소설과 대중문화』는 조선시대의 문화 산물인 고전소설이 단지 과거에 존재했던 화석과 같은 죽은 문화물이 아니라 현대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숨 쉬는 우리 이야기 문화의 토대이자 자양임을 다각도에서 밝히고 있는 저서이다. 


송성욱 가톨릭대학교·국문학

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고전소설이 주전공이며, 저서로 〈한국대하소설의 미학〉, 〈조선시대 대하소설의 서사문법과 작가의식〉, 역서로 〈구운몽〉, 〈춘향전〉, 〈사씨남정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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