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법의 역사와 유산을 풀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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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법의 역사와 유산을 풀어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9.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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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역사에서 본 로마법 | 피터 스타인 지음 | 김기창 옮김 | ITTA | 272쪽

 

로마법은 유럽의 법과 정치, 사상과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여러 세기에 걸쳐 ‘유럽 공통의 문화’가 생겨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로마법 연구의 중심지는 시대에 따라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로 이동해왔고, 오랜 역사만큼 연구 문헌의 분량 또한 방대하다. 이 책은 유스티니아누스 법부터 현대 민법전에 이르기까지 2,000년이 넘도록 서양 문화가 발달해온 전 과정을 함께한 로마법의 역사를 간결하고 명료하게 담았다.

이 책의 전반부는 고대 로마법의 성립과 유스티니아누스의 로마법 대전, 기존의 법 전통을 유지하면서 제국 전체에 로마법을 도입하는 과정, 그 사이 지방의 관습과 지역법과의 관계, 중세 시대 로마법의 전승에 있어 교회법의 역할을 소개한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명에 따라 편찬된 법률 문헌은 기원전 500년에서 기원후 550년에 이르는 1,000년의 기간 동안 도시국가에서 제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발달한 법 제도의 발달을 다룬다. 왕정으로 시작해 공화정, 황제의 통치를 거치는 정치 제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본질에 있어서 로마법은 진중함과 항상성을 갖고 전통을 유지해 왔다. ‘법은 영감이 충만한 입법자의 머리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부단한 공조’ 속에서 나온다는 분석처럼 ‘천천히 서두르라festina lente’를 격언 또한 로마인들의 법 인식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중세 시대를 겪으며 유스티니아누스의 법률 문헌을 근거로 한 로마법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상에 따라 다양한 수용 양상을 보인다. 12세기 말, 볼로냐 대학교는 유럽 각지에서 온 수천 명의 법학도들이 출신 국가별로 분반nation하여 원전 텍스트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모의 변론을 훈련하는 장이 마련된 이후, 로마법 텍스트를 토대로 합리적 소송 절차를 도출하고 각 지역의 관습법과 접목하여 유럽 전역에 스며들었다. 유럽 각지에 대학이 설립되고 바르톨루스의 방법론을 채택한 로마법 해석가들이 발전시킨 보편법이 유럽 전역에서 영향력을 획득했다. 하지만 로마법의 권위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법에서 도출되었지만 당시 현안에 대한 해법을 적용해 오며 유스티니아누스 이후 중세 라틴어의 저급함과 원전와 사실에 대한 부정확한 인용 등으로 법률의견선집 텍스트의 결함을 발견했다.

이러한 현황은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들은 원전에 대한 탐구를 자극했다. 안드레아 알치아토Andrea Alciato, 기욤 뷔데Guillaume Budé, 자크 퀴자스Jacques Cujas 등 주석가들과 해석가들에 의해 가려져 있던 로마법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고대법 연구는 프랑스 헌정이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동기에서 비롯되었으나 상관관계를 주목할수록 16세기 사회가 고대 로마 사회와의 격차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로마 시민법의 보편적 유효성을 부정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로마법과 자연법과의 관계는 신대륙 발견과 관련해 새로운 통치 지역을 무주물res nullius로 해석해 최초 점유자가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도미니크회 수도사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Francisco de Vitoria가 1532년에 출간된 《인디오에 관한 강의Relectiones de Indis》라는 저술을 통해 반박하며 촉발되었다. 자연법에 대한 관점은 예수회 수도사 프란시스코 수아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로마법을 종합하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시도를 더욱 발전시켰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는 유럽 국가들의 외교와 관련한 국제법의 발달을 촉구하였고, 알베리코 젠틸리를 시작으로 후고 그로티우스에 이르러 완성된다.

17세기 후반은 17세기 전반 유럽 전역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면서 불편부당한 법에 대한 갈명 속에서 자연법이 성숙할 수 있는 시대적 계기를 마련했다. 자연법과 윤리철학이 하나로 합쳐지는 분위기는 사무엘 푸펜도르프에 의해 독립적인 학문 분야로 인정받으며 《자연법에 따른 인간과 시민의 의무De officio hominis et civis iuxta legem naturalem》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러한 경향으로부터 근대 로마법 연구의 이정표를 세운 루돌프 폰 예링과 베른하르트 빈트샤이트, 20세기 유럽연합법에 이르는 로마법의 영향사를 개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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