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한국외교문서 대일배상요구조서』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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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한국외교문서 대일배상요구조서』 발간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9.12 2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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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자료]
-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의 원점
- 대법원과 달리 1심 잇따라 청구권 원고 패소 판결 속 연구결과 주목

■ 한국외교문서 대일배상요구조서 (한일회담 자료총서 1) | 조윤수 지음 | 김영미·이훈 감수 | 동북아역사재단 | 396쪽

 

대법원과 1심 법원이 강제징용 피해 청구권과 관련해 잇따라 엇갈린 판결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이영호)이 40권으로 예정한 한일회담 자료총서 첫 번째 책으로 '대일배상요구조서'(한일회담 자료총서 1)를 발간했다. 

한일회담 자료총서는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등에서 나타나는 한국과 일본 간 인식 차이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핵심 문서를 알리기 위해 기획됐다.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소송 판결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2021년 6월 7일 서울지방법원은 1965년 한일협정 때문에 원고가 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 제한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두 판결은 한일협정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일 양국 간의 해석 차이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객관적인 자료에 기초하여 한일회담의 전모를 파악하고 핵심쟁점이 어떻게 논의되었는지를 밝히는 한일회담 자료총서 40권을 발간할 예정이다. 이번에 발간된 『한국외교문서 대일배상요구조서』는 첫 번째 성과물이다.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한국 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일본의 불법적인 국권 탈취와 식민지배의 부당성을 밝히고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국주의적 논리가 엄존한 당시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한국 정부는 식민지 피해에 대한 배상요구의 논리를 만들고 일본과 교전국이었음을 밝히고 구체적인 피해 실태를 제시해야 했다.

 

한일 정부는 1951년 10월 국교 정상화를 위한 회담을 시작했고, 중단과 재개를 되풀이한 끝에 1965년 6월 협정에 조인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이 과정에서 한일 정부가 각각 작성한 문서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한국 외교문서를 분류하고 설명을 덧붙인 해제집과 일본 외교문서 목록을 간행했고, 이번에 한일회담 전체상과 주요 쟁점을 소개하는 자료총서를 펴냈다.

한국 정부가 최초로 공식적으로 발표한 대일배상요구는 1949년 3월 15일 『대일배상요구조서 1부: 현물반환요구』다. 9월 1일에는 2부, 3부, 4부를 수록한 『대일배상요구조서(속)』를 발간했다. 1954년에는 이를 한권으로 합쳐 『대일배상요구조서』로 발간했다. 그동안 이 문서의 존재를 아는 연구자도 적었고, 문서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활용도가 매우 낮았다. 『한국외교문서 대일배상요구조서』는 1954년 원문(총 523쪽)을 입력하고 본문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에 설명을 붙여 연구자나 일반인들이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대일배상요구조서』는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가 국제법상 불법이며 부당하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을 들어 준 대법원 판결의 원점이라 할 수 있다. 

“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의 한국지배는 한국 국민의 자유의사에 반한 일본 단독의 강제적 행위로서 정의, 공평, 호혜의 원칙에 입각치 않고 폭력과 탐욕의 지배였던 결과 한국 및 한국인은 일본에 대한 어떤 국가보다 최대의 희생을 당한 피해자이며 ..... 대일배상의 기본 정신은 일본을 징벌하기 위한 보복의 부과가 아니고 희생과 회복을 위한 공정한 권리의 이성적 요구에 있는 것이다” (『대일배상요구조서』 서문)

 

『대일강화조약에 관한 기본태도와 법적 근거』(1951)는 『대일배상요구조서』의 법적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 문서는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불법으로 무효라는 것을 국제법의 논리로 입증하고, 이를 토대로 식민지배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려는 시도였다. 한국정부가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라 철저한 실증과 논리를 토대로 대일배상 문제를 풀어나가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한국병합이 불법이라는 논리의 기원이 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개인 청구권 문제와 관련이 깊은 것은 『대일배상요구조서』의 제2부 확정채권, 제3부 중일전쟁 및 태평양 전쟁에 기인한 인적 물적 피해, 제4부 일본 정부 저가 수탈에 의한 피해다. 청구권 교섭에서보다 피해배상의 범위를 훨씬 넓게 잡고 있다. 개인청구권으로 언급된 군인·군속의 연금뿐 아니라 남한 내 학교시설, 노동력, 생산물 등을 망라하여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의 종교시설인 신사와 방공시설 등은 불필요한 시설이라며 원상 회복비용을 요구하고 있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한국 정부의 대일배상요구가 배상에서 청구권 요구로 바뀌는 것은 미국의 대일배상정책 변화 등 국제적 요인 때문이었다. 한일협정에서 대일배상요구가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발간되는 자료총서에서 구체적으로 밝힐 것이라고 한다.

조윤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자료총서는 동북아역사재단이 2008년부터 진행한 한일회담 외교문서 연구의 결실"이라며 "한일회담과 한일협정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당시 한국 정부가 어떤 국내외적 상황 속에서 교섭을 추진했는지를 기록에 근거해 실증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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