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逆境 극복에 대한 고전의 지혜
상태바
역경逆境 극복에 대한 고전의 지혜
  • 고재석 성균관대·동양철학
  • 승인 2021.09.12 22: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전 칼럼]

물질적으로 궁핍한 경우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아무리 해도 안 되거나, 할 수 없는 객관적인 한계 상황에 처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처지나 환경에 놓이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맹자는 말한다. “生於憂患, 死於安樂.” 근심하고 걱정하는 데에서 살고, 편안해하고 즐거워하는 데에서 죽는다는 의미이다. 만일 生을 ‘사는 길’의 명사로, 於를 ‘~에 있다[在]’는 의미의 동사로 간주하면, 사는 길은 걱정하고 근심하는 데 있고, 죽는 길은 편안해하고 즐거워하는 데 있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편안해하고 즐거워하는 상황은, 누구나 바라는 것일 텐데, 오히려 그것이 좋지 않은 상황으로 변하는 시작이 된다고 말한다. 어떤 일이 잘 되고 있거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상황이 계속되면, 마냥 그럴 것이라 안주하고 어려움을 잊기 때문일 것이다. 상황이 충분히 악화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기업의 경우, 100년 흑자를 내는 세계 일류 기업일지라도, 성공에 취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안락安樂에만 머물고 있다면, 어느 순간 도태되어 미래의 지속가능한 생존은 보장할 수 없다. 물렁한 나이테를 지닌 나무가 조금의 한파에도 견뎌내지 못하듯, 안락 속에 젖어 있으면, 잠시의 역경에도 몰락하기 쉽다. 안락은 죽는 길의 시작이다.

반면 고통스런 상황이 지속되는 우환憂患은 사는 길이 열린다는 신호라고 말한다. 맹자는 하늘이 큰 임무를 어떤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정신을 고통스럽게 하고 육체를 수고롭게 하며 그가 하는 것 모두를 이루어지지 않게 한다고 하였다. 힘든 역경은 내가 보다 의미 있는 역할을 하도록 하늘이 나를 단련시키고 있는 과정이라는 인식이다. 

견뎌내기 힘든 역경을 마주하게 되면, 그것이 나를 단련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온실 속에서 성장하듯 안락한 환경에서 꽃을 피운 사람들도 멋이 있지만, 온갖 비바람과 추위의 역경을 이겨내며 깊이 뿌리내리고 나이테를 단단히 하듯, 자신의 꽃을 피운 사람들도 우리에게 큰 희망과 감동을 준다.

나아가 맹자는 역경 속에서 해야 할 일은 생각의 전환과 함께, 오직 ‘자신이 하지 못하던 것, 부족한 것을 잘 할 수 있도록 보충하고 키워내야 한다.[增益其所不能]’고 말을 덧붙인다.

조선시대 사대부에게 유배는 매우 큰 형벌이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신세 격변을 경험한 대부분의 선비들은 깊은 절망에 빠져 중병에 들거나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그런데 다산 정약용은 18년의 강진 유배기간 동안 정치적 원한을 되갚기 위해 칼을 선택하기보다, 오직 백성을 살리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실학의 정신을 완성하고 경학을 재해석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500여 권의 대작을 남겼다. 또 추사 김정희도 50이 넘은 나이에 정치적 탄압으로 제주도에 10여 년간 유배를 가게 되었지만, 벼루 열두 개를 구멍 내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며 글씨에 정진하여 서예사에 길이 남을 ‘추사체秋史體’를 창조하였다. 


역경에 처해 있는 순간, 보이지 않는 앞날과 힘든 상황에 자포자기하거나, 정당하지 않은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또는 누군가의 도움이나 요행만을 바라기 쉽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해도 되고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속담에 “호랑이가 물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스스로의 힘을 믿고, 부단히 노력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 필요가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위기의 상황을 맞이했을 때, 좌절하고 포기해버린다면 그것은 실패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련이다. 아무리 성공적인 삶을 살고 수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이라고 해도 시련 없이 성공만 해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그들의 성공을 들여다보면 그 사이사이에 시련이 촘촘하게 박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포기하는 순간 실패는 시작된다. 어려움과 맞서 싸워 역경을 극복하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경』에서는 “하늘이 내린 재앙은 어떻게든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은 어떻게 피할 수 없다.[天作孼, 猶可違. 自作孽, 不可活.]”고 하였다. 천재지변은 대비하여 피할 수 있지만, 자신의 부정한 행동으로 발생한 인재人災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생활환경이 어려워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면, 생각의 전환을 해 보자. ‘세상이 나더러 더 많은 존재에게 선한 영향을 펼칠 수 있도록 단련시키고 있는 것이구나.’ 그래서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달이 지며 천지가 성실하게 운행하는 것처럼, 처한 환경에서 내가 해야 할이 무엇인지 살피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어떨까. 역경에 처한 우리에게 세상 탓만 하지 말고,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면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뚜벅뚜벅 성실하게 해 나가는 것이 역경 속에서 꽃을 활짝 피워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맹자는 말하고 있다.


고재석 성균관대·동양철학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학부대학 교수로, 한국동양철학회 편집이사,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주임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학부와 석사를 졸업하고, 북경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역사 속에 전개된 동아시아와 한국 철학사상의 다원적 분기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형 인성교육의 이론과 실제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저서로 <우리들의 세상, 논어로 보다>, 역서로 <중국고대사상문화의 세계>, <상산어록역주(2018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선정)>, <생활과 윤리, 동양윤리와 만나다>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