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교수님…”: 한국에서 대학은 무엇이며, 교수란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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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교수님…”: 한국에서 대학은 무엇이며, 교수란 어떤 존재인가?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8.16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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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대학자치의 역사와 지향Ⅰ& II』 (유원준 지음, 내일의나, 각 666/602쪽, 2020.12)

 

너도나도 고학력자 시대. 그러나 우리는 ‘공부한 보람’을 좀처럼 느끼지 못하며 살아간다. 이럴 거면 대학은 뭐 하러 가느냐는 탄식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의 수많은 교수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교수란 어떤 존재인가? 대학이란 무엇이며, 그 속에서 교수는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대학자치의 역사와 지향』은 유원준 경희대 교수(사학과)가 이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2권으로 출간된 이 책은 총 1천268쪽에 달한다. 유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고대 그리스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적 추적을 통해 한국 대학의 현주소와 교수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쓰디쓴 진단을 내린다.

유 교수는 27년간 교수로 지내면서 교수회와 교수단체 활동을 하며 교수노조를 설립했다. 이때의 경험들을 책 속에 녹여냈다. 유 교수는 대학이 “매우 다양한 요소가 유연하게 연결된 복합체이며 부단한 변화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곳이어서 대학에는 무한한 호환성이 보장되기도 하지만 마디마디 풀기 어려운 매듭도 너무나 많다”고 토로한다. 이처럼 대학을 적확히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교육·입시, 연구·개발, 행정·회계, 인사·조직, 취·창업 등 모든 게 집약된 곳이 대학 아닐까.

professor는 ‘앞’을 뜻하는 ‘pro’와 ‘인정하다·말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fateri가 결합해 ‘공개적으로 선언하다·인정하다·공포하다’라는 뜻의 profiteri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professor는 무엇인가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선언할 수 있는 권위’를 지닌 전문가라는 뜻이다. 이렇게 교수는 다양한 분야에서 정의하는 것을 본업으로 하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대단히 미진하며, 우리나라 대학은 그 존립 근거인 「대학법」조차 없이 70년 동안 운영되어왔다.

4.19혁명시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자”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에 나선 대학교수들

그런데도 대학이 별 탈 없이 운영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이 가장 공인된 신분 상승의 경로였고, 4.19 이후 민주화의 요람이었으며, 경제 발전의 도약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의 열망에 몰두하는 동안 세상은 급변했다. 대학은 그 이후를 고민하지 못했다. 그나마 과잉입시가 대학의 버팀목이었다. 1990년대 신자유주의가 휘몰아치면서 “경영합리화, 경쟁력 강화, 구조조정, CEO형 총장”이 대학의 키워드가 됐다. 

더욱이 2000년대부터 학령인구 감소, 반값 등록금, 재정위기, 지방 소멸, 정원 감축, 비정년트랙 등 더욱 위협적인 단어가 등장하고 일상화되었다. 긍정적 의욕과 모순된 욕망 위에 서 있어야 하는 곳이 바로 대학이란 뜻이다.

지금 대학은 더는 과거의 대학이 아니다. 입학을 위한 경쟁만 치열할 뿐 정작 좁은 문을 뚫고 들어오면 신분 상승의 사다리 기능도, 취업에 관한 보장도 해줄 수 없는 것이 대학의 현주소이다. 거기에 더해진 학령인구의 감소와 재정난, 일상화된 기술혁신과 산업구조의 변화는 대학을 공전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그동안 말만 무성하던 대학의 위기는 2021학년도 입시,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대학의 정원미달이란 전례 없는 모습으로 그 실체를 드러냈다. 이제 대학은 예측할 수 없는 격랑 속을 힘겹게 항해해야만 한다. 이런 상황일수록 자유와 노동의 역사적 진전 속에서 지식노동의 주체로서 교수란 어떤 존재였고, 우리 대학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점검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모르는 이도 없지만, 정작 잘 아는 이도 없는 것이 대학이다. 대학마다 전공마다 너무도 다양한 모습과 색깔을 지니고 있어 대학에 대한 접근이야말로 집단지성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집단지성을 발휘하기 위해서 우선 간략한 안내도라도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근대대학 제도가 도입된 지 100년이 다 되지만 우리 대학사는 2018년도에 겨우 첫선을 보였고, 교수자치와 학문의 자유, 85%나 되는 사학의 형성과정, 계속 쳇바퀴 도는 교육정책, 신자유주의와 준칙주의로 인한 과도한 팽창, 대학에 대한 시장의 지배력 강화, 교육부 폐지론과 그 논란, 입시정책과 교육재정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분석과 대안이 모색되어야 하는 실정이다.

중국사를 전공한 저자는 대학의 보직과 교수의회 및 교수노조 활동 등을 통해 체험하고 고민한 내용을 바탕으로 역사와 철학, 법률과 정책을 오가며 대학의 많은 모습을 분석하고 비교하면서 좋은 시절 무심하게 넘겼던, 그래서 지금은 고질이 된 대학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저자는 무려 40∼50년 전에 작성된 보고서에서 지적한 대학의 문제들이 여전히 현재진행이고, 사유화의 경향은 더욱 심화하고 있는 현실을 통해 우리나라 대학, 특히 사립대학의 본질적 성격과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에 대해 거듭 개탄하고 있다.

 

출범 20년을 맞은 전국교수노동조합이 7월 15일 법적 지위를 위한 설립신고를 마치고 고용노동부 앞에서 전국노동조합 설립 기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전국교수노조 제공

이 책은 대학에 대한 접근을 위한 간략한 안내도의 역할을 기대하며 낸 책이며, 2018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합법화된 교수노동조합(교수노조는 7월 16일 고용노동부로부터 ‘노동조합설립신고증’을 교부받음으로써 20년간의 법외노조를 청산하고 법적 지위를 확약 받았다)이 기존의 노동조합과 다른 독자적이며 합리적인 정체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어떤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할지, 교원노조법에 대한 해석과 함께 다양한 관련 법령, 국제조약 등도 소개하고 있다.

제1장은 자유와 평등의 개념이 어떻게 출현하여 근대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법제화되었으며 그 한계가 무엇인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갈등, 그 해결책으로 출현한 사회법이 인간 존엄의 가치를 뒷받침하기 위해 어떤 개념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먼저 살펴본다. 이를 통해 근대사회를 만든 이상으로서의 자유와 그것을 뒷받침한 현실로서의 노동이 어떻게 길항하였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검토한다. 저자는 낯선 유럽의 법제가 우리의 인식·감각과 무관하게 삶의 아주 내밀한 부분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제2장에서는 지식인의 존재 의미와 양식, 지식노동과 교육의 본질, 나아가 일본과 미국, 우리나라 대학의 구조적 특성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급변하는 시대 환경을 선도할 수 있는 우리 고유의 대학상과 교수상을 수립해야 하는 과제가 밀려있으며, 월급을 받으면서 노동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월급만으로 계산할 수 없는 대단한 학문적 권위가 있어야 한다는 점, 그래서 노동자성을 부정하려면 긍정 이상의 엄청난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동시에 고등교육의 확산과 인터넷의 보급 등에 힘입어 각자 나름의 문화자본을 갖추고 성장할 수 있는 다수의 젊은 지식층에게 교수가 어떤 가치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숙제도 찾아낸다. 아울러 교수는 단기적 성과를 추구하지 않아도 생존이 보장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장기적이고 전체적인 과제에 관심을 가지고 고민해 보는 것도 사회에 대한 나름의 책무일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제3장에서는 독일 근대대학의 출현과 일본의 제국대학 형성, 일본 대학 제도의 갈등과 발전, 대학진학률과 입시, 군사정권과 민주화의 요람으로서 대학의 역할, 대학교육 개혁을 위한 노력과 한계, 대학 재정과 시장의 압력, 교육부와 평가의 문제, 교권의 현실과 과제 등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사립대학은 대략 10년을 주기로 그 모습을 바꿔왔으며 1950년의 한국전쟁, 1960년 4.19, 5.16과 경제성장, 1972년 유신, 1981년 광주, 1993년 문민정부, 1997년의 외환위기, 2008년의 금융위기 등 굵직한 정치적·경제적 격변이 있을 때마다 대학은 그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진통과 성장을 거듭해 왔음을 확인한다.

그리하여 대학사를 통해 우리가 모든 면에서 압축성장을 통해 근대의 길을 열었고, 그 한가운데 교육이 있었다는 사실, 폭발적인 양적 팽창을 통해 경제적 성장과 민주적 발전의 동력을 대학이 제공했다는 사실, 그 과정에서 상아탑이란 선망의 대상이자 우골탑이란 비판의 대상이었다는 사실, 나아가 민주화 이후에 닥친 외부 환경의 급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지금과 같은 전례 없는 축소의 시대를 준비 없이 맞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지난 70년의 대학사에는 우리 현대사의 영욕이 그대로 배어있다는 것이다. 

제4장은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와 현황, 지식노동의 미래, 노동조합의 형태와 현황, 교수노조의 협상과 조정, 구성단체와의 관계를 조망한다. 이를 통해 대학의 위상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는데, 교수들은 기존의 사회적 지위와 권위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교수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대학은 학생의 취업률로 평가받고 있는데, 정작 그들을 가르치는 교수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교수로서의 자유’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밝힌다. 이어 유별나서는 안 될 교수노조가 유별나다고 생각하는 이유, 그리고 그렇게 인식되는 교수노조가 기존의 노동조합과 구분되는 교수노조만의 정체성을 찾으며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관련 법령과 연계해서 검토해 본다.

제5장은 교육에 대한 헌법의 정신은 무엇이며, 고등교육에 대한 법적 기준은 무엇인가 또 교수노조에 관한 법적 근거와 법적 쟁점에 대해 검토해 보면서 우리 교육법의 체계가 매우 혼란스럽고, 내용이 불비함을 거듭 밝히고 있다. 법체계는 독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현실은 미국식 평가체제 속에 살면서 교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유교적인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 나갈 방안은 무엇인지, 호시절에 무심하게 지냈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분석과 대안의 모색, 그리고 실천을 동시에 진행해야만 한다는 쉽지 않은 과제가 있음을 저자는 무겁게 받아들인다.

제6장에서는 교수노조와 관련된 국제협약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가 노동법에 관해서만 갈라파고스 제도인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본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세계적인 보편가치를 실현하고 나라가 창출할 수 있어야 하는데, 50년 전에 합의한 국제협약에 비준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무심함에 저자는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제7장에서는 「교원노조법」의 조문별 내용과 쟁점을 점검해 보았고, 제8장에서는 「교원노조법」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문을 소개했으며, 제9장에서는 현행 「교원노조법」의 문제점과 개정 노력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 유원준 경희대·중국사

경희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대만 중국문화대학 대학원에서 송대사를 전공하고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송원사학회 회장, 경희대 대외협력처장, 문과대학장, 서울캠퍼스 교수의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민인문학강좌의 개설, ‘재소자를 위한 인문학강좌’ 책임자로 활동했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정책위원장과 자문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대학교수노동조합연맹 수석부위원장으로 교수노조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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