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은 포스트휴먼으로의 전환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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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은 포스트휴먼으로의 전환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8.0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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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포스트휴먼의 조건 | 김은주·김재희·유인혁·이광석·이양숙 지음 | 갈무리 | 296쪽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감염병 대유행은 근대적 휴먼 너머의 포스트휴먼으로의 전회를 본격화했다. 팬데믹으로 대면 접촉이 제한되고, 디지털 기술을 통과하는 비대면(언택트) 연결이 대안적 만남과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코로나19는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맺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코로나19 이후 인간은 어떻게 달라질까? 비대면 상황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디지털 매체와 결합하는 강도가 높아진 우리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어떤 포스트휴먼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코로나19는 어떤 포스트휴먼을 탄생시키는가? 팬데믹은 포스트휴먼을 적극적으로 사유할 것을 요청한다.

이 책에 따르면 디지털 매체가 일으킨 가장 큰 변화는 ‘감각’에 있다. 디지털 매체는 기존의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했던 선을 넘어서 인간과 기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형성하는 공감각의 측면을 일으킨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디지털 기기 사용은 인간을 위한 편리의 측면을 넘어서 인간의 존재 양태를 새로운 차원에서 제기한다. 디지털 매체는 “인간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 디지털 매체는 단순히 중개자(intermediary)가 아니라 매개자(mediator)의 역할을 수행하며, 디지털 환경으로 확장되면서 지금까지의 인간과는 다른 차원의 포스트휴먼으로 이행하는 주요한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디지털 매체 이전의 인간과 그 이후의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론적 위상”을 지닌다.

이 책은 매체와 감각의 측면에서 디지털 포스트휴먼의 조건 변화를 (1) 디지털 포스트휴먼 신체성, (2) 디지털 혼합현실과 사이보그, (3) 디지털 감각의 변화와 포스트휴먼 윤리라는 세 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검토하고, 포스트휴먼으로의 존재론적 전환과 윤리적 태도를 탐색하는 시도이다. 특히 신유물론의 관점에서 디지털 포스트휴먼의 조건을 자연/인공 연속체로서의 신체와 관련해서 주요하게 설명한다. 철학, 문학, 미디어학 연구자들이 학제 간의 연구를 넘나들며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서 디지털 포스트휴먼을 이해하고 이로 인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분투기이기도 하다.

디지털과 신체성이라는 말은 언뜻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인다. 포스트휴먼과 신체성 역시 마찬가지인데, 디지털이나 포스트휴먼 같은 낱말은 어떤 가상세계 속에 존재할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의 1부 ‘포스트휴먼 신체와 공생의 거주하기’는 그러한 통념과 거리를 두면서 포스트휴먼적 전회는 오히려 신체성 개념의 갱신을 요청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두 편의 글을 수록했다.

김재희의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 주체가 될 수 있는가?」는 “인간중심적-개체중심적 휴머니즘”을 극복하기 위해서 프랑스 철학자 질베르 시몽동 철학이 제공하는 “개체초월적 인간-기계 앙상블”이 어떤 통찰을 줄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이 글은 “인간 자신에 의한 탈-휴먼화 과정과 기술 매개의 존재론적 진화가 과연 또 다른 소외와 예속화의 길로 나아갈지, 아니면 새로운 휴머니즘을 창출할 주체화의 길로 들어서게 될지”라는 기로에 서있다고 진단한다. 김은주의 「포스트휴먼 신체와 공생의 거주하기」는 포스트휴먼의 신체를 “결합과 변이의 정동을 담아내고 지속하면서 변이하는 정동체”라고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포스트휴먼 신체를 이렇게 이해할 때 그것은 “한 개체로서 존재하기만이 아니라, 개체군으로 존재하는 거주하기의 방식의 모색을 촉구”한다는 점을 밝힌 뒤, 다종적 얽힘을 긍정하는 “공생의 거주하기”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웹소설 혼합현실 서사, 사이보그적 글쓰기, 디지털 도시화 이후 페미니즘 실천에서 무엇을 읽어낼 것인가? 2부 ‘디지털 혼합현실과 사이보그’에 수록된 유인혁의 글 「한국 혼합현실 서사에 나타난 ‘디지털 사이보그’ 표상 연구」는 혼합현실과 사이보그가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빈번히 출현하는 것을 웹소설을 중심으로 분석하면서 “혼합현실의 공간은 현대사회의 대안적 유토피아로, 사이보그는 기존의 사회적 한계를 극복하는 전복적 주체로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이양숙의 「자본주의 리얼리즘 시대의 호모데우스와 사이보그 글쓰기」는 윤이형의 단편소설 「캠프 루비에 있었다」를 중심으로 “사이보그적 글쓰기와 상상력은 과연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효과적인 매체가 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이현재의 「디지털 도시화와 사이보그 페미니즘 정치 분석」은 “디지털 도시화 시대”에 출현한 사이보그-페미니스트의 실천을 검토하면서 “디지털 도시화는 새로운 육체성과 경험의 방식을 낳았고 이러한 새로운 존재론과 인식론에 기반한 디지털 페미니즘은 기존과는 다른 이슈를 제기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 책이 ‘포스트휴먼’이라는 단어로 집약하는 근래의 사회 변화는 다양한 종류의 윤리적 난제들을 동반한다. 3부 ‘디지털 감각의 변화와 포스트휴먼 윤리’에 수록된 이중원의 「포스트휴먼과 관계의 인문학」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인공지능 시대”로 진단하고, “기계의 인간화”와 “인간의 기계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계를 둘러싼 윤리적 문제들에 인문학이 어떻게 응답해야 할 것인지를 질문한다. 

홍남희의 「디지털 포스트휴먼 시대의 윤리」는 비대면 상황에서 소셜미디어 사용 시간이 대폭 증가하면서 혐오 표현, 가짜뉴스 같은 “디지털 쓰레기”의 유통 역시 증가하고 있는 사회적 현상에 개입하는 글이다. 이 글은 “디지털 쓰레기의 생산, 유통, 소비 과정을 둘러싼 인간, 기술 문화의 상호작용을 살펴보면서 ... 팬데믹 이후 디지털 문화의 방향성을 고민한다.” 이광석의 「감염병 재앙 시대 포스트휴먼의 조건」은 인터넷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던 낙관주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현실이 어떤 새로운 ‘예속’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자본주의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사회적 감각을 회복하고 발굴”하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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