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를 넘은 수도권 공화국을 이대로 보고만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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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를 넘은 수도권 공화국을 이대로 보고만 있을 것인가?
  • 남송우 논설고문/부경대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1.07.1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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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우 칼럼]

수도권에 모여 사는 사람 수가 이미 한국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선 지가 제법 되었다. 사람이 집중되니, 경제가 집중되고, 문화적 환경이 집중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덩달아 대학 역시 수도권으로 집중되어 버렸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고등학생들이 수도권 대학과 별 차이가 없는 경쟁력을 가진 지역대학을 선호했다. 지역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인재들이 국가 발전에 나름의 기여도 했다. 그런데 지역에 소재한 대학은 세월이 약이 아니라, 독이 되었는지, 지금 학생들의 수도권 대학진학 선호도는 너무 가파르다. 결과적으로 지역대학의 형편은 갈수록 참담한 실정이다. 이미 예고된 학령인구의 현실적 감소는 지역대학의 붕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대로 흘러간다면, 지역은 대학도, 경제도, 문화도 형해화된 몰골의 상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한 나라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격차는 분명 문제적인 상황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러한 불균형을 빨리 개혁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정부나 수도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역민들의 가슴 아픈 하소연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다. 그 구체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최근에 있었던 이건희 기증관 서울 건립 결정이다.

수도권과 지역 간의 문화 격차가 너무나 심각하여 이 격차를 제대로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지역문화진흥법이다. 지역문화의 진흥을 통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의 문화향유를 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이는 문화기본법에서 강조하고 있는 국민의 문화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문체부는 5년마다 각 지역이 지역문화 진흥계획을 세워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것으로 법은 시행되고 있다. 또 현 정부는 <문화 비전 2030>을 통해 3대 방향과 9대 의제를 발표했다. 이 중 중요한 한 의제가 <지역문화 분권 실현>이다. 이는 그만큼 지역문화진흥을 위해서는 지역문화 분권이 절실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 문체부는 많은 지역에서 요청한 이건희 기증관 설립 요청을 깡그리 무시하고 서울 건립을 발표했다. 발표된 내용을 살펴보면 행정부가 얼마나 중앙집권적이고 반분권적인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건희 기증관' 유치에 나선 지자체의 반발과 관련 "국민의 문화적 향유, 이 가치를 가장 가운데 놨다"며 접근성을 고려해 서울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말은 '이건희 기증관'이 서울에 있어야 모든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모든 국민들이 다 서울에 모여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서울로 결정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수도권 공화국을 위한 문화적 향유를 “국민의 문화적 향유”로 호도하고 있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아직도 지역분권 시대에 이런 생각에 갇혀 있다는 것은 시대착오이다. 한국의 문화시설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해 있는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문체부가 '이건희 기증관'조차도 서울에 두어야 한다는 논리는 공허하다. 수도권 공화국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는 발상이다.

그리고 덧붙여, 공모를 했을 경우에는 각 지자체의 유치경쟁이 심각하여 후유증이 클 것을 염려해서 서울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유치한 판단이다. 성숙한 민주사회란 공정한 절차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는 사회이다. 이 정부가 문화정책의 중요한 하나로 지역문화 분권 실현을 내세워놓고, 또 하나의 중요한 문화시설을 서울에 두게 한다는 것은 문체부 자체의 자가당착이다. 정해놓은 정책을 스스로 뒤집고 있는 것이다. 인구의 수도권 집중으로 이 나라가 이상한 수도권 공화국이 되었는데, 또 하나의 중요한 문화시설을 만들어 지역의 사람들을 수도권으로 불러들이겠다는 발상은 국가의 균형발전은 말뿐이라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또 한 가지 더 지역문화 예술인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위원회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원칙은 연구와 보존 관리였다. 이를 위해서는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의 경험과 인력이 필요하다. 기증품이 서울에 있어야 여러 가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 위원장의 말이다. 이 말속에는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수준은 서울을 따라갈 수 없으니, 서울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는 지역문화 관련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실무자나 연구자들의 수준을 비하하고 있는 발언이다. 지역에도 서울 사는 사람들 이상의 역량과 연구력을 가진 자들이 곳곳에 있다.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연구와 보존관리 능력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된 현실 인식이다. 이것이 수도권에 살고 있는 자들이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점에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은 수모감을 떨치기 힘들다.

더더욱 지역인들을 분노하게 하는 부분은 이 문제에 대해 수도권 언론들은 아무런 비판적인 입장을 내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 언론매체들의 상당수가 비판적 기능을 상실하고, 이미 찌라시 수준으로 전락한 마당에서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수도권 공화국 건설에 일조하면서, 그 열매를 마음껏 향유해 왔으니, 자기성찰의 시선이 제대로 작동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수도권 공화국을 만들어 온 행정부가 이 문제해결을 위한 합리적 방안을 제시하지 아니하면,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지역 시민들의 분노의 목소리는 결코 잦아들지 아니할 것이라는 점이다.  


남송우 논설고문/부경대 명예교수·국문학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로 부산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분에 「윤동주 시에 나타난 자기의 문제」로 당선, 평단에 나왔다. 평론집 『전환기의 삶과 비평』, 『다원적 세상보기』, 『생명과 정신의 시학』, 『대화적 비평론의 모색』, 『비평의 자리 만들기』, 『이것저것 그리고 군더더기』 등이 있다. 부산작가회의 회장,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인본사회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2019 부산시 문화상 문학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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