顯考學生府君神位에 담긴 뜻은?
상태바
顯考學生府君神位에 담긴 뜻은?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06.28 0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56)_ 顯考學生府君神位에 담긴 뜻

나는 어쩐 일인지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역사란 지나간 일 즉 과거지사를 말하며,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을 다루는 게 史學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기록하거나 논의할 수 없다. 사서 편찬자의 판단에 따라 취사선택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주관적 견해가 개입될 소지가 있다. 무엇보다 본래 史란 것이 王事라는 정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민중의 일은 관심 밖의 것이었다.
    
계획대로 하자면 몽골제국을 세운 테무진의 칭호 칭기즈칸에 대해 글을 써야 했다. 그런데 글에도 운명이 있는지, 아침나절 차를 마시며 마음자리를 가다듬으려고 펼친 책장이 칭기즈칸을 밀어내고 ‘顯’이라는 한자를 눈앞에 부각시켰다. 

우리 집에서는 일 년에 祭祀를 여덟 번을 지냈다. 그리고 여기에 설날과 추석 차례를 합치면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조상님들 혼령을 맞아들여 제사를 모신 셈이다. 제사를 지내기 전 제일 먼저 할 일이 청결한 몸과 지극정성의 마음으로 지방을 쓰는 일이다. 그 내용은 단순하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일 경우 顯祖考學生府君神位라고 쓴다. 아래 지방에서 오른쪽 ‘顯祖妣孺人’은 할머니를 나타낸다. 참고로 고조를 옛날에는 현고라고 썼으나 원나라 이후에는 작고하신 아버지의 존칭으로 사용된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顯妣라고 한다.

 

일본어로 축제를 마츠리 또는 마쓰리(祭, まつり)라고 하는데, 주로 신령 등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말한다. 그리고 마츠리(제사)에서 마츠리고토(政治, 政事)가 비롯되었다고 일본학계에서 한자학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선생은 말한다. 일본어 마츠리는 본래는 ‘기다리다’라는 뜻을 지닌 ‘마츠’의 활용형이다. 여기서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름 아닌 신의 顯現이다. 총괄하여 말하자면, 제사나 축제는 제물을 준비하고 음악과 춤으로서 신의 현현을 기다리는 신맞이 의식이다.  

 

顯(나타날 현)이라는 글자에서 왼쪽 윗부분의 날 일(日)은 태양을 가리킨다. 시라카와 선생은 이를 玉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 아랫부분은 실 장식을 나타내는데 일본어로는 시데(垂)라고 한다. 이 시데를 늘어뜨려서 신을 부르는 것이다. 중국이나 한국에서도 玉을 신성한 것으로 간주해서 임금을 용에 비유하듯이 옥으로도 비유한다. 玉座, 玉體, 玉顔, 玉音 등으로 표현한다. 玉을 통해 신을 부르면 신은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었다. 그리고 예의를 갖춰 삼가 절하여 신을 맞이한다는 의미의 글자가 곧 나타날 현이다. 그래서 일본어 ‘마츠리’가 우리말 ‘맞이하다’와 연관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런데 고대 金文을 보면 顯의 윗부분은 구슬 옥(玉)이 아니라 날 일(日)이 맞다. 그리고 오른쪽 부분은 신농씨의 아들 희화 주(羲和 柱)를 나타낸다. 따라서 글자의 해석이 기존 훈고학의 것과 다르다.

 

한편<漢韓大字典>은 顯의 字源과 관련하여 金文은 본래 㬎+見으로 구성되어 태양 밑에서의 실을 뜻했고 낮에 실을 보다라는 뜻에서 ‘밝다, 명백하다’의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見이 頁으로 변형되자 <說文解字>는 頁+㬎(音)으로 보아, 산뜻한 머리꾸미개의 뜻으로 풀이하였다. 

단옥재(段玉裁)는 고문경과 금문경의 顯의 고금자 사용 상황의 차이를 기준으로 두 글자를 고금자로 연결하였다.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第九卷⋅頁部』의 “현(顯)은 반짝이는 머리 장식이다.[현, 두명식야(顯, 頭朙飾也.)]”에 대한 단옥재의 주는 아래와 같다.

현(顯)은 머리장식이다. 그래서 옛글자는 ‘머리 혈(頁)’을 썼다. ‘식(飾)’은 ‘꾸밈’이다. 女部에서 “장(妝), 飾也.(‘妝’은 꾸미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 이 때문이다. ‘반짝이는 머리 장식, 산뜻한 머리꾸미개’란 ‘면변(冕弁)’이나 ‘충이(充耳)’ 같은 것으로, 파생되어 모든 ‘밝은 것’을 가리킨다. 내 생각에 ‘㬎(현)’은 ‘매우 밝음’을 뜻한다. ‘顯’은 본래 주로 ‘머리장식’을 뜻했는데, ‘顯’이 주로 사용되면서 ‘㬎’이 폐기되었다. 日部의 ‘㬎’에 대한 설해에서 고문에서는 (‘㬎’이) ‘顯’의 의미를 나타낸다고 하였다. 지금은 ‘顯’자를 ‘㬎’자 대신 사용하므로 고문에서는 ‘㬎’을 빌려 ‘顯’의 의미를 나타냈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고금 간 글자의 변천으로 깊이 연구해야 하는 부분이다. (문수정, 說文解字注에 나타난 段玉裁의 古今字觀 硏究, 31쪽, 2014)

 

글자도 어렵고 뜻도 어렵다. 새삼 공부는 상당한 끈기와 차분한 관찰이 필요한 일임을 깨닫는다. 다음 제사 때 顯祖考로 시작되는 조부님의 지방을 쓰며 어려운 심사를 토로해볼까 한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