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역사교과서의 근대 서사와 이데올로기 성찰…새로운 역사 인식·서술 위한 대화 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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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역사교과서의 근대 서사와 이데올로기 성찰…새로운 역사 인식·서술 위한 대화 더욱 필요하다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6.2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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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서 스케치]

■ 한중 역사교과서 대화: 근대의 서사와 이데올로기 | 오병수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493쪽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이영호)은 한중 역사 문제를 단순한 한중 양자간의 문제나 고대사의 귀속문제로서가 아니라 자국사를 구성하는 방식과 그에 수반하는 근대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분석함으로써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하고자 노력해 왔다. 현재 중국의 역사교육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고, 그에 따라 역사갈등 역시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새로운 차원의 대화를 모색할 수 있는 대화의 디딤돌을 제공하기 위해 이번에 『한중 역사교과서 대화: 근대의 서사와 이데올로기』를 발간했다. 

 

‘동북공정’으로 불거진 한중 간 역사갈등의 중심에는 늘 그렇듯 왜곡된 역사교과서가 있다. 한국을 중국에 복속한 비자주적 국가로 묘사하거나, 고대 이래로 일본의 영향력하에 있었다든지,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요지이기 때문에 열강에 앞서 장악해야 한다는 식의 서술이 그렇다. 최근엔 그 정도가 더 심해져 한국의 정치제도에서 일상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두 중국 것을 복사했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중국 역사교과서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이미 한중 수교 당시부터 있었다. 그러나 연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동북공정’ 이후였다. 이후 연구는 시종 한중관계의 기복(起伏)과 연동하여 이루어졌다. 분과 학문적 차원보다는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연구의 정당성이 확보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중국 역사교과서 연구는 애초부터 중국에 대한 인식을 반영할 뿐 아니라, 한중관계가 야기한 문제적 상황을 해결하려는 실천적 동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한중 수교 직후 국내 학계에는 미국 주도의 냉전 질서에 대한 비판의 자원으로서 중국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동북공정을 거치면서 중국의 강대국화 경향에 주목하였고, 현재는 중국의 제국화 경향을 논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교과서에 대한 연구 역시 이러한 추이에 조응하여 전개되었다. 당초에는 냉전의 격절을 뛰어넘는 반면교사의 대상으로서 교과서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동북공정 이후 이러한 양상은 크게 변화하였다. 동북공정을 중국의 변강정책의 일부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중국 역사교과서에 대한 분석 역시 한국 관련 서술의 문제점과, 그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해명하는 데 집중하였다. ‘다민족 통일국가’론, ‘중화주의’ 등이 주요한 주제였다. 교과서가 ‘중화민족’의 형성과 발전을 얼개로 한 민족사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당연한 추세였다.

국가간 대화를 통한 해결이 난망한 한중 간 역사문제의 이해를 좁히기 위해 동북아역사재단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과 중국의 역사교육자 간 대화를 모색해왔다. 대화는 한중 역사교과서 갈등이 근대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서술 방식의 차이라는 문제인식에서 출발했다.

이 책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교과서를 중심으로 양국 간 역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단이 주최하고, 양국의 역사교육자들이 참여한 10여 차례의 학술회의 내용 중 일부를 모은 것이다. 회의는 서울과 중국의 도시(상하이, 베이징, 시안, 청두(成都))에서 번갈아 가며 정례적으로 열렸으며, 한국과 중국의 주요 연구자 외에 독일, 영국, 몽골, 베트남 학자들이 참가하기도 했다. 
  
이른바 ‘동북공정’으로 불거진 한중간의 역사문제는 ‘제국’과 ‘식민’의 관계나 전쟁 등 폭력을 동원한 반인도적 가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랜 교류의 역사 과정에서 누적된 인식의 편차에서 기원하며, 특히 근대 국민국가 건설에 동원하는 자국사의 구축 방식에서 연유하는 문제이다. 특히 강국몽에 선제된 제국성을 구현하는 자국사 서술은 지역평화를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역사 교과서는 이러한 역사 인식을 압축적으로 반영할 뿐 아니라, 일상화시키는 중요한 매개이다. 따라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양국 학자들 간의 지속적인 대화가 중요하다. 

지난 수년 간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역사학자와 역사교육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학술적 대화를 진행했다. 이 책은 그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특히 두 나라의 역사 교과서의 근대 서사 방식과 이데올로기를 성찰함으로써 해결의 단서를 찾고자 하였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공존과 상생의 가치에 부합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 인식과 서술을 위한 대화는 더욱 필요하다. 

따라서 역사교육의 일반적 속성, 즉 역사교육은 기본적으로 인권, 자유, 민주, 평화, 번영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고, 그런 가치를 미래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작업이란 점에 동의하는 역사학자, 역사교육자를 중심으로 한국과 중국의 역사교육이 과연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는지, 어떠한 미래 전망을 담보할 수 있는지, 그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양국의 역사 교과서를 통해 검토하고자 했다. 

양국의 학자들은 역사 교과서의 일반 속성과 함께 특히 근대사 서술 및 그에 내재된 근대 이데올로기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교과서 자체가 근대의 산물이며, 근대에 대한 서술 자체가 침략주의를 부추기는 근대주의, 민족주의, 서구 중심주의 등 근대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근대 학제가 도입된 청말부터 시진핑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역사교과서가 구현하는 근대 이데올로기를 계통적으로 해명함으로써 문제의 근원을 인식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총 13편의 관련 논문을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첫째는 민족주의와 역사 교과서의 문제이다. 근대 학교 역사교육은 시종 민족주의를 표방하였다. 중국 역사교과서가 자국사 서술을 통해 이를 어떻게 구현하였고, 어떠한 제도를 토대로 확산하였는지를 살펴보았다. 두 번째 내용은 한중 양국 역사 교과서의 근대 서사 방식과 근대 이데올로기의 구체적인 작용 양상을 분석하는 작업이었다. 특히 역사교과서의 근대사 서술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세 번째 주제는 최근 역사교육 상황의 변화와 그에 대한 교육적 대응 방향에 대한 논의로 구성했다. 

오병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은 중국의 근대 역사학이 자국사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모색된 ‘중화민족’이란 개념은 실제로는 일본 근대가 생산한 근대 지식과 방법을 중국화한 것으로 해석한다. 중국의 근대 역사교과서 체제의 확립과정에서 일본이 미친 영향은 말할 수 없이 크지만, 예컨대 민족사로서 자국사를 구성하는 단일민족 신화 및 건국영웅, 통일영웅 중심의 단일한 서사, 그리고 동아시아 제 종족에 대한 중국 중심의 인식은 명치 일본 사학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결국 ‘중화민족’을 주체로 한 중국 역사교과서 서술은 일제의 근대 사학이 내포한 식민성과 ‘제국성(帝國性)’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으니, 근대 중국의 ‘조선’ 인식 역시 일본 식민사학(植民史學)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즉, 중국의 근대주의 자체가 일본의 영향 속에서 이루어진 만큼 중국 역사교과서 서술 방식과 한국 관련 서술이 이러한 제국성의 연쇄 속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자오야푸 셔우두사대 교수는 중국 역사교육에서 한족주의 중심의 민족주의적 성격을 밝힌다. 특히 난징 국민 정부 수립과 항일전쟁을 계기로 당국 체제 및 전시 동원 체제와 결합, 정치적 동원의 도구로 활용됐다고 지적한다. 이런 역사교육의 국가주의적 성격은 신중국 이후에도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목표와 역사교육을 통해 국민을 동원해야 하는 체제적 특성상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취진은 중국의 근대 교육과 함께 도입된 학교 교실이 민족주의를 확산시킨 제도적 기제였음을 밝힌다. 학생들은 신식 교과서와 출판물, 학교와 도시의 공공장소에서 현대 국가 관념을 체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집단 운동을 펼침으로써 국민 운동의 주체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근대 민족주의 운동은 국민국가 건설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교실의 역사 교육이 현재 역사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시사한다.

중국의 2003년 과정에 따른 고등학교 교과서의 중국 근대사 서술 내용을 정치성과 현대성이란 개념을 통해 검토한 자오야푸의 연구도 눈길을 끈다. 2003년 교과 과정을 소련식 정치 이데올로기 교육식에서 미국의 시민교육 제제로의 이행으로 본 점이다. 그렇다고 정치사상 교육이 약화된 게 아니다. 쟈오야푸는 “학문적, 사상적 내용과 형식적인 관계의 전환 또는 정치성과 현대성의 관계 전환”에 불과하다고 본다. 기술적으로 현대화됐을 뿐 내용은 더욱 정치적이 됐다는 것이다. 쟈오야푸는 학생들에게 가능한 한 폭넓은 역사 해석을 시도하게 하는 것이 정치 교화로부터 역사교육의 독립을 기대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중국의 근대 이후 역사교육이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성격을 띠며,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방편으로 쓰이고 있음에 주목, 중국의 대국화에 따라 더욱 심화될 것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 책은 근대와 민족주의 등 이념 문제를 교과서 서술과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다룬 책이다. 교과서 문제는 결국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올바른 역사교육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그를 구현하기 위한 대화와 공동 연구의 필요성을 숙제로 제기하고 있다. 근대에 대한 성찰을 통해 공존과 상생의 가치에 부합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 인식과 서술을 구체화할 수 있는 실천적 작업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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