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윤리: 존재론적 윤리학의 시도』의 철학적 의의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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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윤리: 존재론적 윤리학의 시도』의 철학적 의의에 대한 단상
  • 한상연 가천대·서양철학
  • 승인 2021.06.2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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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시간과 윤리: 존재론적 윤리학의 시도』 (한상연 지음, 서광사, 468쪽, 2021.05)

『시간과 윤리』의 철학적 의의는 두 가지로 나뉘어 고찰될 수 있다. 첫째, 하이데거 존재론의 한계를 일상세계의 근원적 규범성에 대한 분석과 해명을 통해 존재론적 사유 그 자체 안에서 넘어설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둘째, 하이데거, 슐라이어마허, 사르트르의 철학적 관계를 현상학적 존재론을 키워드로 삼아 구체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20세기 최대의 철학자이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대한 평가는 연구자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하이데거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20세기 철학에 가장 크고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철학자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유감스럽게도 하이데거의 존재론에는 한 가지 커다란 한계가 있다. 인간 현존재의 규범성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해명이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하이데거는 인간 현존재의 존재방식을 두 가지로 나눈다. 일상적이고 비본래적인 자기로서의 존재방식이 그 하나이고, 죽음의 선구성 및 불안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세계와 근원적으로 무-연관적임을 자각함으로써 일상적이고 비본래적인 자기를 자기-아님으로써 부정할 결의로서의 존재방식이 또 다른 하나이다. 주의할 점은 전자가 후자에 의해 완전히 극복되거나 무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보면, 일상성은 그 자체로 현존재의 근원적 존재규정에 속한다. 현존재의 존재 자체가 근원적으로 비본래성과 본래성의 역동적 관계를 통해서만 규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이데거는 일상세계를 주로 도구적 의미연관의 관점에서 해명한다. 그러나 일상세계는 규범적 의미연관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이기도 하다. 물론 원한다면 규범성 역시, 그 가능 근거가 현존재의 마음 씀이라는 점에서, 도구성의 특별한 양태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규범성이란 본래 규범에 대해 현존재가 저항하고 투쟁할 가능성을 함축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규범이란 특정한 행위를 ‘해야 한다’ 혹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하고 현존재에게 명령하는 형식을 띠고 있는 바, 그 까닭은 현존재가 규범에 의해 올바른 것으로서 규정된 삶의 방식을 따르지 않을 가능성을 전제로 규범이 제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존재의 일상성이 근원적으로 규범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현존재의 존재방식이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언급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구조를 지니는 일종의 존재론적 투쟁에 의해 특징되어야 한다는 것이 곧 드러난다. 

우선 현존재는, 현존재의 일상세계에서의 삶을 규제하는 규범이 그 자체로 일상성에 속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본래성을 회복하기 위해 규범에 맞서 투쟁해야 하는 자로 드러난다. 하지만 규범에 맞선 현존재의 투쟁은, 그것이 타자와의 실존론적 관계로부터 유리된 실체적 자아의 망념에 의해 이끌리는 경우, 현존재의 삶을 규제할 규범의 정당성을 밝히 드러내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결국 규범에 맞선 현존재의 존재론적 투쟁은 자신의 존재를 통해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존재의 근원적 전체성 회복을 위한 투쟁일 수밖에 없다. 존재론적으로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는 일상적이고 비본래적인 자기를 자기-아님으로서 부정하는 순간의 자기이다. 현존재의 존재를 규범에 맞선 존재론적 투쟁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경우, 일상적이고 비본래적인 자기를 자기-아님으로서 부정하는 순간의 자기는 구조적으로 중층화되어 있는 자기라는 점이 드러난다. 본래적인 현존재는 일상적인 규범에 순응하는 자기를 자기-아님으로서 부정해야 할 뿐 아니라 실체적 자아의 망념에 의해 이끌리며 규범에 맞서는 자기 또한 자기-아님으로서 부정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자기와 타자 사이의 외적 대립의 관계를 전제로 형성되어 온 일체의 당위적 규범들을 그 근원적 무근거성 가운데서 드러내야 한다.

『시간과 윤리』의 두 번째 학문적 의의, 즉 하이데거, 슐라이어마허, 사르트르의 철학적 관계를 현상학적 존재론을 키워드로 삼아 구체적으로 해명하는 것은 하이데거 연구자들에게 이미 해묵은 과제이기도 하다. 오토 푀겔러, 후고 오트 등 몇몇 저명한 하이데거 연구자들이 이미 수십 년 전에 하이데거 철학의 해석학적 전환이 하이데거의 슐라이어마허 연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이데거 철학의 발전과정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의미가 있는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와 슐라이어마허 사이의 철학적 관계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분석한 저술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필자는 『슐라이어마허의 종교 개념과 하이데거의 초기 철학』이라는 제목의 독일어 박사논문에서 하이데거가 슐라이어마허 연구를 통해 자신이 지향해야 할 철학을 인간 현존재의 실존론적 구조에 대한 현상학적·해석학적 탐구에서 출발하는 존재론으로서 새롭게 재규정하게 되었음을 밝혀내었다.

슐라이어마허의 철학은 그 자체로 하나의 탁월한 현상학적 존재론이다. 아마 하이데거의 제자들 중 가장 유명한 철학자인 가다머의 슐라이어마허 비판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러한 주장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슐라이어마허의 철학과 사르트르의 철학이 선반성적 의식의 관점에서 출발하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철학임을 역설한 만프레드 프랑크 등 이미 몇몇 연구자들이 슐라이어마허 철학의 현상학적 성격을 밝힌 바 있다. 필자는 『공감의 존재론』(세창출판사, 2018)에서 슐라이어마허, 사르트르, 하이데거 사이의 철학적 관계를 상세하게 해명한 바 있으며, 그밖에 많은 논문들을 통해서도 그렇게 했다. 이 세 철학자의 철학은 매우 난해할 뿐 아니라, 각각의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개념 등도 외견상으로는 매우 상이하다. 아마 바로 이러한 이유로 슐라이어마허와 하이데거, 사르트르 사이에 긴밀한 철학적 연관관계가 있음을 직감하고도 구체적인 연구를 수행하지 못한 연구자들이 분명 적지 않을 것이다.

『시간과 윤리』 및 『공감의 존재론』은 철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저술이라 볼 수 있다. 하이데거 존재론의 한계를 일상세계의 근원적 규범성에 대한 분석과 해명을 바탕으로 존재론적 사유 그 자체를 통해 넘어설 가능성을 제시할 뿐 아니라 하이데거와 슐라이어마허, 사르트르 사이의 철학적 연관성 또한 구체적으로 밝힌다. 『시간과 윤리』 및 『공감의 존재론』을 꼼꼼하게 읽고 이해한 연구자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존재론 연구의 지평이 하나 열렸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러한 발견을 통해 존재론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는 개별 연구자들 고유의 해석과 성찰에 달렸다. 필자는 필자의 작업이 연구자들에게 고유하고 혁신적인 연구를 수행할 동기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한상연 가천대·서양철학

독일 보쿰 대학교에서 철학, 역사학, 독문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교에서 철학석사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이데거와 슐라이어마허를 함께 전공했다. 현재 가천대학교에서 예술철학, 문화철학, 종교철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하이데거 연구』 및 『존재론 연구』, 『현대유럽철학연구』 편집이사를 역임했다. 희망철학연구소에서 여러 철학자들과 함께 인문학 살리기, 민주주의교육 등과 관련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그림으로 보는 니체』, 『문학과 살/ 몸 존재론』, 『공감의 존재론』, 『철학을 삼킨 예술』,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 『기쁨과 긍정의 종교』 등이 있고 역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입문』, 그 외 『처음 읽는 중세 철학』, 『세상을 바꾼 철학자들』, 『삐뚤빼뚤 생각해도 괜찮아: 고민하는 10대를 위한 철학 상담소』, 『교육독립선언』 등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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