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권은 인권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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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권은 인권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6.20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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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어, 젠더, 트랜스: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는 퀴어이론, 젠더이론의 시작 | 리키 윌친스 지음 | 시우 옮김 | 오월의봄 | 332쪽

남자 아니면 여자라는 이분법을 퀴어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짓눌러버리는 세계에서 ‘퀴어한’ 세계를 그리는 일은 가능할까? 그 상상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정체성 중심의 권리운동을 젠더 문제로 꿰뚫으며 ‘모두의 젠더 문제’를 외친 트랜스젠더운동가 리키 윌친스가 생생한 경험과 간결하고 쉬운 서술로 안내하는 퀴어이론, 젠더이론 입문서이다. 정체성 중심으로 전개된 20세기 중후반 미국의 여성/동성애자/트랜스젠더 권리운동의 성취와 한계를 짚으며 모두가 맞물린 젠더 문제를 환기하는 데서 시작하는 이 책은 퀴어이론, 젠더이론의 핵심을 다루는 가장 생생하고 간결한 입문서인 동시에, ‘모두를 위한 젠더권운동’이라는 저자의 실천처럼 젠더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모두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비장애인 백인 트랜스섹슈얼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인 저자 리키 윌친스는 젠더 표현과 젠더 정체성에 대한 권리를 특정 정체성의 문제를 넘어 ‘모두의 문제’로 확장하며 사람들을 연결하고자 투쟁해온 사회운동가다. 1952년에 태어나 20세기 중후반 여성/동성애자/트랜스젠더의 권리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시대를 살아온 저자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나뉜 장에서 모두가 맞물린 문제로서의 젠더 문제를 조명했다. 이에 따라 ‘모든 사람을 위한 젠더권(gender rights)’이라는 원칙 아래 1995년 젠더권옹호연대(이하 젠더팩)를 설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젠더 표현과 젠더 정체성에 관한 개인의 권리를 뜻하는 젠더권은 한마디로 “다를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요구다. 젠더권이 인권이자 모두의 문제인 이유다. 남자 아니면 여자로만 나뉘는 젠더 이분법의 세계에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존재, 둘 사이 경계에 위치한 존재, 이쪽과 저쪽을 가로지르는 존재 들은 수많은 문제에 직면한다. 차별과 혐오는 물론이고 건강, 교육, 노동, 주거 등 삶의 기반을 이루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여성,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으로 호명되어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 세 가지 정체성 정치를 관통하는 핵심에 젠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젠더 이분법이 공고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 ‘진짜 여자 같지 않은 여자’ ‘남자가 되려는 여자’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여성혐오, 동성애혐오, 트랜스젠더혐오 어느 하나로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으로 맞물린 차별과 혐오를 마주한다.

저자는 정체성의 이름으로 포착되지 않는 대표적인 존재로서 인터섹스를 이야기하며 정체성 중심으로 전개되는 권리운동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20세기 중후반 정체성 정치가 이뤄낸 성과를 존중하고 환영하면서도, 그 성과를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간과되었던 젠더 문제를 정체성 정치의 한계로 지적하며 새로운 연대의 중심으로 젠더권을 제시한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여성/동성애자/트랜스젠더의 권리운동사를 ‘젠더 문제’로 관통하며 다시 살피고(1부), 젠더이론, 퀴어이론의 기초가 되는 철학자들(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의 작업을 비롯해 의학, 과학, 법학, 역사 등 지식 체계를 지배해온 이분법을 해체한 이론가, 연구자 들을 소개하며(2부), 퀴어이론의 창시자로 꼽히는 주디스 버틀러와 정체성 정치학, 그리고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적 실천으로 저자가 도모했던 젠더권운동을 이야기한다(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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