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님(endonyms)과 엑소님(exonyms), 그리고 扶餘
상태바
엔도님(endonyms)과 엑소님(exonyms), 그리고 扶餘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06.14 0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54)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54)_ 엔도님(endonyms)과 엑소님(exonyms), 그리고 扶餘 

 

“기맹씨소위현자이후락차자야(豈孟氏所謂賢者而後樂此者耶)”
이야말로 맹자가 말한, 어진 자라야만 비로소 이와 같은 것을 즐길 수 있다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맹자 / 신흠

象村 신흠선생의 문집인 『상촌집』 제23권 記 樂民樓記에 맹자 사상의 핵심인 여민동락(與民同樂)에 대한 언급이 있다. 맹자의 민본사상은 백성들과 더불어 즐긴다는 與民樂이며 그 핵심은 義다. 맹자에게 있어 한 국가에서 가장 귀한 존재는 백성이며, 그 다음이 社稷이고 임금은 가장 가벼운 존재다.

행복의 조건이랄 수 있는 樂의 조건은 기본적으로는 독락(獨樂)이다. 현자는 여럿이 함께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누기를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누기를 배워야 한다. 즐거움의 나누기 혹은 즐거움의 공유를 익혀야 한다. 무엇보다 실천해야 한다. 학문의 역할이 바로 이것이다. 무지를 유지로 바꿔 의로운 일을 즐겨 수행하고, 결과를 함께 음미해야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김춘수 詩 ‘꽃’)

나는 이렇게 바꾸어 보았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나는 하나의 꽃이 되었다.”

여기서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것은 이름 없던 존재에게 새롭게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것이거나, 기왕에 있던 이름으로 나를 불렀다는 것일 게다. 하나의 꽃이 되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누가 이름을 부른다고 꽃이 아니던 것이 꽃이 될 리 만무하고, 꽃이 사람의 언어를 알아들을 리도 없다. 그러나 이건 非詩的 딴지걸기이고 시적 해석은 아마도 이럴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누구의 시선이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제사 비로소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다. 그가 나를 바라보며 내 이름을 다정스레 불러주었을 때 마침내 나는 존재의 기쁨을 느낀다.”

그렇다면 존재는 이름으로 드러나는 것인데, 남이 임의로 내게 붙여 부르는 나의 이름을 엑소님이라고 한다. 기실 모든 이름은 주체인 내가 나 스스로 원해서, 내가 나를 가리켜, 내가 부여한 이름인 엔도님이 아니다. 엔도님은 ‘안, 내부’라는 뜻의 그리스어 éndon과 ‘이름’이라는 의미를 지닌 ónoma로 이루어진 용어다.

중국 역사에 위진남북조 시대를 연 북위정권은 탁발선비에 의해 수립되었다. 선비족의 한 부족인 탁발선비를 중국 史書는 삭로(索虜)라 기록했다. 이 부족의 우두머리 탁발도가 모연을 공격하여 대파했다. 모연은 자신의 부락민을 이끌고 서쪽으로 달아나 서역 백란산에 이르러 우전국을 공파하였다. 

慕延을 『十六國春秋』에서는 ‘末利延 말리연’, 『魏書』에서는 ‘慕利延 모리연’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현재 신강 위구르자치구 허텐현 일대에 위치해있던 우전국(于闐國)은 于寘, 于遁, 豁丹, 屈丹, 斡丹, 忽炭, 赫探 등으로도 표기되었다. 정작 于闐 사람들은 카타나(Khatana)라고 했다. 이렇듯 자칭인 엔도님과 바깥사람들이 부르는 타칭, 즉 엑소님은 서로 다르다.

中國은 엔도님이고, China는 엑소님이다. 마찬가지로 니뽄(日本)은 엔도님, Japan은 엑소님이다. 돌궐계의 야쿠트족은 이웃 부족인 에벤키족을 퉁구스라고 부른다. 에벤키는 엔도님이고 퉁구스는 엑소님인 셈이다. 한편 야쿠트족을 부리야트족과 같은 다른 부족들은 사하띠(순록유목민이란 뜻)라고 부른다. 

나는 오래전부터 궁금했다. 백제의 선조가 위구태라는 부여왕이고 성왕 16년(538년) 수도를 사비성으로 옮긴 뒤에는 국호를 남부여라 했으며, 백제의 王姓이 부여씨라 했음에 비추어 백제의 지배집단이 부여계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부여족에 대한 역사기록이 태부족해서 우리는 부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부여에서는 여섯 가축의 이름으로 관명을 지어 馬加, 牛加, 猪加, 狗加가 있는데 諸加는 각각 四出道를 다스린다. 사출도는 많게는 수천 호, 적게는 수백 호에 달했다. 적이 나타나면 제가들은 스스로 나아가 싸웠고 下戶들은 양식과 마실 물을 담당했다는 식의 애매하고 부정확한 기술들이 단편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부여족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일시에 증발할 리 만무하고 어디에선가 유목민으로서의 삶을 영위해 오고 있을 것이다. 단순히 언어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扶餘는 부리(Buri)로 읽어야한다. 그리고 투르크어로 그 말뜻은 늑대다. 과거 유목민들은 동물 이름을 族名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늑대를 의미하는 부리를 족명으로 삼은 것은 강인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바이칼호  /  부리야트족 

러시아와 몽골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바이칼호 일대에는 부리야트족들이 살고 있다. 부리야트는 늑대를 뜻하는 부리와 복수형 어미 –at의 합성어다. 이들의 설화에 의하면 부리야트족은 11개 씨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늘날은 6개 씨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블라가드, 콩고도르, 코리, 에키리드, 사르트울, 송골이 그들이다. 부리야트가 늑대라는 말을 차용한 부족명이듯이 씨족명도 각각을 상징하는 동물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블라가드는 물고기, 콩고도르는 흰 새, 코리는 독수리, 에키리드는 황소라는 식이다. 

부여도 6 가축의 이름으로 관명을 삼았다 했다. 흉노의 부족명도 동물 이름을 사용했다. 몽골도 양, 말, 낙타 등의 동물 이름으로 벼슬아치의 이름을 삼았다. 예를 들어 허니치(和尼齊)는 양을 관장하는 사람, 테무치(特木齊)는 낙타를 관장하는 관리를 가리켰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