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 이준석 대표 등장과 시계 제로의 한국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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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세 이준석 대표 등장과 시계 제로의 한국정치
  •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 승인 2021.06.13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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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칼럼]_ 대학직설

한국 정치판의 대(大)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2017년 불과 5년 전 한국정치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 탄핵과 촛불혁명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견인할 정치적 대전환의 전기가 마련됐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전혀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라는 복병이 튀어나와 우리가 적잖은 세월 민주주의 역사의 경험과 함께 벼린 개혁의 칼날을 다시 칼집에 꽂아야 했다. 그리고 다시금 생활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평범한 일상의 회복을 희구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올 게 왔다. ‘새로운 미래가 온다’는 야당 당사에 걸린 현수막과 함께.
  
평소 직관에 의지하여 글을 쓰지 않는 필자이지만 유독 이번만큼은 드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써 내려가려고 한다.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는 진귀한 사건을 접하고 보니 머리가 띵하고 가슴이 찡하여 달리 글을 쓸 방법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해진 기고일에 맞춰 대충 미리 써둔 초안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 중요한 글감을 그냥 강 건너 불 보듯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는 법, 다소 거칠다 할 수 있는 생각의 모험을 감행하는 쪽으로 급히 마음을 바꾸었다. 

마침 지난 6월 10일은 1987년 6·10민주항쟁 34주년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국민의힘 대표 경선투표 마감일이었다. 투표가 마감되고 발표만 남겨둔 시점, 채널을 돌리는 매체마다 거기 출연한 정치논객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준석 후보의 대표 당선을 예측했고, 역시 이변은 없었다. ‘0선의 정치경력 10년짜리’ 청년 야당 대표가 탄생한 것이다. 지금껏 철옹성 같았던 청년 세대의 정치권 진입장벽을 일거에 무너뜨린 일대 거사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큰일 하셨다. 훌륭하다. 우리 정치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라고 축하 인사를 건넨 것도 다 이런 배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2021년 6월 11일 이준석 대표 당선은 한국정치 대변혁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이 그러하다. 첫째로 그의 당선은 압도적인 ‘민심’이 ‘당심’을 견인한 결과였다. 돌이켜 보니 ‘청년’ 정치인에 대한 국민적 선호는 지난 21대 총선에서 전용기, 용혜인,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김남국, 배현진, 지성호, 김예지 같은 2~30대 ‘젊은’ 의원들이 10여 명이나 당선된 데서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요컨대 이준석의 대표 당선은 그간 축적된 민심 이동의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이 대표의 당선은 최근 기득권화한 ‘586’세대의 민낯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본격화되기 시작한 정치권의 ‘세대교체’ 화두가 현실화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파괴력은 비단 국민의힘에만 한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 정치판이 시계(視界) 제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2022년 3월 9일 20대 대통령 선거가 이제 9개월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현재 민주당의 경우 후보 경선 일정은 불과 3개월 남짓 남았고 국민의힘의 경우는 5개월이 남은 시점이다. 이준석 대표의 등장 이후 기왕에 현행 40세인 대통령 피선거권을 낮추는 원포인트 개헌을 추진하자는 주장까지 거침없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정치상황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현재까지 후보 경선 참여 의사를 밝힌 ‘예비’ 후보들의 입장과 이해득실에도 시시각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참에 그들 중 일부 후보의 기상도를 잠시 예측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싶다. 

현재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달리는 윤석열에게는 비 소식이 당도한 듯하다. 그는 이준석 대표 당선 후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런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올 초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별의 순간을 잡은 것 같다”라는 촌평을 받음과 동시에 상종가를 쳤지만 얼마 전에 “검사가 바로 대통령이 된 경우는 없다”라고 내침을 당했다. 그런데 국민의힘 대표가 된 이준석은 김종인이 원한다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다시 당의 책사로 모시고 싶다는 의사를 계속 표명하고 있다. 그동안 미뤄졌던 본인의 행정소송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윤석열은 며칠 상관으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전·현직 기자를 대변인으로 선임했다. 이를테면 두 대의 대형 ‘스피커’를 장착하여 극단의 여론전을 펼치겠다는 속셈일 텐데 초조함이 묻어나는 대목일 뿐만 아니라 시대의 문법에 역행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당선 바로 다음날 안철수를 만난 이준석이 윤석열에게는 “먼저 만남 청할 계획 없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김종인의 경우는 유월의 녹음만큼이나 푸르고 쾌청한 일기예보이다. 6월 11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준석 대표의 당선을 공언했던 그였다. 우선 두 사람의 각별한 정치 인연은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로 거슬러 올라가니 어느덧 10년이나 되었다. 무엇보다 ‘0선의 정치경력 10년’차인 이준석은 안다. 김종인이 진보적 경제학자이자 정책통이었고 비례대표 5선에다 이 당 저 당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킹메이커’를 하면서 높은 승률을 자랑한 이 시대 최고의 ‘대권 후보 감별사’이며 불과 두 달 전까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4·7 재보궐선거를 압승으로 이끌어 다 죽어가던 정당을 기사회생시킨 미다스의 손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자신도 대표 경선 내내 자문을 받았고 승리했다. 이쯤 되면 자신의 ‘대선 승리’ 공약을 실현하도록 도와줄 적임자로서 김종인 카드의 대체재는 생각조차 필요 없는 것이고, 오히려 “김 전 위원장이 안 오시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이로써 대선 승부사 김종인의 시간은 다시금 연장되었고 또 한번 국민적 기대감을 한 몸에 모으게 되었다.

이재명의 기상도는 무엇일까. 현재까지 반년 이상이나 여권 대선주자 적합도와 선호도에서 독보적 1위를 지켜왔고 전체 순위에서는 윤석열과 1, 2위를 다퉈온 그지만 이준석 당선 이후 기상도가 급격히 흐림으로 넘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는 우선 윤석열의 비 소식과 무관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법조인 대 법조인의 대결 구도상 이재명의 지방단체장 경력이 선거 당일 유권자의 최종선택에서는 훨씬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재명은 톡 쏘는 사이다처럼 속 시원한 언변으로 ‘젊은’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제1야당에 자신과 비슷한 장점을 가진 적수가 나타나 대선판 게임 룰을 완전히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그가 특별히 ‘긴장한’ 이유는 이 85년생 후보가 갑자기 ‘청년바람’을 일으켜 한 달 남짓 사이에 그것을 돌풍으로 바꿔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약속한 대로 ‘혁신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지금 그는 위태로운 정치적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이 대표 당선을 가장 반기는 후보는 아마도 박용진일 것 같다. 그래서 그의 기상도는 맑음이다. 왜냐하면 야당발 ‘청년바람’이 불어 ‘97세대’인 자신이 지난주에 여권 대선주자 3위 진입에 이어 이번 주에도 국무총리와 당 대표 경력의 이낙연 그리고 국회의장과 역시 국무총리를 지낸 정세균을 물리치고 당당히 3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일찌감치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 그는 분명 21대를 겨냥한 몸풀기를 생각했을 터,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이준석 돌풍이 불어 주가를 잔뜩 올려주어 갑자기 ‘뜬’ 가장 행복한 후보인 셈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과는 36세 최연소 당 대표의 등장 말고도 주목할 것이 제법 많다. 우선 선출직 최고위원 5인 중 당선자 3인이 ‘여성’이고 그중 수석이 ‘호남’ 출신이며 이 대표를 포함하여 6인의 평균 나이가 44세라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국회의원 경력이 전무한 당 대표는 말도 안 된다’, ‘여성은 선출직에 약하다’, ‘보수당에 호남 출신은 치명적 약점이다’와 같은 금기사항들이 한꺼번에 와장창 다 깨진 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변화가 우리 정치사에서 보수와 진보의 이미지를 180도 뒤집는 이변을 창출했다. 이것이 10년 전 새누리당이 빨간색을 민주당이 파란색을 선택한 색의 이미지 전치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심원한 한국 정치판의 대변혁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학과장 겸 문화창조대학원 미래시민리더십·거버넌스 전공 주임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주제는 한나 아렌트 정치미학, 시민정치철학,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 패러다임, 한국의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등이다. 저서로 The Political Aesthetics of Hannah Arendt, 역서로 『아렌트와 하이데거』, 『과거와 미래 사이』,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아렌트 읽기』, 『시민사회』,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 『책임과 판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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