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드로, 여성에 대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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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드로, 여성에 대해 말하다
  •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 문학
  • 승인 2021.06.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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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드니 디드로를 18세기 철학자로만 간주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는 계몽 사상가로서 당대의 지식을 집대성한 『백과전서』의 기획자이자 작가이고 미술 비평가로도 활동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인문학자로 평가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 디드로가 들려주는 ‘여성’에 대한 생각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든다. 그는 나이 60에 이르러 「여성에 대하여」(주미사 역, 문학과 지성사)를 기획하였고 여러 번 고쳐 썼다. 디드로는 특히 이 책에서 성과 사랑, 결혼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사를 사회적, 윤리적 문제로 발전시켰다고 하니 18세기 계몽사상가의 여성에 대한 생각이 어떠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싶다.

기왕에 디드로의 개인사에 대해 말했으니 여성에 대한 그의 생각과 태도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아내와 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해 보려한다. 자서전인 『고백』에서 디드로와의 친분을 수없이 언급했을 정도로 그와 ‘절친’인 루소는 “내 여자 친구에 비해 나네트(디드로의 부인)는 성미가 고약하고 상스러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무엇으로도 잘못된 교육을 바로잡을 수 없었지만, 디드로는 그녀와 결혼했다”며 두 사람의 결혼을 우려했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순탄했는지 모르겠지만 부인은 필화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남편을 돌보았고 남편은 병에 걸린 아내를 극진히 간호했다니 적어도 루소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던 셈이다. 특히 디드로의 연보를 보면 딸의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에게 장서를 팔고 또 그녀에게 받은 하사금을 딸을 위해 썼다니 가정적인 아버지의 면모를 짐작게 한다.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

「여성에 대하여」에 나타나 있는 디드로의 여성관은 18세기는 물론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앞선 시각을 보여준다. 그의 글은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인 장 토마의 「여성에 관한 소고」를 읽고 ‘나라면 이렇게 쓰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디드로는 “여성에 대하여 쓸 때는 무지개에 펜을 적시고 나비의 날개 가루를 흩뿌려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여성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섬세한 존재로서 공정하게 이해할 것을 주문한다. 그가 「여성에 대하여」에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세 가지 이야기는 ‘여성성’과 ‘성과 결혼’, ‘사회적 지위’로 요약된다. 

우선 디드로가 생각하는 여성은 대단히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존재이다. 용기 있는 여성도 사랑의 정열과 질투, 모성애, 미신과 관련된 일에는 마음이 흔들린다. 또한 속을 알 수 없으며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여성은 열정을 가장하기도 하고 그것을 인위적으로 경험하기도 하지만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다. 디드로는 여성이 어느 정도로 감정적인 존재인지 말하기 위해,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여자에게 의사가 그러면 노화가 빨리 온다고 조언하자 금세 병이 나았다는 사례를 들기도 한다. 그 밖에 “남성이 힘으로 얻는 것을 여성은 유혹과 계략으로 얻는다”든지 “단 한 번만 열정에 사로잡혔던 여자보다는 아무런 열정도 못 느껴본 여자를 찾는 게 쉽다”라는 생각 등은 디드로가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적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

반면에 여성의 결혼생활에 대한 디드로의 생각은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결혼은 딸들을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 같지만 또 다른 통제로 들어가게 한다. 여성은 임신의 고통, 출산과 육아에 따른 노화와 우울, 남편의 무관심과 아이들의 배신을 겪게 마련이며 신앙 말고는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비록 인디언 여성의 사례를 들고 있지만, 여성은 농사는 물론 가사노동에 시달리고 가정 폭력과 남편의 외도로 고통을 겪다가 차라리 태어나자마자 죽기를 원할 정도로 고통 속에 있음을 인지하며 여성을 위한 입법권이라도 행사하고 싶다고 말한다.

디도로가 생각하는 여성의 지위는 문명국에서는 ‘종속’이고 야만국에서는 ‘억압’일 정도로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그는 여전히 원시 사회를 예로 들고 있지만,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조건의 차이가 ‘불평등의 기원’이 되는데 여성은 남성에게 보호를 받는 대신에 복종을 강요당하고 ‘바깥일’에 비해 ‘가사노동’은 하찮은 것으로 치부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디드로는 ‘정숙한 여인과 부정한 여인밖에 없었던’ 아버지 시대를 그리워하는 듯한 시각을 이 책 곳곳에 남겨두고 있다. 그것이 18세기 계몽사상가의 한계이든 남성적 시각의 한계이든 여성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시각은 오늘날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다만 여성의 ‘현모양처’로서의 역할을 강조한 루소나 18세기의 다른 철학자들의 생각에 견주어 보면 디드로의 여성에 대한 입장은 진보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이해와 공감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 문학

건양대학교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서울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브리꼴레르 학부 학부장과 박범신 문학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란 무엇인가』, 『투르니에 소설의 사실과 신화』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살로메』, 『춤추는 휠체어』, 『까미유의 동물 블로그』,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칸트 편』, 『데카르트의 사악한 정령-데카르트 편』, 『녹색 광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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