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제의 민주화…경제적 불평등·침체·소외에 대한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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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경제의 민주화…경제적 불평등·침체·소외에 대한 해답
  • 이재승 건국대학교·법학
  • 승인 2021.05.3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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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지식경제의 도래: 경제의 혁신과 사회적 포용을 위하여』 (로베르토 M. 웅거 지음, 이재승 옮김, 다른백년, 384쪽, 2021.05)

웅거는 브라질 정치명문가의 후예로서 1947년에 태어나 29세에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의 종신교수가 되었다. 웅거는 대학원생 시절에 ‘비판법학’이라는 학파를 창시하였으며 대안적 법과 대안적 사회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다. 웅거는 브라질 현실정치에도 깊이 관여해왔으며 노동자당 집권기에 장기계획부 장관직을 두 차례나 역임하였다. 웅거는 급진민주주의자, 자유사회주의자, 민주적 실험주의자로 불린다. 보통 사람들의 역량강화, 경제주체로서의 자력갱생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그를 사민주의 혁신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식경제의 도래>는 2017년 5월 웅거가 경제개발협력기구 컨퍼런스 룸에서 수행한 특별강연을 2019년 버소출판사가 펴낸 책이다. 웅거는 지식경제라는 주제로 국제무대에서 여러 차례 강연하였다. 지식경제라는 개념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일상화되었지만 이 개념도 30여 년 전 후기자본주의의 특징을 다룬 피터 드러커의 저작에서 이미 제시되었다. 오늘날 시중에 출간된 지식경제 저작들은 대체로 지식경제의 특성을 논하거나 미래에 전도유망한 산업이나 기술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러한 지식경제론은 인적 투자의 필요성을 적절하게 강조하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승자독식론이나 선도자필승론을 퍼뜨려 보통사람들을 무기력 상태에 빠뜨리기도 한다. 다행스럽게 웅거의 논의는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지 않는다. 웅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제민주화 방안을 모색하고 그 유력한 방편으로서 포용적 지식경제 또는 포용적 전위주의를 제시한다. 

웅거는 지식경제야말로 경제적 불평등, 경제적 침체, 소외에 대한 해답이라고 본다. 물론 지금 지식경제는 특정한 산업분야에서 특정한 기업에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또한 자본가들, 지식경제의 핵심과 이너 서클에 일하는 엘리트 노동자들이 수익의 알짜배기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대다수 인류는 자본과 지식, 기술도 없이 사양길에 접어든 대량생산 제조업과 중소기업, 가족기업에서 가까스로 호구지책을 마련하고 있다. 웅거는 이러한 고립적 지식경제, 고립적 전위주의에서 포용적 지식경제, 포용적 전위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강조한다. 지식경제를 심화하고 지식경제를 경제 전반에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생산문화에서 혁신과 협동을 장려하고, 교육방식과 내용을 혁신하며, 노동법, 재산법, 지식재산법, 재산권, 회사법을 변형하여 사유재산과 더불어 사회적 재산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웅거는 현재 제도 안에서 시작하여 이 제도를 점차 이탈해 새로운 제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영구혁신의 경로이다.

웅거의 대안적 경제정책을 간단히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시장경제를 기본구조로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정치적 좌파나 우파의 노선은 대체로 간명하다. 우파의 경제개혁담론은 기성구조를 그대로 두고 자유의 이름 아래 규제완화, 기업가의 자유를 강조한다. 정치적 좌파나 사민주의는 기성구조를 그대로 두고 평등의 이름으로 누진과세로 경제적 성과를 재분배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정치적 선택은 이와 같은 시장주의와 재분배주의 사이에서 규칙적으로 왕래한다. 물론 그사이에 통제하기 어려운 국제적인 경기순환이 끼어든다. 웅거는 정치적 좌·우파 모두 경제적 불평등이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보통사람들의 역량을 사장시킨다고 지적한다. 웅거는 특히 사민주의적 재분배주의에 맞서 생산주의를 주장한다. 경제적 성과를 누진세를 통해 재분배하는 것이 사민주의적 스타일이라면 웅거의 생산주의는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1차적인 생산경제에 참여하게 하여 경제적 자립의 기반을 형성해주는 것이다. 경제적 위기가 없는 경우에도 지속적인 제도 쇄신을 제안한다.

원저자 웅거와 원서

웅거는 자유나 평등 대신에 위대함을 표방한다. ‘선남선녀의 위대함(greatness of ordinary men and women)’이다. 모든 아동들을 예언가로 간주하고 백과사전적 암기가 아니라 혁신적이고 변증적인 교육을 시행하고,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생산적 자원을 제공하여 생산경제에서 인생의 실험을 하도록 허용하고, 가족으로부터 상속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사회상속계좌를 개설하여 생의 전환점에서 목돈을 제공하고, 제도개혁에 우호적인 태도를 갖도록 기본소득을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결국 모든 활동능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다. 웅거는 노동자가 영구히 노동자로 남는다는 전제를 수용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임노동자의 지위에서 벗어나 자유노동의 고차적인 형식으로서 독립소생산자와 협동기업의 지분소유자로 변모해야 한다. 웅거가 제안한 선남선녀의 재능이 완전히 실현되는 경제는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온갖 꽃들이 만발한다는 의미에서 화엄의 경제라고 부를 수 있겠다. 웅거는 이 책의 서문과 결론에서 포용적 전위주의를 우리 모두가 더욱 원대한 존재로 함께 성장하려는 기획으로 다룬다. 웅거의 경제사상에는 물질적인 관심뿐만 아니라 영적인 관심도 작동한다. 기성제도를 운명으로 간주하고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탕진시키는 경제나 정치는 인간성에 대한 모욕이다. 

시장제도를 바꾸기 위해 웅거가 중시하는 재산권 관념은 주목할 만하다. 오늘날 지배적인 재산권 관념은 특정한 재산에 대해 이해관계를 갖는 다양한 사람들을 배제하고 소유자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통일적인 재산권 관념이다. 그러나 웅거는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서 재산의 다양한 기능이나 권능에 맞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분산적 재산권 관념을 부각한다. 이러한 분산적 재산권 관념은 플랫폼 기업의 재산평가와 이용자들의 권리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지식재산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웅거는 카피 레프트가 장차의 기술혁신에 유해하다고 보면서 혁신자를 보호하는 지식재산권은 필요하다고 전제한다. 다만 지식경제의 확산을 위해서 지식재산권자에게 절대적 지위를 보장하는 지식재산권제도의 격을 낮추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웅거는 혁신기술을 생산에 널리 이용하게 하고 대신에 기술을 사용하여 발생한 세수의 일정율을 혁신가에 제공하는 방안이나 기술혁신의 신규성 정도와 창의성을 전문가위원회(신탁기구)를 통해 정확하게 평가하여 공동저작자의 비례적 지분을 인정하거나 특허의 존속기간을 다양하게 결정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혁신적인 기술이나 지식도 사회의 자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주류경제학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웅거는 수요와 공급의 상호조정에 대한 신고전학파적 가정을 거부한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고, 수요도 공급을 창출하지 못한다. 주류경제학이 말하는 수요공급의 균형은 고작해야 낮은 수준의 시장균형에 지나지 않는다. 케인즈의 이론도 수요부족이라는 특수한 국면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 사이에는 영구적인 불균형이 존재한다. 웅거는 경제생활에서의 불균형이 영구적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을 영구적 불균형perpetual disequilibrium 이론이라고 부른다. 웅거는 영구적 불균형에 대해서는 집단적 기획과 지속적인 프로그램으로만 대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기획과 프로그램의 핵심은 지식경제의 심화와 확산, 그리고 경제적·비경제적 제도의 영구혁신이라고 주장한다. 


이재승 건국대학교·법학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법철학, 법사상사, 인권법, 이행기 정의 등을 강의한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를 기반으로 연구 활동을 수행해 왔으며, 국가폭력의 청산과 사회민주주의의 혁신을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법사상사』,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 『고통의 공감과 연대』, 『세월호 이후의 사회과학』, 『트라우마로 읽는 대한민국』,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등이 있으며 칼 야스퍼스의 『죄의 문제』를 비롯해 로베르토 웅거의 『비판법학운동』,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저서 『국가범죄』로 제5회 임종국 학술상(2011)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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