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스핀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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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스핀을 읽다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5.3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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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 과학 리포트]_[말랑과학] 어머 이건 알아야해

이번 ‘스핀 아트’ 미술공모전의 주제는 양자역학에 나오는 스핀입니다. 양자역학은 세상 모든 물질을 이루는 원자나 분자 보다도 더 작은 세상을 다루는 학문인데요, 이렇게 작은 세상에서는 초현실적인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그중 스핀이란 특정 원자의 질량과 같이 고유 특성 중 하나로, ‘불연속성’, ‘중첩’, ‘얽힘’이라는 독특한 성질들이 있습니다. 이를 예술로 표현해보고자 본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시각적인 언어로 소통하는 예술인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핀의 성질을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 비유해 설명합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실제 작품 의도와는 무관할 수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스핀 모식도. 업(up) 스핀과 다운(down) 스핀에 따라 성질(에너지 상태, +½혹은 -½로 표현)이 다르고, 이때 회전축과 회전 방향이 반대다.

안녕? 나는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스핀이야. 나는 입자들의 자기적 성질을 결정하는 물리량이야. 물리량은 질량이나 속도 같은 “값”인데, 전자와 양성자 안에서 나는 아주 작은 자석이랑 비슷해. 내가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그 물체의 자성이 달라지거든.

사람들은 내가 한 축을 따라 빙빙 돌고 있다고 생각해서 스핀(spin)이라고 부르고, 북극과 남극을 잇는 축을 따라 자전하는 지구에 비유하곤 해. 하지만 나는 지구보다 훨씬 작은 곳에서만 존재해. 지구를 사과만큼 줄일 때, 지구에 놓여있던 사과를 같은 비율로 줄인 게 바로 내가 사는 세상이랄까.

이토록 작은 곳에서는 보통 세계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많이 생겨. 마치 꿈의 세계나 무의식을 흥미롭게 탐구했던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 세계 같지.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로 내 소개를 이어가 볼게.

르네 마그리트 <백지위임장> (1965)

불연속성 : 어쩌면 세상은 시계 초침처럼 움직일지도

마그리트의 <백지위임장>을 자세히 보면 말 탄 여인의 형상이 중간중간 잘려 있어. 흔히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말 탄 여인의 이미지는 잘린 부분 없이 이어져 있잖아? 그것처럼 인간이 사는 세계에서 질량이나 속도 같은 여러 값들은 연속적으로 존재하지만, 입자만큼 작은 세계에서 스핀 같은 어떤 물리량은 이 그림처럼 불연속적으로 존재해.

​아주 작은 세계에서 입자들의 에너지가 양자화 되어있어. 원래 정해져 있는 에너지 값만 골라 가질 수 있다는 뜻이야. 비유하자면 평소 나는 차분한 상태로 있다가 에너지를 받으면 점점 신나는 상태로 올라가는데,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정해져 있는 거야. 이렇게 어떤 특정한 계단으로만 올라갈 수 있는 양자화 규칙을 가지는 입자 친구들을 ‘양자’라고 불러. 대부분의 양자가 스핀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의 양자화 규칙을 스핀으로 설명해 볼게. 양자가 어떤 에너지 계단 값을 가지고 있는지는 양자 속 스핀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달라. 스핀은 두 종류가 있는데, ½, 등 반정수의 스핀 값을 가지거나 0,1,2 등 정수 배의 스핀 값을 가질 수 있어. 예를 들어, 빛의 입자인 광자는 스핀 값이 1이야. 이때 스핀 값에 따라 갈 수 있는 에너지 계단도 달라져. 스핀 값이 ½인 전자는 -½(다운 스핀) 또는 +½(업 스핀)으로 표현되는 두 개의 에너지 계단으로 갈 수 있지. 그리고 에너지 계단 차이에 해당하는 크기의 에너지를 받거나 내보내면서 계단 사이를 오르내릴 수 있어. 이렇게 스핀들이 따르는 양자화 규칙을 포함해서 양자들이 작동하는 법칙들을 정리한 학문이 바로 양자역학이야.

앞에서 내가 아주 작은 자석이라고 소개했지? 스핀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얘기는 자석의 종류도 달라진다는 의미야. 앞서 소개한 스핀 ½ 상태로 다음 그림에서 에너지 계단들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볼게.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
르네 마그리트 <인간의 조건 2> (1935)
르네 마그리트 <헤지테이션 왈츠> (1950)

중첩 : 나는 낮과 밤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어

낮과 밤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상을 상상해본 적이 있어?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에서는 빛이 있어서 밝은 낮과 빛이 없어서 어두운 밤이 동시에 존재해. 내가 사는 양자의 세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 양자의 각기 다른 상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거든.

​만약 내가 -½(다운 스핀)과 +½(업 스핀)인 두 가지 계단으로만 갈 수 있는 “스핀 ½ 상태”라고 해보자. 그림에 낮의 밝은 상태와 밤의 어두운 상태가 동시에 그려져 있는 것처럼, 나도 서로 다른 두 상태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거야.

​오해하지 마! 낮과 밤을 합쳐서 해 질 무렵 같은 애매한 상태에 있다는 게 아니라, 서로 양자화 되어 구별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두 가지 상태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거야. 이것은 양자의 세계와 사람이 사는 보통의 세계가 다른 점이기 때문에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어. 그럴 때는 낮과 밤이 구별되어 있으면서도 함께 그려져 있는 마그리트의 그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확률로 표현하자면 나의 절반(50%)은 한 상태에 있고 나머지 절반(50%)은 다른 상태에 동시에 존재하는 거지. 이게 바로 양자의 ‘중첩’이라는 성질이야.

​얽힘 : 하나를 알면 나머지도 자연스레 알 수 있어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2>는 어떤 게 풍경이고 어떤 게 그림인지, 캔버스 모양을 한 구멍으로 풍경이 비치는 건지 혹은 이 모든 것이 그냥 그림일 뿐인지 구분할 수 없어. 바다와 캔버스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수평선을 보면 서로 다른 두 공간이 연결돼 보이지.

​만약 캔버스의 바다에 파도가 친다면 굳이 확인하지 않더라도 문 밖의 바다에도 파도가 치고 있을 거라고 예측할 수 있어. 양자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상태를 ‘얽힘’이라고 불러.

​내가 다른 스핀과 얽혔다고 해보자. 얽힌다는 건 나와 친구가 정보를 공유한다는 말과 같아. 그래서 누군가 내 상태를 알면 바로 나와 얽혀 있는 스핀의 상태도 알 수 있지.

​그러면 정말 미묘한 일이 벌어져. 나와 내 친구 사이의 거리가 아주 멀어서 우주 반대편에 있더라도 내가 가진 정보를 들키면 내 친구가 가진 정보도 들켜버리는 거야. 마그리트 그림에서 캔버스와 바다의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한쪽에서 파도 치면 다른 쪽도 파도 칠 거라고 예상하듯이 말이야. 신기하지? 사람이 사는 보통의 세계라면 우주 반대편에 있는 정보를 알아내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말야.

​이런 특성 덕분에 스핀을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어. 0과 1이라는 숫자를 이용해 컴퓨터에 수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것처럼, 스핀도 아주 작은 자석으로 잘 활용하면 정보 저장소로 쓸 수 있거든. 그런데 스핀들이 얽히면 정보를 공유하게 되니까, 엄청나게 빠른 통신체계나 컴퓨터를 만들 수 있게 돼. 양자암호, 양자컴퓨터, 양자전송 같은 기술이지.

​환경에 따라 변신도 가능!

스핀인 내가 양자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좀 더 말해줄게. 마그리트의 <헤지테이션 왈츠>에는 가면을 쓴 사과들이 있어. 가면을 쓴 사과들이라니! 말하고 보니 사과가 꼭 사람 얼굴 같아 보이네. 심지어 눈, 코, 입도 없는데 뭔가 진지한 표정을 가진 것 같기도 해. 사과에 그냥 가면만 씌웠을 뿐인데, 일반적으로 아는 사과와 굉장히 다른 느낌이 들지?

​그건 어떤 대상을 판단할 때 주위 환경도 함께 고려하기 때문이야. 가면이 없었다면 책상 위에 놓인 평범한 사과처럼 보였을지도 몰라. 결국 사과를 둘러싼 가면이라는 효과가 사과에 대한 인상을 새롭게 결정한 셈이지.

​사실 스핀도 마찬가지야. 나는 혼자 있기도 하지만 내 주위 환경과도 상호작용을 많이 해. 그래서 때로는 환경이 바뀌면 내 성질이 달라지기도 해. 그림 속의 사과처럼 무대 위에서 춤추고 있는 스핀을 상상해봐(스핀이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쉬울 거야!). 내 춤의 종류는 무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거야. 다른 스핀과 함께 춘다면 전혀 다른 춤을 추기도 하겠지. 하지만 이런 환경이 사라지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 나는 혼자 있기도 하지만 내가 서 있는 표면이나 다른 스핀과의 상호작용 같은 양자역학적 환경의 영향도 받기 때문이야.

스핀이 만드는 새로운 일상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평소에 접하기 힘든, 굉장히 새롭고 낯선 느낌을 줘. 사람들은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는 마그리트의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마주하며 평소에 접하지 못한 걸 감각하거나 현실의 이면을 발견하기도 하지. 내가 사는 양자역학 세계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이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자연 법칙이 이 작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

​양자의 발견은 기존의 물리적 세계관을 완전히 무너뜨릴 정도로 충격적이었어. 이후 앞서 이야기한 불연속성, 중첩, 얽힘 말고도 더 많은 신기한 성질들이 있다는 게 밝혀졌지.

​너무 작고 낯설어 사람과는 동떨어진 세상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우리 스핀들은 생각보다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 있어. 빛, 원자로 이뤄진 모든 물체, 눈 앞의 스마트폰, 멀리는 양자컴퓨터 같은 기기들까지. 사람들이 벌써 양자역학, 그 중에서도 특히 스핀이라는 값을 이용해 많은 것을 하고 있거든.

​양자역학은 더 이상 충격적이고 낯선 이야기가 아니야. 사람들이 사는 세계의 새로운 일상이 되고 있어. 세상을 바꾸는 양자역학과 그 안의 스핀에 대해, 함께 더 알아가보지 않을래?

 

필자: 김진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QNS) 연구원·이화여자대학교 석박사통합과정

[출처]  IBS(기초과학연구원) 블로그 | [말랑과학] 어머 이건 알아야해 |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스핀을 읽다 | 2021.4.29
https://blog.naver.com/ibs_official/22232726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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