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의 姓氏에 남겨진 황금민족 스키타이의 흔적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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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의 姓氏에 남겨진 황금민족 스키타이의 흔적 I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05.0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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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49)_ 러시아인의 姓氏에 남겨진 황금민족 스키타이의 흔적 I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49)_ 러시아인의 姓氏에 남겨진 황금민족 스키타이의 흔적 I

Whatever you can do, or dream you can, begin it.
Boldness has genius, power and magic in it. - 괴테

                                           

2012년, 우크라이나에 간 건 겨울 추위가 거의 다 간 2월 말이었다. 국명을 영어로는 유크레인이라 하고, 우크라이나어로는 우크라이나라고 하는 이 동유럽 국가는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큰 나라다. 북쪽에 백러시아라고 번역되는 벨라루스가 있고, 서로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루마니아와 몰도바가 있고, 러시아는 북동에서 동쪽 방향에 위치해 있다.

곧 꽃피는 춘삼월이 찾아올 것이었지만, 러시아의 다른 도시들도 그렇듯 수도 키예프의 날씨는 상당히 추웠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고속 주행 지하철이었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뒤를 이어 세 번째로 건설된 ‘키이프 메트로’는 총연장 67.56km 거리에 걸친 52개 역 통과시간이 불과 41.98분인 쾌속 질주 열차다. 이 키이프 메트로에 지상으로부터의 거리가 무려 105.5m인 아르센날나 역이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깊은 지하철역이다.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방공호 역할을 할 지하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깊이 땅을 팠을 것이다.

드네프르강을 끼고 발전한 키예프 일대에 처음부터 정착민이 살았던 건 아니다. 철기 시대에 이 땅의 주인은 키메리언, 스키타이, 사르마트인 등 주로 말 유목민들이었다. 기원전 700~200년 사이 이 지역은 스키티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스키타이 왕국의 일부였다. 

기원전 6세기 초부터 티라스, 올빙, 케로소네수스 등 고대 그리스, 로마, 비잔틴 제국의 식민지들이 흑해 북동 해안 지역에 건설되기 시작해 기원후 6세기까지 번성했다. 황금 민족으로 알려진 스키타이인들의 생활 무대가 스키티아라는 이름의 광대한 초원이 되고 이들 유목민이 중앙유라시아 초원지역의 맹주 노릇을 하던 기원전 2세기 무렵 파미르 고원 일대에는 중국 측의 사서에 색종(塞種)이라 기록된 유목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 사이 흑해 북부와 돈강 주변 초원지대로 고트족이 들어왔다가 370년대 동방에서 온 훈족에게 밀려 서쪽으로 쫓겨가면서 이른바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역사가 전개된다.  

무슨 일이든 다 까닭이 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음이다. 인명, 지명, 국명, 종족명 등 명칭 분석도 그런 바탕 위에 이루어진다. 연해주의 우리 동포들을 카레이스키라 부르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살고 있는 우리 동족을 고려인, 중국 동북삼성 지역에 뿌리를 내린 한국인을 조선족이라 칭하는데 이런 일에도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변화와 같은 요인이 작용한다.

루스케(러시아인)는 미국인을 어메리칸스키라고 부른다. 니콜스키는 니콜라스의 후손, 자식이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러시아인의 성씨는 대개 –evich, -ovich, -ich; -coch; -ev, -ov; -in; -ikh, -ykh; -sky로 끝난다. 죽(Zhuk)이라는 성처럼 자손을 뜻하는 접사가 붙지 않는 성도 있다. 그는 딱정벌레다. 그러나 –ov가 붙어 주코프(Zhukov)가 되면 그는 딱정벌레의 후손이다. 

말리노프스키(Malinovsky)는 세 개의 어미가 붙은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라즈베리라는 의미의 슬라브어 말리나(malina)에 기원을 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 자연계에서 이름이나 성을 취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異說이 눈에 들어왔다. 그에 의하면 Malin, Mallin, Malan, Mallan, Malen, Mallen은 물론 Mallinson, Mallison, Malleson 등 부친의 이름을 딴 부칭(父稱)이라고 알고 있던 성이 기실은 어머니의 이름을 딴 모칭이었다. 그러니까 Malin이라는 성은 중세 시대 여성의 이름 Mal에서 유래한 것이며, Mal은 중세시대 여성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었던 Mary의 애칭 Malle의 축소형이었다. 
   
Malin이라는 성의 바탕이 된 이름인 Mary는 아람어(예수 생존 시 중동지역의 공용어)인 마리얌(Maryam)에서 비롯되었으며 말뜻은 “아이 갖기를 소원하는”이다. 제롬 성인(St. Jerome)은 마리얌이라는 아람어를 바다를 가리키는 mar와 방울이라는 의미의 ham의 합성어로 받아들이고, 이를 라틴어로 ‘바다의 별’이라는 의미의 stella maris라고 해석했다. 이것이 신약성경에 나오는 주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얌 즉 마리아의 이름이 지니는 뜻이다.

접미사 –in이 붙는 성씨는 많다. Gagarin, Ovechkin, Pushkin, Putin, Lenin, Stalin 등 저명인사들 중에 –in으로 끝나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통칭 레닌으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의 본명은 블라디미르 일리이치 울랴노프(Vladimir Ilyich Ulyanov)다. 부친의 이름은 일리야 니콜라예비치 울랴노프(Ilya Nikolayevich Ulyanov)로 이들 집안의 성 Ulyanov는 Ulyan 즉 ‘Julian’에서 비롯되었다.

러시아에서 흔한 -ich 어미의 성은 북 벨라루스와 남서 러시아에 기원을 두고 있고, -coch로 끝나는 성씨는 키르기즈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는 물론 특히 벨라루스, 러시아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이런 명칭 접미사 중에서 나는 ‘자식, 후손’이라는 의미의 어미 ‘-sky’가 붙은 성씨의 기원에 의문을 품고 있다. 러시아어 어미 –sky는 영어 이름 어미 –son에 대응되고,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 언어의 –sen과도 의미와 기능이 일치한다. 도대체 –sky의 어원은 무엇일까?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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